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나는 이십 대였고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했고, 세상은 더 좁았다.
인터넷조차 보편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직접 외국에 나가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볼 수 없는 것들 뿐이랴, 만날 수 없던 사람들도 많았다.
워킹홀리데이로 갔던 호주, 멜번의 어학교에서 '첸'을 만났다.
첸이란 이름만으로 알 수 있듯이 대만 남자였다.
우리가 친해진 것은 둘다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나는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한 경험 때문에 일본어를 할 줄 알았고,
첸은 이중국적이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대만계인 그가 어떻게 일본 국적까지 갖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클래스 내에서 영어 외에 일본어가 더 편한 둘이 통성명을 하고는 꽤 많은 이야기들을 일본어로 나누었고
둘이 따로 세인트 킬다 바닷가에 가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첸의 관계가 발전하지는 않았다.
나는 첸에게 전혀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았고 첸도 아주 편하게 날 대해주었다.
그는 내가 그 당시 싱글로서 결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을 때도
나를 잘 이해하고 자기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말해줘서 나는 그도 싱글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희한하게 그가 '여자친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남사친'이란 말이 없었을 때였는데 남사친과 또 다른 느낌으로 말 그대로 '동성친구'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래스 친구들과 함께 바에 갔을 때였다.
영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첸에게 누군가가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묻자
농담을 잘하던 그가
'No, because I'm married'
라며 자신의 반지 낀 손가락을 내보였다.
그때만 해도 서양 사람들이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가 끼여져 있으면 결혼했다는 상식조차 없었을 때였고
그와의 대화에서 싱글인 나를 이해한다며 공감한다는 그의 말에서 싱글로 생각한 나는 나를 속였다는 생각이 들어 좀 화가 났다.
나는 다른 클래스 친구들이 못알아듣게 일본어로 물었다.
"너 결혼했다고?"
"내가 설명해 줄게."
내가 화가 났던 이유는 싱글인 줄 알았는데 결혼을 한 남자라서가 아니라
나의 싱글의 고민을 공감한다고 들어주던 그가 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였다.
그는 나에게만 따로 다시 일본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갑에서 서양 남자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 남편이야."
라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첸은 비공식 결혼을 한 셈이었다.
그제야 나는 퍼즐처럼 맞춰지는 것들이 그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며 그가 여자친구 같다고 느낀데는
그가 쓰는 일본어가 '여성적'이라는 이유가 컸었다.
그러니까 보통 일본 남자들은 자신을 '보쿠'라고 말하고 '와타시'는 주로 여자들이 쓰는데
첸은 자신을 말할 때 '와타시'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어미인 '~~카시라..'라는 것도 꽤 자주 사용했는데
아마 그의 언어 사용 때문에 내가 여자 친구 같다고 더 느꼈었고
그 단서로 그가 게이라는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첸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미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남편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겐 결혼했다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비밀까지 말해야 할 사람에게는 자세히 설명한다고.
'너라서 말하는 거야.'라고 내가 단순히 클래스 메이트가 아니라
그동안 우정을 나눈 친구라는 걸 강조해서 말했다.
그 당시 한국의 평범한 가치관을 가지고 자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동안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게이'라는 사실이 앞으로 그를 어떻게 대하느냐라는 고민까지 하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면 '성소수자'라는 단어도 있고 당연히 나는 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고민되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첸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앞으로 어떻게 지내지?
당연히 인터넷 검색도 없던 시대, 더구나 상의할 친구들은 다 한국에 있는 상황....
오롯이 혼자 고민했어야 했다.
밤 사이 내가 내린 결론은 '그는 변함없이 내 친구다.'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비밀이 우리 사이를 변화시킬 것은 없다고.
그 후 첸과는 한국에서 일본에서 몇 번 더 만났고, 그의 남편과도 만났었다.
한국에 남편과 함께 왔을 때 그 둘과 함께 나는 신촌을 안내해 주고 식사도 했다.
일본에 있는 그들의 집에도 놀러 가기도 했다.
첸은 요리를 좋아해서 나에게 근사한 저녁과 수제 아이스크림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물론 첸이라는 그의 이름은 알지만. 대만에서 첸이란 '김 씨'란 이름처럼 흔한 이름이며
나에게 첸은 한 명이지만 무수히 많은 첸이 있기에 나는 그를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셈이다.
첸은 나에게는 친구 관계에 대해 다시 정의하게 만든 사람이고,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인간이며 성적 취향이 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경험을 하게 해준 사람이다.
첸이 지금 일본에 있을지 대만에 있을지 아니면 남편의 출신지인 뉴질랜드에 있을지 모르지만
또 스쳐갔다 해도 얼굴을 기억할 수 없을 테지만
서로의 마음속에 꽃으로 피었던 그 시간의 추억은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