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의 욕심이 과하다. 일주일 3~4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1회 정도 책방에서 책을 구매한다. 빌린 책과 구입한 책들을 살펴보고 읽을만한 책은 정독한다. 하지만 나머지 책들을 훑어보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복적인 독서의 행동이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 선별하는 과정이 부족할 뿐 책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것.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삶이 좋아진다는 허망한 진리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여전히 책이 좋다고 하지만 딱히, 나아지지 않는 삶에서 책이 가지는 믿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 두려울 때도 있었다.
‘읽는다’라는 그 자체에 힘을 실었고 오랜 시간 책이 준 선물은 인생의 지표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생활의 작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무력했던 일상을 책을 통해 나를 만날 수 있었고 생각의 사고를 넓혀가는데 힘을 보탰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도 있다. 의식 깊이 빨려 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문학의 건망증’ 중)
독서는 정답이 없는 활동이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글의 언어와 상호작용하여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여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다. 그 한 예로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을 확장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 아이들과 한 독서모임에서 1년의 과정에서 변화의 단상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말하는 수준이 좋아졌고 경청의 자세와 읽은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핵심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들이 모여 독서라는 맛이 달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에게 독서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처음부터 독서를 잘할 수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책에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독서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서서히 책으로 스며드는 일은 중요한 시간이고 가슴 벅찬 일이 되는 것은 분명하게 삶으로 들어간다.
나는 자주 등산을 간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한계에 닿을 때 포기하고 하산하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정상의 그 짜릿함에 갈 수밖에 없는 끌림이 있었다. 독서를 등산에 비유하는 것도 이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 스며드는 일은 어렵다. 다만 꾸준히 습관적으로 일상에 스며드는 일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듯이 간다면 정상에 도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직접 현실에 뛰어드는 것이다. 다만, 좋은 책은 여러분에게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닿지 않는 실마리를 풀어주는 멘토가 되어 주어 준다. 서서히 책에 젖을 때까지 일상에 각자도생의 책을 읽든지, 책모임이나 작가를 만나는 기회, 동네책방에 들러 책처방을 받는 일들이 평범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소나비가 어느새 큰 물줄기를 만나 책은 여러분의 삶에 스며드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책이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중요한 부분을 파고드는 책을 일상의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독서경험의 시간들을 많이 스며들게 해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책에 스며드는 독서경험은 우리 삶에 더 나은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