나도 '이름 모르는 꽃'이 되었을지 몰라

by 북도슨트 임리나
선생님은 어디서 글을 배우셨어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배운 적이 없다.'라고 대답했었다.



내 글쓰기의 이력을 떠올리면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엄마이고, 도구는 그림일기다.


엄마는 왜 그랬는지,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림일기의 '글씨칸'을 위로 두어 줄 더 그려놓고는 나에게 채우라고 했다.



그림 그리는 칸은 줄어들고 글씨 쓰는 줄을 늘린 셈이다.


그러나 나는 그 몇 줄을 더 쓰는 것이 싫지 않았다. 별생각 없이 늘어난 줄만큼 채워서 썼다.


그게 나의 처음 글쓰기 연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줄곧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보에 글이 실리거나 학교의 문학상은 다 받았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해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h 출판사의 소설 창작반에 등록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르바이트 한 돈을 그렇게 쓰다니 나도 어지간히 배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h 출판사에서 처음 만든 글쓰기 강좌였고, 그때 이남희 선생님을 만났다.


https://www.kyobobook.co.kr/service/profile/information?chrcCode=1000237601


그 당시, 여성동아 장편소설로 데뷔를 하고 원래 직업인 중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된지 얼마 안 된 분이었다. 내 기억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 당시 열명 남짓 수강생들끼리 그룹이 형성되었고, 그 후 자주 만났기에 수강생들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일상은 물론이고, 누가 결혼을 하고 이사를 가고 아이가 백일이고 등등 경조사까지 챙기는 사이가 되었다.



심지어 나는 그곳에서 인생 첫 연애를 했다.


그 남자와 연애하게 된 이유도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만, 자기소개할 때 입고 있던 셔츠가 내가 좋아하는 옥색이라 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남자는 옥색 셔츠는 갖고 있지 않으며 거의 매일 입고 다니는 베이지색 셔츠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 착각을 했던 것만큼 내가 기대한 연애와 간극이 컸다.


나는 그 사람의 직업도 나이도 이름도 제대로 몰랐고, 가끔 연락 두절되어 사라지고, 나중에는 신용카드를 빌려주어 연체가 되기도 하고 '쓰레기'라는 별칭으로 불러야 할 남자였다.



쓰레기를 빼고는 다른 분들과는 같이 술 마시고, 문학을 얘기하며 나의 이십 대 시절을 보냈다.


수강생들 중에는 나중에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지금도 활동을 하는 분도 있다.


그러다 나는 여러 이유로 그분들과 멀어지게 되었고 현재는 연락하고 지내는 분이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나의 이십 대를 함께 보낸 분들이기에 이름도 지금 다 기억하고 있고,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하다.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보다 친구들과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수업은 기억나지 않고 술자리만 기억나고, 선생님이 술자리에 몇 번 함께한 정도만 기억이 난다. 그러니 나는 그분한테 글을 배웠다고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며칠 전, 수업 준비하려고 어느 시인을 검색하다 '아트 앤 스터디'라는 사이트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문예 창작 카테고리를 보다가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내가 처음 소설을 배웠던 바로 '이남희'선생님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선생님 강의를 들어보았다.


https://www.artnstudy.com/n_lecture/?LessonIdx=nhLee002



화면에는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선생님이 나타났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니 선생님은 선생님이구나 싶었다.



더구나 강의 중에 '초콜릿은 맛있으면 또 사지만, 책은 한 번 읽으면 다시 사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으며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 말이 이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었다는 것도 생각났다. 그 말은 책의 상품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30년 전의 강의와 접점을 하나라도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말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글쓰기도 이 분에게서 배운 것이 많이 있을 것 같았다.



좋은 가르침이란 기억으로 남는 게 아니라 배운 사람의 현재 상태가 아닐까 싶다.


나는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선생님처럼 글쓰기도 가르치고 있다.



내가 글을 배웠던 딱 한 분의 선생님.


그분은 나를 잊었을 수도 있다.


나야말로 그분에게는 소설을 가르쳤던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인 '이름 모를 꽃'일 수도 있다.


선생님은 나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때의 열정적이었던 첫 번째 수강생 그룹은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기회가 된다면 내가 출간한 소설을 드리면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배움이란 배우는 그때만이 아니라 배움의 유효기간은 평생 살아가는 동안이라는 것도 깨달았다고 말씀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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