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봉선 Apr 22. 2023

깊이의 차이




깊은 우물 안은 볼 수가 없다.


무엇을 숨기는지,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스코틀랜드 호수.

깊은 호수에 사는 신비의 동물이 있다.

'네시'

봤다는 사람도 있고,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도 있다.

정말 네시는 존재할까?


영화'고질라'는 바다의 사는 괴물을 묘사했다.


호수에도 괴물이 사는데, 바다라고 살지 않는다는 법이 있겠나.

고질라는 속편까지 만들어지며,

여러 장르의 괴물들과 싸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 바다에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서 난파된 배를 찾으려 하지만,

깊은 바닷속을 헤쳐 배를 찾기란 어렵다.


성경에 바다를 갈라 사람들을 건너게 했던 이가 있다.

'모세'

바다는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 길을 걸어 바다 건너편으로 간다.

그리고 바다는 다시 제 자리를 찾는다.


언젠가 새벽에 바다낚시를 간 적이 있다.

온통 깜깜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배 모터소리만이 들린 바다를 본 적 있다.

바닷물 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고,

흔들리는 배에서 '여기 빠지면 죽겠는데?'라는 생각뿐...

서서히 날이 밝자 드 넓은 바다가 보였다..

그때 드는 생각

이 바닷물이 다~ 빠지면?


얼마 전,

일본바다에서 심해어가 발견 됐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해저 8336m에서 발견된 심해어.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된 심해어.



깊이를 알 수 없는 망망대해 바다에는 얼마나 많은 생물이 살고 있을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사람은 마음 또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의 마음은 누가 더 깊을지, 더 얇을지 알 수 없다.

꺼내 보일 수도 없고, 무게를 달수도 없고, 깊이를 잴 수도 없다.

그저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 깊이는 알 수 없기에 더없이 위험하기도 하고, 감동적 이기도 하다.

새로 시작된 연인들은 종종 이런 얘기를 한다.


"내가 사랑해."

"내가 더 많이 사랑해"

"아냐. 내가 더 더 더 더 많이 사랑해."


유치한 거 같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의 무게로 인해 참새 같은 사랑싸움을 한다.

사랑과 믿음은 깊이를 알 수 없어

더 상처받고,

더 감동받고,

눈물을 흘린다.


사랑의 무게가 있다면?


"날 사랑하는 무게는 250g 이네? 그럼 나도 그만큼 딱 그만큼만 사랑할게"


얼마나 편한가...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그 사람 생각의 깊이를, 무게를 볼 수 있다면 세상의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편리할 순 있을 것이다.

사람의 판단 기준도 될 수도 있다.


나를 믿고 사랑한다는 사람의 마음의 무게를 보게 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진심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그럼 나도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무게만큼만 대하면 된다.

양쪽의 저울처럼 수평을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하지만.

무게는 서서히 달라진다.

시간과 신뢰로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기도 하고, 가벼워지기도 한다.


250g만큼만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내 정성에 상대는 나에 대한 사랑이 10g이 올라갔다.

조금씩 올라가는 무게를 보고 있으니 상대도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과 신뢰로 무게는 점점 채워져 갈 것이다.


1kg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데이트 시간에 조금 늦었다고 20g이 빠졌다.

단 5분이었는데도 그 5분의 시간에 20g 뺀 상대가 서운해 내 사랑은 40g을 뺀다.

그렇게 서서히 빠져나간 무게는 서로가 무관심으로 헤어지게 된다.


처음부터 무게가 정해져 그대로 계속 유지하는 무게는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저울에 추처럼 정해진 무게를 갖지 않는다.

조금씩 내가 무거워 기울기도 할 것이고,

상대가 무거워 기울기도 할 것이다.


그게 사람의 마음 아니겠는가...


덜 주고, 덜 받고,

더 주고, 더 받는 그렇게 사는 게 세상 사는것 같다.

상처받고 위로받으며 그렇게 상대의 마음의 무게를 모른 체 사는게 속 편하다.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바로 앞에 고기를 볼수 있어 낚싯대만 대면 고기가 잡히고,

지나가는 고기를 향해 그물을 쳐 잡는 거보다는

언제인지 물때를 보고, 어떤 채비로 잡는가, 어떤 찌로 잡는가, 그리고 언제 내 낚싯대를 무느냐...

그런 게 낚시다.


계산적인 , 숫자적인 마음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행동에 감사하고, 감동받으며

나도 상대에 대해 예를 갖추며 감동을 선사하며 사는게, 그렇게 사는게 세상 사는것 아니겠는가...











기계 위에 손을 얻고서, 질문에 거짓이면 전기가 오는 기계가 있습니다.

장난으로 시작된 게임은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거짓이 아닌데도 전기가 오며 상대가 기분 상할까 겁도 납니다.


장난은 장난으로,

진실은 그 사람의 마음만으로 남기는 건 어떨까요?

마음과 마음에서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내가 덜 주면 어떻고, 덜 받으면 어떻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같이 있는 시간이 행복하면 그만인 것을...










작가의 이전글 '역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