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는데, 1학년 때 필수 교양 과목으로 '읽기와 쓰기'라는 수업이 있었습니다. 1학기는 레벨 1, 2학기는 레벨 2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업과 더불어 한 달에 한 번씩 원고지 20매로 독후감을 써서 제출해야 했습니다. 전교생이(문과만 해당될 수도 있지만) 1년 내내, 심지어 한자어는 한자로 써야 했습니다.
매시간 종을 치고, 지정 좌석제를 운영하며, 매달 독후감을 쓰는 등의 규율이 엄격해서 '서강고등학교'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놀기에 바빴던 저는 '읽기와 쓰기' 수업이 싫었습니다. 왜 초중고 동안 해왔던 독서나 쓰기를 대학에서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점을 받아야 하니 꾸역꾸역 했었고, 심지어 1학년 1학기 때의 읽기 점수가 안 좋아서 2학년 1학기에 다시 들어야 했습니다. 덕분에 1년 6개월 내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쓸 수 있었죠. 당시에는 매우 귀찮은 일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참 감사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읽고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모교에 가장 감사한 것은 아마도 '읽기와 쓰기' 수업을 만난 것입니다. 그 수업 덕분에 꾸준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매달 달라지는 주제에 따라 책을 사고 읽고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습니다. 한자어에 대한 감각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습관은 군대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상병 때까지는 훈련 등에 바빠서 책을 읽지 않았지만, 상병 이후로 1년 넘는 시간 동안 거의 매일 책을 읽었습니다. 독후감 쓰는 습관이 남아서 그런지 병장 때에는 매일 독후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억들이 남았는지 직장에서 힘들 때 블로그를 시작했고, 블로그가 성장하면서 책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은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도 좋아하는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결국 대학교 1, 2학년 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경험이 저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에 들었는데, 요즘에는 '읽기와 쓰기' 수업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아마도 과거의 그런 전통을 유지하기에는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후배들은 이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지 않겠군요.
하버드 졸업생들이 꼽은 최고의 강의는 글쓰기 강의였다고 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글쓰기 수업이 인생에 가장 도움이 되는 강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20년 전 졸업한 하버드생 1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인생에 가장 도움이 된 과목을 물었더니 90% 이상이 글쓰기 수업이라고 답했습니다. 에어비앤비 창업자들도 기업가치 35조 원을 만든 비결로 글쓰기를 꼽았습니다. 글쓰기가 경영과 삶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글쓰기는 삶의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제가 그토록 귀찮아하고 싫어했던 '읽기와 쓰기'가 저의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기억과 경험 덕분에 저는 지금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점이 모여서 선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 점들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르지만, 선이 된 이후에 돌아보면 모든 점들이 소중했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 어떤 가치를 가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어딘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운을 모으는 행동이라면, 그 행동들이 모여서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좋은 곳으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운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대운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선을 그릴 수는 없지만, 점을 그릴 수는 있습니다. 멋진 선을 상상하며, 매일 나만의 점을 하나씩 찍어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