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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밍고 Feb 13. 2021

방어적 1년

바이러스와 함께한 아주 방어적인 1년에 관하여


지난 1년 간 우리의 모든 행동의 원인을 말할 때 쓰인 마법의 구phrase가 있다. 그건 바로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나빠도 '코로나 때문에', 증시가 좋아져도 '코로나 때문에', 가족 간 사이가 나빠도 '코로나 때문에', 반대로 가족 간 사이가 좋아져도 '코로나 때문에', 살이 쪄도 '코로나 때문에', 길에 차가 많아져도 '코로나 때문에', 학업 성취도가 낮아도 '코로나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도 '코로나 때문에', 가구가 잘 팔려도 '코로나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은 비꼬거나 우습게 만들고자 열거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이런 것들이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는 없다. 행위에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는 다소간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바이러스 때문에 '뽕나무밭이 바다가 될' 정도로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국이 되었다. 지난 1년 간 인간의 행동과 심리는 더 보수적이고 방어적이 돼 갔다. 이렇게 무료한데도 듣는 음악만 듣고, 이미 익숙한 작가의 책을 읽고 만다. 이런 심리를 다 알기라도 한다는 듯 극장가만 봐도 이미 흥행한 영화가 재개봉을 하고 있다. 독일, 북유럽처럼 심심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헤비메탈에 열광한다는데 지금은 그들 나라와는 다른 종류의 심심함이라 그런가. 원래 심심해서 심심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갑작스럽게 심심하게 돼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정신도 없는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지금 보수인지 진보인지 판단하는 심리검사 같은 걸 하게 된다면 백프로 보수주의자라고 나올 것 같다. 새 국면을 맞이한 만큼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문화가 피어날 듯도 한데 오히려 보수적.방어적이 된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같은 맥락일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적으로도 세상이 빠르게 변화할 때 보수적인 마인드가 우세하는 일이 많았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인 아돌프 히틀러만 해도 혼란스러운 시기에 세를 얻고자 독일인 내부에 있는 가장 보수적인 부분(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자극했다. 그게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사람들에게 통하는 전략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과거 우리도 혼란한 시기에는 더욱 보수적이 돼 갔다. 특히 전쟁 중. 다양성을 주창하는 목소리나 전혀 새로운 시도는 묵살되거나 배제당했다. 여기에는 아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니 새로운 길을 택하기보단 이미 기존에 있는 검증된 길을 택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마치 흘러가는 물을 거스르려는 대신 움직임을 멈추고 흐름에 맡기려는 것처럼.



하지만 또 돌아봤을 때 세상이 급변하는 시기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사람들'이다. 난세에도 연구를, 창작 활동을, 다양성을 위한 주장을, 타인을 위한 봉사를 한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누군가의 칭송을 받으려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는(우리는) 아무리 봐도 너무 방어적으로 살고 있는 듯하다. 웅크리고 지내야 하는 시기라고 해서 마인드까지 보수적으로 변한다면 마침내 포스트코로나가 온다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새로운 것도 배우고, 재미있는 상상을 하고, 야외 산책이라도 하며 삶이 어디 고이지 않고 졸졸 흐르도록 해야 이후를 도모할 수 있다. 



어떤 긍정적인 사람들은 '흑사병 이후에 르네상스가 왔다'면서 이 시기가 후일을 위한 자양분이 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 인간들이 고여있다면,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개선改善은 흑사병이 봉건제와 종교로 대표되는 구습에서 벗어나게끔 계기를 제공했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도 볼 수 있다. 신흥종교에 의탁하는 사람들, 신분제 없는 신분제 사회를 보고 있자면 확실히 이건 시대역행이다. 그러니 이 시기를 무조건 긍정할 수는 없다. 1년을 방어적으로 살아 보니 진보적으로, 공격적으로 사고할 필요성을 느낀다. 코로나는 영원하지 않다. 고인물은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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