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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24. 2021

눈물이 나도 밥은 먹어야 한다.

“눈물이 나도 밥은 먹어야 한다.” 이 글귀를 보았을 때 삶이 참 지독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몸이 살기 위해서 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몸의 주인은 먹는 것을 멈추고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 저도 살면서 너무 너무 힘들면 이상하게 어린 시절 엄마가 해 주던 따듯한 밥과 국이 생각납니다. 

대학교 때 집을 떠나 생활하다 주말에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꼭 따듯한 밥과 국을 차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따듯하고 맛있던지 묘하게 엄마의 사람을 먹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게 밥은 정말 중요한 삶의 한 요소입니다. 저도 대학생까지만 해도 아침은 먹지 않고 배만 부르면 된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나는 굶어도 애들은 뭐라도 먹여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눈도 못 뜨는 어린것들을 눕힌 채 옷 입히고 얼굴 닦이고 작은 가방 메고 뛰어가면 그야 말로 전쟁입니다. 못 먹은 아침을 대신해 홍시에 가래떡, 과일샐러드, 볶음밥 등 나름 도시락을 넉넉히 싸서 어린이집 가방에 넣어줍니다. 그럼 어린이집 선생님이 함께 즐거운 아침식사를 해 주는 겁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병적인 보상심리처럼 아이들의 밥에 집착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다른 건 못해도 애들 밥은 먹여야 한다. 사 먹이는 밥이라도 제가 사와서 그릇에 담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를 배경으로 먹게 했고 사무실 일이 아무리 바빠도 집으로 와 아이들 밥을 먹이고 다시 일하러 가고, 주말이면 꼭 집 밥을 요리해서 먹였습니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제가 못 챙기면 제발 잘 챙겨먹으라고 거의 협박과 애원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이제는 조금 가벼워진 시간입니다. 밥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픈 시간이 생각납니다.   

  

약 16년 전인 듯 합니다. 그때 저는 너무 어리고 모든 것이 서툴러 매일이 지옥처럼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갑질 이라는 말이 나오는 세상이지만 과거에는 갑질문화 자체가 상식처럼 존재했습니다. 당시 우리 과장님은 우리 팀장님보다 후배임에도 승진을 먼저 한 불편한 구조였고 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과장님이 우리 팀장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참 지랄 맞은 게 상처 입은 팀장님의 분노가 하필이면 제게 날아온 겁니다. 

정말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별일도 아닌데~ 재수 없이 잘못 걸린 겁니다. 

“생각이 있는거에요? 왜 자기 맘대로 일을 해? 진짜 답답해 죽겠네.”     


이 장면에서 ‘생각’은 어제 팀장님이 시킨 대로 한 일의 결과인데 정말 미치고 팔딱 뛰겠다는 표현이 딱 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디 감히 말대꾸를 하나요. 그래서 꾹 참았죠. 그런데 최악은 하필 그때가 점심시간 10분 전이었다는 겁니다.     

 

직원들이 밥을 먹으러 나가자고 합니다. 너무너무 부끄럽고 서러 운데 표시를 낼 수 없으니 씁쓸한 억지 미소를 짓고 구내식당으로 갔습니다. 식판에 밥을 뜨는데 뿌옇게 흐려지고 숨이 컥컥 거렸습니다. 

재빨리 가장 뒤쪽 구석진 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본 후배 여직원이 조용히 앞에 앉았습니다.    

  

밥 한 숟갈 입에 넣고 국물 한 숟갈 넣는데 ‘컥 컥 컥~’ 서러움에 목이 메여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있으니 소리를 낼 수 가 없습니다. 눈물이 ‘뚝 뚝 뚝’ 밥 위로 떨어집니다. 

후배는 어쩔 줄 몰라 하고 나는 서러움에 소리 없는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립니다.     

 

지금 생각하면 밥을 안 먹으면 될 것을 왜 그리 끝까지 밥숟가락을 붙들고 않았을까요?

다행히 팀장님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진심으로 사과하셨지만 날벼락처럼 두들겨 맞은 그날의 상처는 늘 가슴 한 부분 참 서러운 장면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조금만 서러 우면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오히려 더 밥을 잘 챙겨 먹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살고 싶었나 봅니다. 아니 스스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본능이 올라 왔을 겁니다.      


어릴 때야 부모님 그늘이니 내가 부족해도 됩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나면,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고, 어린 자식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힘들다고 투정부리고 누워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 툭툭 털고 일어나 힘내서 또 걸어가야 하는 겁니다.      


참으로 독한 것이 살아간다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다들 이리 열심히 가는 것을 보면 결국에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분명 있나 봅니다. 

딸, 아들이 고등학교를 갈 때쯤부터 늘 그랬습니다.

‘살다 힘들면 엄마가 다른 건 못해도 따듯한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은 먹여 줄께. 언제라도 쉬었다가렴’     


살고는 싶지만 죽을 만큼 힘들 때 누군가 건네주는 밥 한 공기는 분명 사랑이고 응원입니다. 

보통 상식으로 하루에 3번! 살면서 밥 먹는 것만큼 자주 하는 일이 있을까요?     

주말 아침 등산을 갔다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고 참으로 열심히 숨 쉬는 존재들을 만났습니다. 


버섯, 솔방울, 넝쿨식물 등

넝쿨식물을 보다 자기혼자 설 수 없는 운명에 주변 무엇이라도 붙들려고 그리 애쓰는 모습이 울컥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늘을 뒤덮는 푸르름.....     


잘 살기 위한 자기만의 붙드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제게 잘 먹는다는 건 잘 살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렇게 저는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어제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혼자 외로이 있는 재수중인 아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아들, 너 오늘 학원도 못 갔다며? 많이 안 좋은 거야?”

“응, 엄마, 너무 피곤하네. 어제 열이 올라와서 타이레놀 먹었더니 지금은 괜찮아.”

“푹 쉬고 무조건 잘 먹어야 해. 얼른 밥 먹어. 사랑한다. 아들”

“응, 밥 먹으려고.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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