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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Feb 25. 2024

아이는 오지 말라는 개판

아이를 키우면 그 전까지 모르던 많은 곳을 알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키즈 카페'였다.

'키즈 카페'란 주변에 아이가 기르는 사람이 있어 쫓아가면 모를까 아이가 없을 때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 나도 '키즈 카페'과 여느 카페와 비슷한데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키즈 카페'는 그냥 카페가 아니라 아이들의 '유료 놀이터'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놀면 공짜인데 '키즈 카페'를 가면 유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즈 카페'를 가게 되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날씨'다. 

날이 너무 덥거나 추울 때 놀이터에서 놀기에는 아이보다 엄마가 싫다.(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냉난방 시설이 된 키즈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두 번째는 '음료수'다.

놀이터에 나갈 때 아이가 마실 물을 챙기고 내 음료수도 챙기면 되지만 놀이터에서 먹는 음료수와 그래도 키즈 카페에서 먹는 음료수는 달랐다.


세 번째는 '놀이감'이다.

아파트 안의 놀이터에 비해 키즈 카페의 놀이감은 다양했다.

앉아서 놀 수 있는 소꼽놀이 등이 있다면 어느 곳에서는 기차도 탈 수 있고, 또 실외와 연결되어 있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키즈 카페에 많이 다녔다. 그러다 초등학교 2-3학년이 되면서 슬슬 빈도수가 낮아지며 어느 샌가 가지 않게 되었다.

아이 말로는 유치하다고.


그래서 강아지를 키우면서 '펫카페'가 어떤 곳인지 금방 추측할 수 있었다.

개들은 놀 수 있고, 보호자들은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겠구나 하고.

더구나 겨울이 되어 산책이 귀찮을 때는(이것도 내가) 키즈 카페가 나도 편하고 강아지도 뛰어놀 수 있겠다 싶어서 날이 추워지고는 자주 가게 되었다.


보통 펫카페는 실외 공간을 필요로 하다보니 조금은 외곽지역에 있었다.

그래서 차를 운전해서 적어도 30분쯤 가야하는 곳에 있었다.


그러던 중, 동네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새로 펫카페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나서 아이와 첫방문을 하는데 'NO 키즈존'이란다.

개는 되고 사람 아이는 안된다고.


나는 강아지를 돌보는 아이의 역할을 강조하며 이왕 온 김에 한번만 어떻게 안되겠냐고 사정사정해서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언젠가 독서 모임에서 '노 키즈존' 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노 키즈존을 반대하는 입장의 논리는 '아이 차별'이란 해석이었고 나는 그저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되니 그런 곳은 피하는 게 좋겠다는 정도로만 논지를 얘기했다. 

그리고 그건 사업주의 개인적 선택이지 차별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는 되고 사람 아이가 안된다고 하니 다른 노키즈존과 다른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노키즈 존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의 경우 강아지와 접촉할 때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으니 사장님은 노키즈존을 선택했으리라.

차별이란 논리로 보면 인간 내의 차별이 아니라 인간종과 동물종의 차별로 확대해석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 나는 그후 어떻게 했을까?

한번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해 아이를 데려간 후 또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집근처 펫카페를 놔두고 먼 곳의 펫카페를 가기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학원 간 사이, 나만의 여유가 생길 때 홀로 강아지와 방문한다.


주로 나는 독서를 하고 강아지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뛰어다니거나 쉬거나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키즈 카페를 갔던 이유는 단순히 '이론적 장점'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이가 나와 떨어져서 노는 동안 내가 잠시 쉬고 싶기도 했던 나의 휴식도 큰 이유였다.

음료수를 마시면 잠시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유, 그래서 나는 음료수와 입장료를 지불했었다.

위에서 열거한 세 가지 이유보다 마지막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아이가 못 가는 이유로 강아지와 단 둘이 가는 그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잠시 숨을 돌렸던 것처럼

잠시의 여유를 만끽한다. 

가끔은 나에게 와서 무릎위에 올려달라고 밖의 운동장에 나가자고 할 때 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지만 그런 방해쯤은 애교다.

펫카페에서 강아지와 보호자들


펫카페 실내
목줄을 풀고 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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