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꽃 같은 그녀

by 북도슨트 임리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랑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시월이다. 아침저녁으로 여름을 쫓아내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


나는 밤 시간에 글을 쓰느라고 깨어 있어 낮과 다른 차가운 바람을 오래 느끼고 있다.


지금 '마을 안전'에 관한 인터뷰 글을 다듬고 있다. 내가 직접 인터뷰한 글이 아니라 선명하지 않지만 글 속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 동네 사람들의 삶이 있다.



그 삶을 들여다보니 이십 대 후반, '인구주택총조사'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 당시는 '인구주택총조사'를 하게 되면 동사무소를 통해 조사원을 뽑는다는 공지를 냈는데 우연히 그 공지를 본 나는 호기심으로 신청을 했다.


정말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볼 기회라는 생각에 야심 차게 신청을 했지만, 영업 사원처럼 가가호호 방문을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포기해야겠다 싶었는데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꼭 오라고. 아마 지원자가 적었던 모양이었다. 그때 활동비를 받았던 것 같은데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는다.



동사무소에서 교육을 받고 나는 주소지를 배정받았다. 그곳은 산 쪽 골목길이었고 또 집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내가 들은 조언은 '지도가 부정확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있는 집이 없을 수도 있고 없는 집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지도를 보면서도 지도에 있는 번지수의 집이 내 눈앞에 있는 집인지 헷갈렸다. 솔직히 지도와 다르더라도 나 편하자고 더 추가해서 하느니 원래 없던 집으로 하고 건너뛸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한 집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그 안 쪽으로 한 집이 더 있었다. 한 집에 두 세대가 살거나 셋집이 있는 게 아니라 지도에 없는 안쪽에 집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집에서 막 밖으로 나온 젊은 여인이 나를 맞아 주었다.


내 질문에 답을 하다가


"어머, 이렇게 추운 날 너무 고생하시네요. 안으로 들어오시겠어요?"


라고 말했다.


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에 따를 수 없었다. 물론 빨리 조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녀가 말하는 '안'이라는 것이 전혀 따뜻해 보이지 않았다. 곧 쓰러질 것 같은 허술해 보이는 작은 방(집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에 연탄을 피우고 있었다. 연탄보일러가 아니라 그냥 연탄을 피우고 그런 상태의 집이라면 따뜻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보다 더 따뜻한 집에 살고 있었다. 연탄 가는 노동 없이 버튼 몇 개로 금방 집이 따뜻해지는 기름보일러의 이층 집에. 그런 나를 그녀를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보며 잠시라도 따뜻한 곳에 있다 가라는 배려에 당황하면서 감사했다. 내가 따뜻해지는 빠른 방법은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래도록 궁금했다. 어떻게 그런 집에 살면서 다른 사람이 추울 거라 생각할 수 있는지. 아주 잠시 달동네라는 곳에 서있을 뿐인 내가 그녀의 배려를 받아들이기엔 오히려 미안했다. 진정한 배려는 그런 그녀를 내 집에 데려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안으로 들어와서 몸을 녹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말투가 걱정과 진심을 표현하고도 넘쳤다.


나는 난방까지 조사를 했었기에 '연탄'이라고 그녀의 집을 체크하면서 그녀의 집은 추울지 몰라도 그녀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라고 기억에 담아두었다.


나랑 비슷한 나이의 그녀. 지금은 그 집보다 더 따뜻한 집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그곳에서 추운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을까?



돈도 아니고 호기심에서 조사원으로 나섰던 나를 배려해 준 그녀의 따뜻한 마음은 안도현 시인의 시처럼 누군가에게 여러 번 뜨거운 사랑이었으리라. 그리고 나에겐 이름모를 따뜻한 꽃이었다.







이전 04화하룻밤의 룸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