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영희 Oct 29. 2022

사랑은 유전이고 전염입니다.

“저녁 먹고 마트 좀 가자. 니가 왔을 때 물건을 좀 사둬야겠다. 내 혼자서는 물건을 들고 올 수가 없다.”

그렇게 친정 아버지와 농협 하나로 마트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물가가 오른다는 것이야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주로 온라인 쇼핑을 하는 저는 참으로 오랜만에 마트를 방문한 느낌입니다. 

“아빠, 뭐가 필요하세요?”

“응, 달걀, 마늘, 올리브유, 밑반찬, 야채 몇 가지...”

카트기에 아버지가 말씀하신 물건을 차곡차곡 담습니다. 몇 개 되지 않으니 쇼핑 시간도 금방 마무리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며 말씀하십니다.

“ㅇ아 너 먹을 과자랑 간식도 사라.”

21살짜리 아이가 뭐 그리 과자가 필요하겠냐 싶지만 할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산도 한 통을 집어 듭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서 카트를 끌고 가던 중 이번에는 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씀합니다.

“니 먹을 과일 하나 사라. 포도 살래? 맛있어 보이네.”

자연스레 싱싱한 포도를 바라봅니다. 진짜 맛있어 보입니다.

가까이 가 송이를 들여다 보다 그만 ‘헉’ 소리가 나옵니다.

“아빠, 안 되겠어요. 너무 비싸요. 한 송이 15350원이나 하는걸요.”


어느새 짠순이 아줌마가 된 나는 감히 그것을 바구니에 담을 용기가 없습니다.

“아이다. 내가 사주게. 먹어라. 사주고 싶다.”

아버지는 쑥~ 포도 한 송이를 들어 올려 카트 바구니에 담습니다.

뭔가 마음속에 꿈틀합니다.


아버지는 현재 허리디스크와 협착으로 갑자기 몸이 불편해진 상황입니다.

평일에는 우리 자녀들이 도움을 주기 힘든 상황이니 급한 마음에 사설 도우미 여사님에게 청소와 식사 보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몇 만원의 비용이 아깝다며 아버지는 엊그제부터 그 시간을 줄인 상황입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답답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아버지가 잘 지내는 것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인데 왜 그래셨냐며 타박도 주었더랬습니다.


그랬는데 지금 아버지는 금 송이 같은 포도 가격 앞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저를 위해 포도값을 지불합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이 아버지도 저도 서로에게 요구할 것도 없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주머니를 열어 도와줄 형편이 됩니다. 

물론 그 마음의 여유에 있어 감히 딸인 나는 아버지를 따라 갈수는 없습니다. 

그저 지금까지 받고도 또 받을 수 있는 이 상황이 눈물겹고 감사하고 감동일 뿐입니다.


부모라는 존재가 그런 것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먹고 쓰지는 못해도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내 놓을 수 있는 존재.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오랜시간 사치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없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수백만원의 비용도 서슴없이 지불하는 사람입니다.


약 15년 전 사회적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명품가방을 소유하는 붐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무실 직원은 루**똥 가방은 사고 싶고 돈은 없으니 10개월 할부로 가방을 구매하고 행복해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너도나도 아무나 다 사는 가방이었지만 저는 만원 한 장도 아까워 마트에서 파는 2-3 만원 짜리 가방을 소중히 안고 다녔고 화장품도 샘플을 사서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겨울 아들을 위해 1주일 100만원인 카이스트 캠프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결재를 했습니다.


가끔은 그런 제 자신이 이상하다 싶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돈이 아까워 가사 일에 외부인의 도움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과로로 쓰러져 119에 실려 가도 3일 이상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아끼고 열심히 살면서도 나를 위해서는 제대로 베풀어 본 적이 없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혼자 서러워 작은 차 안에서 주책맞게 눈물을 흘리곤 하는 식이었습니다.


참 못났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한가지는 좋았습니다. 내가 번 돈으로 내 자식에게 선택의 기회를 넓혀줄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사실 그때마다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제게 그랬습니다. 

“자식한테 안 쓸거면 뭐하러 돈 버는데?”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도 늘 그랬습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아버지가 다 해 주게. 그러니까 나쁜 짓은 하지 마라.”


그런 아버지가 제게 늘 함께 했던 것입니다.

제가 힘들게 돈을 버는 이유도 다 자식들의 나은 삶을 살기 위함이었고 그들의 정서가 풍요롭게 되도록 하기 위한 기회비용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영역은 그리 신중해도 아이들에게만은 무한히 베풀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에게 남들이 누리는 그런 호사를 다 제공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의 작은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살아온 삶입니다.


나이 50이 되어서 아버지가 사주는 포도 한 송이에 긴 세월의 추억과 감동으로 온몸의 세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사실 경제 능력으로 본다면야 저도 이제 그 포도를 못 살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선뜻 지갑을 열기는 쉽지 않은 금액입니다.

다만 저도 아들이 먹고 싶다 했으면 고민 없이 바구니에 포도를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흐르는 물에 포도 한 알 한 알을 따서 정성스레 먼지를 씻어냅니다.


탱탱한 포도 한 알을 입안에 넣고 터트리니 시원하고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터져 나옵니다.

음~~~ 귀하고 비싼 것은 이리 맛난 것인지, 원래 그리도 맛있던 포도인지 모르겠지만 세상 최고의 포도 맛을 보는 느낌입니다. 

몇 알 되지 않는 포도를 두 그릇에 나눠 담고 하나는 아버지를 위해 냉장고에 넣어둡니다.

그리고 쪼르르 안방 아들에게 갑니다.

“아들아, 얼른 먹어. 이거 한 알에 150원 정도 되는 금 포도다. 정말 맛있다. 먹어.”

아들의 오물거리는 입을 보니 또 이내 배가 불러옵니다.


사랑은 분명 유전이고 전염입니다.

그러니 나는 바보처럼 아들을 보고 이리 웃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미친 인플레이션입니다. 다만 이를 뛰어넘는 아버지의 사랑 덕분에 마음이 행복한 저녁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번갈아 보며 눈시울이 붉어져 옵니다.

‘아버지 감사해요! 아들 사랑한다!’








이전 04화 부부는 외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