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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Jan 29. 2024

개도 자기 밥그릇은 타고나는 걸까

인생이 개판이 됐다

자. 기. 밥. 값. 


인간이라면 이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추상적으로 말하지만 조금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성인이 되어 '자기 밥값은 하고 살았으면'하는 마음일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첫 번째 자식에게 많은 관심도 기울이지만 그만큼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경험 부족'이 가장 정확하다. 처음 키우는 아이라 이해가 부족해서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또 기대가 어긋나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성실하지 못해도, 심지어 하고 싶은 게 없어도 부모의 걱정은


'이다음에 뭐 해 먹고살까?'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런 인간과 달리 '밥값'에서 자유로운 생명체가 반려동물이 아닐까 싶다. 물론 특수한 목적으로 키우는 마약탐지견이라던가 영화에 출연한다던가 하는 개도 있지만, 집에서 키우는 개는 보호자(주인)가 제공하는 밥을 먹고 큰 말썽만 피우지 않으면 그 이상 무언가를 요구받지 않는다.



어느 날, 강아지에게 외출복으로 축구 유니폼을 입히고는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어머나, 이다음에 축구 선수해도 되겠다.


                                                         

이렇게 말해놓고 나 스스로도 놀랐다.


강아지가 축구 선수가 될 확률은 0퍼센트에 수렴한다. 그걸 알고 있는 내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다니. 



나는 오히려 딸아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불가능한 희망을 말하는 것은 아이를 속이는 것이라는 스스로 엄격한 잣대가 있었다. 아이가 유명한 축구 교실을 2년 가까이 다녔지만 아이에게 한 번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 축구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쪽은 인간인 우리 딸인데도 말이다.  



아예 가능성이 없는 동물이라 나는 맘 편하게 내뱉었는지, 아니면 둘째가 예쁜 엄마의 마음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첫째에게 사랑을 둘째에게 새 옷을'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집에서 둘째 취급을 받는 강아지는 사랑도 받고, 새 옷도 입을 수 있다. 그러니 사람 둘째보다 더 나은 팔자인 걸까. 



지금 생각하니 왜 그렇게 엄격한 잣대로 아이에게 말 한마디 허투루 하지 않으려 애썼나 모르겠다.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대해 얼마든지 희망적인 얘기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강아지는 나의 희망을 알아들은 걸까. 생후 4개월에 달리기 대회에서 참가상으로 사료를 받았다. '자기 밥값'을 했다. 인간은 4개월에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는 정도인데 혼자 먹고 자고 달리기까지 하다니. 


딸아이가 4살 때 동네 축제에서 발레를 하고 짜장면 티켓을 받았던 때가 생각났다. 


엄마로서 '자기 밥값' 걱정은 접어두고, 두 아이(인가과 동물)에게 '자기 밥그릇은 갖고 태어난다'는 말을 더 믿어봐야겠다.  







생후 4개월 달리기 대회에서 받은 사료. 달리기 대회에 함께 참가한 딸도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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