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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30. 2022

부부는 외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신 정말 이기적이다. 나도 절대 말 못하는게 있는거야. 나도 힘들어.”

남편의 격앙된 목소리에 당황스럽다 못해 숨이 막혀옵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꺼낸 말은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35일째 나는 살아내기 위해 상담을 갔더랬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그랬습니다.

“선생님 남편분도 친정아버지처럼 선생님이 시댁으로부터 어려울 때 진정한 울타리가 못되어주셨네요.”

엄마는 평생 아버지에게 사과 받고 싶은 한 맺힌 서러움 덩어리가 가슴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기전 소원이라는 말까지 하며 만약 풀지 않고 가면 귀신이 되어서 아버지를 괴롭힌다는 악담도 했습니다. 


엄마는 죽음의 끝자락, 고드름 끝에 맺힌 한 방울처럼 숨결이 멈추기 10일전 아버지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엄마가 아버지를 용서하고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남은 아버지의 마음이 편해진 것은 분명했습니다. 

엄마는 결혼 후 20년 동안 아버지와 떨어져 홀로 시골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계절 농사를 지으며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시대에는 제법 괜찮은 경찰공무원이었고 지적인 모습도 외적인 모습도 누구나 부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엄마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시골에서 농사만 짓는 촌데레한 촌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늘 아버지에 대한 갈망과 혼자 버려진 원망으로 아픔을 안고 살았습니다. 

결혼 직후 처음에는 아버지도 엄마와 분가를 하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강력한 반대로 말도 안 되는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것이지요. 엄마는 스트레스로 암 선고를 받았고 그 목숨을 건 도박으로 결혼 20년 만에 분가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할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와 그 아픔의 시간에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엄마의 삶에는 늘 뿌리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 서운함으로 평생을 원망하고 아파하는 엄마를 보았기에 두려웠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무의식적으로 남아있던 남편에게 향하는 감정 찌거기를 비워내고 싶었습니다.

달콤한 막걸리에 고소한 전을 안주로 시작한 술자리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정말 조심스럽고 이성적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여보 그 시간을 원망하겠다는게 아니라 내가 힘들었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주면 좋겠어. 당신이 살면서 울타리가 되어주면 좋겠어.”


그런데 남편이 저리 폭발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에 폭풍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엄마의 죽음 앞에 시작된 슬픔의 감정들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아, 엄마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이렇게 아팠구나. 이런 걸 평생을 안고 살았구나.’

남편은 참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시댁의 일에서는 늘 한걸음 물러나는 식이었습니다. 

25년이나 살아온 제가 뭐 딱히 그것을 개혁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누르고 참기만 한 내 내면을 제대로 한번 위로해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더 심한 상처를 입고 그날부터 나는 앓아 눕기 시작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더 힘이 없어지고 일상이 슬픔으로 물들어버렸습니다. 

딱 한마디면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나도 그게 쉽지 않네.”

서로의 의도와 달리 나는 갈수록 약해지고 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며칠이 지난 오후 3시 전화가 오더니 그럽니다. 

“오늘 언양 장날이라 호떡 샀어. 지금 사무실에 가져다 줄까?”

“그기서 여길 어떻게 와. 됐어. 집에 가서 먹어.”

참고로 남편과 저의 사무실은 울산의 끝과 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 후 성주참외 한 박스가 배달됩니다. 

지금까지 본 참외 중 최고로 맛나고 멋진 상품입니다. 

“아는 분 부모님이 농사짓는다고 해서. 당신 먹으라고.”


참 무던히도 애쓴다 싶습니다. 그저 말 한마디만 잘했으면 될 것을...

그런 남편을 보며 머릿속에 울림이 전해져 옵니다. 

“남편은 외계인이야! 그래서 네 언어가 아니고 그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거야. 네가 듣고 싶은 미안하다는 말을 네 언어가 아닌, 자기 언어로 하고 있는 거야. 잘 해석해봐.”

가만 보니 그렇습니다. 저는 그저 “당신 사랑한다. 힘내. 미안해.” 이 한마디를 원하는데 남편은 그런 말은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라는 듯 온몸으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 어이없다 싶기도 하고 한편 애쓴다 싶기도 합니다. 

그가 나의 언어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되나 싶기도 하고 내가 그의 언어를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다시 공부해야 되나 싶은 갈등에 놓입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르고 정상적이지 않던 몸에서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눈물이 또르르 나고 겁이 더럭 납니다.

어느새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응, 왜?”

“여보, 나 몸이 ㅇㅇ이래. 어떡해?”

“걱정하지마. 괜찮을거야.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렇게 또 남편은 평소와 같이 느티나무 같은 단단함을 보여줍니다. 

어제 저녁 남편이 어디서 구했는지 백수오 담금주를 품안에 보물처럼 안고 들어옵니다.

“내가 당신주려고 가져왔어. 이게 여자들에게 그렇게 좋대. 당신 건강이 제일 중요해. 당신만 괜찮으면 나는 다 괜찮아.” 

이 남자 또 이렇게 사람 마음을 감동스럽게 합니다. 


몇 주째 이어지는 비상근무로 파김치가 되어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잠들어 버립니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피곤과 세월의 흔적으로 어느새 깊은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21살 그 꽃 같던 시절 만나 29년의 이야기를 만들어 온 사람. 

그럼에도 이리 서로의 마음 하나를 표현하기가 어렵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부부는 동일 종, 동일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부부 외계어 사전 하나쯤은 옆구리에 끼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요일 새벽 5시, 출근을 위해 남편이 샤워를 합니다. 

“나, 차가 없다. 사무실까지 좀 태워주면 안돼?”

“그래, 태워줄게.”

“나, 썬 크림 발라줄래?”

“그래, 이리와 봐”

‘톡 톡 톡’

까만 얼굴에 하얀 썬 크림을 꼼꼼히 도포하며 보드랍게 얼굴을 만져 봅니다. 

“됐다. 예쁘다. ㅎ”


이유 없이 눈물이 차 오릅니다. 

“여보, 오늘처럼 다정한 언어를 나누며 살면 좋겠지만 우리 또 상처주고 아프고 하겠지? 그래도 조금만 정말 최소한만 아프고 살자.”

남편의 출근을 마치고 산책을 나섭니다. 6월의 상쾌한 바람으로 가득 찬 숲속 길,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 속에 남편언어 학습법을 고민합니다. 

살아감에 선택이 아닌 전공 필수과목! 

그참, 인생은 늘 고민과 배움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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