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대화의 내용과 질은 만나는 사람마다 다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이 나오면 흐름이 끊긴다. 그럴 때 상대방이나 자기 자신도 당황하는 것이 쉽게 발견된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도 대화나 의사소통의 흐름이 끊기면 타인과의 관계도 모호해진다. 직접 소통보다는 문자나 SNS,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소통이 더 심각한 면이 있다.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을 경우 소통의 부재가 발생한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이 부족하니 개인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문제가 발생되기도 한다.
공공기관이나 학교, 기업에서 공문이나 가정통신문을 보낼 때 한자어를 넣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많았다. '비가 올 경우'라는 뜻의 우천 시(雨天時)를 우천 시(市)로 착각하거나 뜬금없이 '모집 인원 ○명'을 채용 공고에서 '○명'은 한 자릿수 인원을 뽑는다는 뜻을 잘못 이해한 일부 사람들은 "왜 0명 뽑는다고 하냐" 황당한 댓글을 달렸다.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사생(寫生) 대회'를 '죽기 살기 대회'로 고지식(固知識)을 ‘고(高) 지식’으로,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 사흘을 ‘4일’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에 '중식(점심) 제공'의 글을 보고 '왜 중식을 제공하냐, 우리 아이에게는 한식을 제공해 달라'라고 요구한 경우도 있다. 문해력은 오늘내일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위 사례들을 볼 때 착오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 소셜미디어와 영상, 플랫폼 등의 영향으로 난독과 오독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돼버렸다. 숏폼 영상이 대표적이다. 필자의 경우도 지인의 소개로 감동적인 책을 추천받았지만 읽는 내내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문해력 저하는 짧은 영상과 메시지에 익숙해진 탓과 유튜브의 등장으로 책을 잘 읽지 않는 원인이 클 것이다.
요즘 숏폼 영상이 대세다. 짧은 영상에 익숙하다 보니 텍스트 접근이 쉽지 않다. 이런 결과는 결국 갈수록 심각한 수준의 문해력으로 이어진다. 문해력을 올리려면 다양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뿐 아니라 글의 맥락을 이해하고 내 의도대로 상대에게 전달되도록 쓸 수 있는 능력 즉 소통능력이 되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 독서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어휘, 맞춤법, 독해, 그리고 한 단계 나아간 말 센스에 이르기까지 문해력 향상에 기반이 되는 책 읽는 방법의 변화가 중요하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자유와 평등, 자율과 집단, 혁신과 연속성, 효율성과 민주적 과정 등 서로 부딪치는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모두가 21세기 문해력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문해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는 능력이라 리터러시 교육도 절실히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문해력을 기르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읽고 듣고 말하고 쓰는 온전히 표현하고 이해하는 힘을 꾸준히 길러내는 것이다. 함께 읽는 방법도 있다. 서로 공감하는 독서는 결국 문해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책을 읽을 때 문장과 문장 사이를 꼼꼼히 이해하고 풀어가는 과정을 되풀이할 경우 문해력도 향상된다.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내야 한다.
온라인으로 모두가 연결되는 사회에서 또 하나 갖춰야 할 능력인 ‘디지털 문해력’도 중요한 부분이다. 정보홍수 및 가짜뉴스 등의 챗GPT에 이용되지 말고 이용해야 할 능력이 필요하다. 질문력과 이해력 즉 독서와 문해력 향상이 뒷받침이 되어야 인공지능시대에 살아가는데 적응하고 나아가는 방향이 성립되리라 생각된다.
독서와 문해력은 인공지능시대를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개인과 사회가 전통적인 문해력, 디지털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