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 웨딩촬영과 지나가던 할머니

by 북도슨트 임리나


두 번의 결혼과 세번의 결혼식, 지금까지 결혼에 대한 나의 이력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결혼과 결혼식을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백설공주>에서 새엄마로 나온 줄리아 로버츠가 결혼식에 가는 마차에서 황홀한 얼굴로 외친다.


"여섯 번째지만 결혼식은 너무 좋아."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결혼식은 좋다. 이유는 간단하다. 드레스를 입고 공들인 화장을 하고 사람들이 날 예쁘다고 해준다.


보통 사람들이 살면서 그런 날은 그리 많지 않다.


결혼이 별로더라도 결혼식은 좋다 그리고 우스개 소리로 신혼은 '신혼'여행까지라는 말도 있다



첫번 째 결혼과 결혼식.


29살에 내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여건이 허락한 대로 결혼식을 했다. 결혼식에 내 취향을 반영하기보다 무난한 결혼식이고 싶었다. 시어머니가 예물하라고 준 돈을 부모님한테 드리고 남들한테 효녀 소리도 들었다



내가 첫번째 남편과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고 심지어 천생연분이란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그 천생연분이 깨지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년 만에 나는 그와 이혼을 하고 말았으니까.



결혼은 나빴지만 결혼식은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결혼 날짜는 어른들이 가장 좋다는 날로 잡았고, 그러는 바람에 만나서 결혼식까지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식장도 우리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곳으로 했기에 어른들이 찍어준 날짜에 맞추어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도 두번째 결혼.


두번째 결혼은 첫번째 결혼보다 나는 심사숙고를 했다


첫번째 결혼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아침밥을 꼭 해줘야 해?"라고 물었을 때 그가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라고 답했기 때문이었는데, 결혼 후에 나는 아침밥만 빼고 다 했다.



아침밥을 안하는 것이 나는 행복한 결혼이라고 생각했지만, 행복한 결혼은 그렇게 간단히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두번째 결혼은 아무 조건도 내걸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남자의 어떤 면을 보고 결혼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지만 나름 나는 하나의 기준을 세웠는데 그건 '나를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가?'였다.


왜냐면 첫번째 남편은 '아침밥 안 하는 것' 빼고는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첫번째 남편은 '난 꽃같은 거 여자한테 선물하는 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 차라리 콩나물을 한 다발에 리본을 묶어주는 게 더 나은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는 콩나물도 선물하지 않았다.


살다보면 위트보다는 그저 '마음'이 필요한 날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두번째 남편은 내가 꽃을 사달라고 하면 '꽃을 사주는 남자'를 기대했다. 샤갈의 'birthday'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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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번째 결혼이고보니 어른들의 입김이 훨씬 덜 작용했다.


그 당시 삼십대 후반이었던 남편과 나는 양쪽 집안에서 결혼만 하면 대환영이었던 때였다.


남편은 시아버님에게 올해 안에 여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베트남 여자와 결혼을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은 모양이었다.



나는 남편과 결혼해도 좋을지 고민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결혼식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두번째 결혼식이니 만큼 진짜 내가 원하는 결혼식을 해보고 싶었다. 그건 다름 아닌 '스몰웨딩'이었다. 지금이야 '스몰웨딩'이란 말이 여러 연예인들로 인해 생겨났지만 내가 생각한 그 때만 해도 '스몰웨딩'이란 말이 없어서 그저 나는 '우리 둘만의 결혼식'혹은 '친구 몇 명을 초대한 결혼식'이라고 남편에게 설명했고 장소는 '오키나와'로 정했다.



결혼식의 옵션이 다양한 일본에서는 최소 비용으로 얼마든지 결혼식이 가능했고, 오키나와 한 호텔의 채플에서 정말 친구 두 명을 초대해서 결혼식을 했다. 그것도 내 생일에 맞춰서 말이다.



어른들이 결혼식에 좋은 날짜를 고른다는 미신은 나에겐 이미 의미가 없었다. 그 좋은 날 했던 결혼이 깨지지 않았는가.(지금 생각해보니 결혼이 깨지는 게 꼭 불행은 아니지만)



하지만 결혼식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초혼인 남편의 부모님들(몰래 한 결혼식을 모르는)이 그래도 결혼식은 올려야 한다며 다시 한국에서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세번째 결혼식을 했다.


이번에는 신혼 여행도 잡았고, 신혼 여행지는 라스베이거스로 했다.


첫번째 결혼식은 막 사람들이 결혼식을 해외로 처음 나가는 시점이었다면 세월이 흘러 두번째 결혼식 때는 유럽으로도 신혼 여행을 다녀오던 때였다.


그렇다고 해도 '라스베이거스'는 보통 신혼여행지로 잘 선택하지 않는 곳이었다.



내가 '라스베이거스'를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라스베이거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이 남편과 처음 본 영화였던 이유였고, 두번째는 라스베이거스의 유명한 쇼들을 보고 싶다는 것, 세번째는 결혼식을 한번 더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결혼식이 간단해서 오키나와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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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베이거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출처: 네이버 영화






막상 알아보니 비용이 꽤 있었고, 또 이미 스몰 웨딩은 경험해봤으니 대신에 '웨딩촬영'을 하기로 맘먹었다.


'웨딩촬영'은 1시간 가량 호텔을 돌면서 진행되었고 비용도 결혼식보다는 저렴했으니 어차피 한국에서 웨딩촬영을 안했으니 잘 됐다 싶었다.



나는 심플한 웨딩드레스를 마련했고, 남편은 결혼식 때 입었던 정장을 입고, 호텔의 카메라 기사와 함께 호텔 이곳저곳을 돌며 촬영을 했다.



그러던 중,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던 할머니가 내게 다가와서는 손을 꼭잡고 말하는 게 아닌가.



"잘 살아야 해."


물론 영어였지만 한국어로 이쯤 해석되는 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지나가는 아이, 새신부 등에 관심이 많아진다.


어떤 이들은 그걸 노인의 쓸데 없는 오지랖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막상 나이를 들고 보니 아이와 새신부를 볼 때, 앞날의 축복을 빌면서도



'저들 앞에 어떤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복합적인 마음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낯선 새신부에게 그 할머니는 꼭 손을 잡고 축복의 말을 건넨 게 아니었을까.



그 말 덕분이었을까.


나는 언제나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남편 덕에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남편에 대한 평범한 불만 외에 특별한 불만은 없다.



살다 보면,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평생을 기억하는 오랜 기억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 순간, 이름 모르는 할머니가 빌어준 축복의 말이 짧으면서도 강렬했기에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우연히 마주치는 새신부들에게 마음 속으로 꼭 축복을 보낸다.



지금 방콕 여행 중에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신부를 보며 '라스베이거스의 할머니'처럼 행복을 빌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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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신부가 콩나물을 즈려밟고 '꽃길'만 걷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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