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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29. 2022

무화과가 익어갑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또 몇주가 흘러  시골 아버지를 보러 다녀왔습니다. 중요한 시험도 하나 치루고 몸도 좀 다스리고  하는동안 시간이 훌쩍 흘러 어느새 가을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과거에는 몰랐는데 아무래도 전 운전중에도 멀미를 하나 봅니다. 그러니 장거리 운전을 하기만 하면 깊은 졸음으로 힘이 드는 현상을 매번 만나는게지요. 

그런 엄마를 걱정해서 딸이 옆에서 연신 조잘거리고 깔깔 웃어주는 덕에 이번에는 안전하게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분명 4시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해 두었는데 초인종 소리에도 인기척이 없습니다. 

한번, 두번 애꿎은 초인종을 있는 힘껏 눌러봅니다. 

'어디 외출하셨나?'  

담장이라도 뛰어 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스피커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ㅇㅇ이 왔나?'

"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불이꺼진 거실이 괜시리 쓸쓸한 기운을 자아냅니다. 

"아~ 깜박 잠이 들었다. 자꾸 피곤하네. 엊그제 세탁기에서 이불 꺼내다 다리가 휘청 했는데 그때 불편한 다리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아이가. 그때부터 컨디션이 영 별로다."

"아이고, 아버지 뭐하러 빨래를 해요. 우리가 오면 할건데. ㅠ"


"괜찮다. 우리 예삐 오느라고 수고했다. 마당에 무화과가 맛있게 익었다. 좀 따 먹어라."

고개를 돌려보니 거실 통유리 너머 무화과 나무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갈색 무화과가 소복하게 보입니다. 

작은 바구니를 하나 들고 마당으로 나가 달콤함으로 툭툭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무화과를 똑, 똑, 똑 따서 담기 시작합니다.

떨어져 나가는 무화과 꼭지에서 내뿜은 뽀얗고 끈적한 액체에 피부가 끈적이며 따갑고 간지러운 공격을 무방비로 맞이합니다.


'음~ 달콤하다~ 아~ 가을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부터 시골집은 묘하게 낡아갑니다. 안주인의 손길이 없는 장독대에는 먼지가 쌓이고 마당의 부분마다 이끼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무화과 나무에 그 달콤한 열매가 달리고 나의 혀끝에 그 달콤함을 전달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은 외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차를 운전하고 목적지에 잘 도착했지만 마침 주차장이 없어 딸과 아버지를 먼저 내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돌아도 보이지 않는 주차자리에 애를 먹고 있는 찰나 딸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엄마, 할아버지가 주차장 찾아준다고 이쪽으로 다시 오래."

"아직 가게 안 들어갔어? 엄마가 알아서 할께. 할아버지랑 들어가."

"할아버지가 안 들어가신대. 이쪽으로 오라고 하셔."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높아지는 아버지의 안타까움이 들려옵니다. 

'어휴, 진짜, 내가 애도 아니고~'

어쩔수 없이 아버지가 서있는 곳으로 차를 몰고 돌아가니 아버지가 다시 차를 타시고 안내를 합니다. 조금 떨어진곳 숨겨진 골목길 안에 제법 넓은 공터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많이 걸어야 하시잖아요."

"괜찮다. 이것도 운동이다."

목발을 짚고 걷는 아버지가 내게는 안타까움이지만 주차장을 못 찾아 헤매는 내가 아버지에게는 안타까움인가 봅니다. 


예전같지 않게 아버지가 식사를 잘 못합니다.

"요즘은 많이 안 먹어도 배가 빨리 부르다."

"그럼 안되는데 어떡해요? ㅠ"

"마트에 가서 물건 좀 사자. 내가 목발을 사용하니까 물건을 못 들고 오니까 마트가기가 힘들다."

뭐, 별거 없습니다. 겨우 반찬통 몇개와 요쿠르트 한줄, 한 뿌리 마 를 구입하면 그만입니다. 너무 단조로와 서글픈 생각도 듭니다.  

"우리 예삐 먹을 과일도 사고 과자도 사라."

나이가 50인데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사주는 과일 한 팩을 들고 좋아라 하는 아이가 됩니다. 


집앞 차에서 내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야위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제대로된 식사를 못해서 그런가 하여 마음이 너무 아파옵니다. 점심도 외식을 하자는 아버지 말에 반대를 하고 나름 집밥을 준비합니다. 

생선도 굽고 생선회도 사오고 각종 나물반찬과 밑반찬도 준비합니다. 밥도 한솥 가득지어 냉동실에 몇 팩 담아 햇반을 만들어 놓습니다.

"아버지, 제가 가고 나도 반찬 담아 놓은거 드시고 밥도 내일 아침까지는 보온밥솥 꺼 드시면 돼요."

"응, 알았다. 니 덕분에 잘 먹었다."

"아버지 잘 지내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주세요. 사랑해요."


꼭 안아보는 아버지가 또 작아져 있습니다.

속상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일상조차 특별함이 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다 어느날 또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이 아파옵니다. 

그저 걷고 앉고 손을 움직이는 이 행위조차 특별함이고 어려움이 된다는 것을 엄마를 보면서 알았고 아버지를 보며 두려움이 됩니다. 

어리고 젊을때는 몰랐던 시간들이 어느순간 무서운 한뼘의 이별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많이 행복해야 하는데, 많이 안아드려야 하는데.... 마음이 있다고 다 현실이 되는것은 아닌 장면에 가슴이 또 아파옵니다. 


벌초차량인지 나들이 차량인지 평소 2시간 전후 귀가길이 오늘은 4시간이 소요됩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몸이 녹초가 되고 피곤으로 귀에 염증이 올라오는것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이런 피곤을 느낄수 있는 이 시간이 또 감사일지도 모릅니다. 

먼후일 언젠가 나는 오늘이 그리워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니까요. 


시골에서 가져온 무화과를 한입 베어 물어봅니다.

'음~ 역시 달콤하다.'

아무래도 이 무화과, 지금은 달콤함이지만 결국 그리움이 될듯 합니다.   

매미대신 풀벌레 소리가 들려옵니다. 

자연은 무섭도록 제 역할을 다하고, 이렇게 완벽하게 갈것은 가고 올 것은 옵니다. 

최대한 오래, 최대한 행복하게 그렇게 아름다운 아버지와 딸이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 오래 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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