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이상하리만큼 힘들고 아프고 심란한 시간을 많이 만났습니다.
코로나도 걸리고 엄마도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입원하시고 결정적으로 건강이상까지...
예전같았으면 분명 힘이 빠져 인생을 욕하고 있었을 겁니다.
사람이 소소한 어려운 일을 만나면 대부분 짜증이 납니다.
그러다 정작 큰일을 만나면 오히려 대범해지는 아이러니를 만나기도 하구요.
제가 그랬던것 같습니다. 몸에서 고위험 암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을때 처음에는 당황스러움이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오기가 올라왔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이상하게 삶이 쎄게 나를 누를려고 하면 그것에 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반드시 그것을 이겨내고 싶은 욕심이 함께 했습니다.
'내가 질줄 알고? 어림없다. 나는 이 상황을 새옹지마로 만들거야. 더 많이 행복하고 더 많이 건강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살거야.'
마치 알고 있는 일을 처리하듯 나는 능숙하게 당장 해야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적고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몸에 좋지 않다고 하는 음식들은 일절 입에 대지않고 그동안 먹지 않았던 건강보조 식품들을 주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면역증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과 최대한 친해지기 위해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친절하며 화를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족들, 직원들 그리고 모르는 타인들도 제게 친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러 주문을 외운다 생각하고 아들에게도 말했습니다.
"아들아, 우주는 엄마에게 친절한 거 같아. 그냥 그런 생각이 드네."
"허, 그거 다행이군!"
그런데 어제 정말 제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퇴근 길 평소와 달리 ㅇㅇ 아파트를 방문할 약속이 생겼습니다.
퇴근시간이다 보니 당초 상대방에게 말했던 시간보다 지연이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은 급해지고 운전도 조금은 빠라지고 있었습니다.
약속한 장소에 거의 도착한 주변 초등학교 스쿨존을 지나고 있을때였습니다.
어느 지역이나 그러하듯 양쪽으로 차량들이 주정차 되어 있고 지나가는 차량들로 복잡한 장면이었습니다.
도로 어느 길목을 들어설때쯤 반대편에 정차되어 있던 차가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제 갈길을 갔고 차는 부드러운 속도로 직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바로 옆에 정차되어있던 차량에서 갑자기 여자아기 한명이 순식간에 뛰쳐 나왔습니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차가 급정거 했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자신을 태우러 온 엄마 차를 보고는 무작정 도로를 뛰쳐 나온겁니다.
하마터면 그 유명한 민식이법에 저촉되는 사고가 날 뻔 한 것입니다.
정말 간만의 차이로 아이와 제 차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지만 저는 심장이 멎는듯한 놀라움으로 숨을 쉴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아이는 자신의 상황을 1도 인식하지 못한채 천진난만하게 엄마차로 뛰어가 버렸습니다.
너무 놀라 손발이 떨린다는 표현은 딱 그럴때 쓰는 말일겁니다.
처음에는 그 아이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 다음은 아무런 일이 없음에 감사함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드는 마지막 생각은 "역시 우주는 내게 친절하다."
그렇치 않습니까? 사실 그 순간 사고가 나고 안 나고는 제 개인 의지는 넘어서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게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특히나 그 장소가 스쿨존이었으니 무조건 제게 불리한 곳이었습니다.
아침에 제 말을 들은 딸이 그럽니다.
"엄마, 하마터면 인생 조질뻔했다. 운이 좋았네."
"맞지? 엄마도 그리 생각한다. 역시 엄마는 세상의 절친이야. ㅎㅎㅎ"
2022년이 제게는 유난히 이벤트가 많은 시간입니다. 살짝 세상에게 서운함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역시 깊은 애정이 여전히 존재하는 친구였습니다.
요 며칠 자꾸만 힘이 빠져 나가는 몸에 눈만 껌뻑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앉은 거실에 창밖으로 불어들어오는 바람에 상쾌함이 한가득입니다.
노트를 꺼내어 또박 또박 한줄 필사를 해 봅니다.
" 나는 세상의 절친 해피영희다. 우주는 나에게 친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