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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아c Oct 10. 2024

우리 동네 정육점 사장님

제가 아는 동네 정육점 사장님이 있습니다. 2년 정도 전일까요? 신장개업을 해서 처음 갔는데 사장님이 꽤 친절했습니다. 인사성도 밝으시고 고기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해 주셔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약간 가격대가 있지만, 고기도 맛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다시 그 집이 생각나서 정육점에 들렀습니다. 돼지고기를 산 뒤 포인트 적립을 위해 제 번호를 불러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이미 제 번호를 외우고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 번 갔을 뿐인데 제 번호를 외우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OOOO 맞으시죠?’라면서 제 뒤 번호를 말씀하시더니 그대로 번호를 입력하셨습니다.


다음에 가니 여전히 제 번호를 외우고 있었고, 기다리면서 들어보니 다른 고객들의 번호도 다 외우고 있더군요. 모든 고객들의 번호를 외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런 사장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커피숍에도 비슷한 포인트 제도가 있는데, 100번을 가도 그 사장님이 제 번호를 외우는 일은 없었습니다. 정육점 사장님의 정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외국 생활을 1년 정도 한 다음에 다시 살던 동네로 돌아왔습니다. 정육점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더군요. ‘혹시 내 번호를 기억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여전히 내 번호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제가 1년 정도 방문하지 않은 것도 기억하시면서 아이들도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분이 유독 기억력이 좋은 분이실까요? 궁금한 마음에 어떻게 1년이 지났는데도 고객의 번호를 외우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고마운 고객의 4자리 뒷번호를 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가게를 정리하고 난 뒤, 그날 다녀가신 고객들의 번호와 사 가신 고기 종류를 기억해 둡니다. 어떤 분들이 어떤 고기를 좋아하시는지 기억해서 주문하면 저도 고기를 주문하고 오래 재고로 남지 않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분의 매장은 늘 깨끗하고, 고기는 맛있었습니다. 다른 정육점과는 차이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주변에 많은 가게가 망해서 업종이 바뀌어 있는데, 그 사장님은 주변에서 장사가 제일 잘되고 있습니다. 아내도 제가 다른 곳에서 고기를 사면 싫어하고 꼭 그곳에 다녀오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정육점 사장님이 고객 한 분 한 분을 정성으로 대하고, 고객의 번호와 선호하는 고기 종류를 외우고, 청결을 유지하는 등의 노력을 하시는 것은 모두 자신의 운을 모으는 행동입니다. 매일 그런 운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눈에 보이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위대한 무언가는 결국 하루하루 내가 모은 운으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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