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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30. 2022

사랑하면 사랑한다. 감사하면 감사하다. 슬프면 슬프다.

‘다 필요없다. 다들 자기 살기 바쁘고 내 슬픔은 알지 못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는 매일이 슬픕니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엄마 사진을 보며 울고 있습니다. 

그런 날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촉촉이 스며든 감정이 우울이 되어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우울은 잘 관찰하고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나이지만 막상 자신의 일이 되니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심통이 올라왔습니다. 

매일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바쁜 남편, 자신들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는 아이들, 다들 너무 행복하고 멀쩡해 보입니다. 객관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내 엄마이지 그들의 엄마는 아니니까요. 

내 마음에 가득차 있는 이 절절한 추억이 그들에게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울컥 올라오는 이 감정들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어제는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비가 억수까지 쏟아져 내렸습니다. 빗방울을 보며 파전에 동동주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름지기 술이라는 것은 상대가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이 시국에 같이 술 마실 사람은 남편밖에 없는데 남편은 약속이 있다 합니다. 

평소 같으면 먹고 싶은 욕구를 죽이고 참았겠지만 요 며칠 강하게 지배하는 생각은 뭐든 하고 싶을때 하고 살자 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파를 다듬고 땡초도 썰고 홍합도 넣고 딱 1인분 반죽을 합니다. 

넉넉히 식용유를 두르고 후라이팬에 반죽을 올리니 지지직~ 고소한 소리가 올라옵니다. 


막걸리는 퇴근길, 집앞 마트에서 이미나 한 병 사들고 와 김치냉장고에서 열심히 시원한 맛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늘 요리는 가족을 위해 하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서 수고를 하는 시간입니다. 전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나입니다. 바삭하고 얇게 부쳐진 전이 기름 맛과 어우러져 환상입니다. 

꿀덕꿀덕~ 한잔, 두잔! 최근 들어 술을 마시는 횟수가 많아지는 느낌입니다.

뭐 그만큼 삶의 무게가 깊어지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연들을 좀 더 자주 만나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살면서 겪는 많은 일들 중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일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너무도 조용한 집안, 혼자서 마시는 술은 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이 보란 듯이 파전과 막걸리 사진을 카톡방에 보냅니다. 

잠시 후 반응이 옵니다. 남편은 왜 혼자 마시냐는 반응, 딸은 자꾸 슬픔을 곱씹지 말라는 충고~

“다들 나에게 관심이 없어. 나는 너무 슬픈데...”

아이 같지만 그랬습니다. 내가 그런 감정을 또렷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그들은 알지 못할 일입니다. 

그럼 나는 점점 더 괴롭고 슬퍼질 시간 같았습니다. 내가 아프다. 슬프다. 그러니 당신들이 신경을 좀 써줘야 한다 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들이 실제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씩씩하게 잘 살아가던 나의 모습을 기준으로 그들의 관심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술기운과 눈물로 빠져나간 에너지에 피곤함이 몰려오고 10시도 안 된 시간, 엉금엉금 잠자리를 찾아 듭니다. 몇시 인지 모를 순간 남편의 인기척이 들립니다.

술 냄새가 폴폴 나고 비틀거리는 몸짓이 좀 전까지의 행적을 설명해 줍니다. 

“여보야, 왜 혼자서 술을 마시고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아니야. 슬퍼서. 너무 슬퍼서.”

“내가 있는데 뭐가 슬퍼, 내가 있잖아.”


“당신은 내가 울고 있어도 울지마라 이 한마디만으로 끝이잖아. 오늘 아침도 어제 저녁도, 또 그 앞날도 그랬어. 내가 걱정되면 하루라도 일찍 퇴근해서 밥도 챙겨주고, 일하다 전화도 하고 그래야 하는거 아니야? 아무 관심이 없어. 평소 내가 잘 지낸다고 나를 버려두고 있어. 지금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미안하다. 그럼 말을 해야지. 내가 남자고 그런 감정을 잘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잖아. 알려주라. 그럼 시키는대로 할게. 그건 자신있어.”


참 이 현실은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멋진 장면은 힘이 듭니다. 사랑하는 그가 쓰라린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상하기 그지없이 감동의 순간을 선사하는 뭐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리얼 해도 너무 리얼 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며칠 전 용돈 몇 만원으로 말다툼 한 시간이 생각납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사랑한다면서 돈 몇 만원 가지고 감정다툼이나 하고 너무 서글퍼”

“ㅎㅎㅎ,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여보, 나는 대학교 2학년 도서관 등나무 아래에서 당신을 만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적 없어. 그리고 죽을때까지 마찬가지고. 내 장점이 절대 변하지 않는거잖아. 알면서 왜 그래.”


오~ 이 남자! 엄청 촌스러운데 심쿵하게 말을 합니다. 

맞습니다. 이 사람은 평생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섬세한 그 무엇이 안 되니 거칠은 무던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볍기 그지없는 나의 마음은 좀전까지 서럽던 감정을 휙~ 비워버리고 따듯한 그 말 한마디를 담아 퍼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말합니다.

“여보야, 우리 사이에 사랑하냐고 묻는 것은 말이 안 되지. 당연한 걸 뭐하러 물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당연한 한 마디에 춥고 단단하던 제 마음이 보드라운 새싹처럼 풀어져 내립니다.

그럴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해, 하는 고백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마음은 알고 있겠지, 다 믿어주겠지. 하는 생각도 어쩜 인간의 오만한 자기합리화 일수 있습니다.

마음의 이야기는 풀어내는 것이 정답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 감사하면 감사하다. 슬프면 슬프다. 표현하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삶은 큰 파도의 거침 아래 작은 파도의 물보라가 어우러지는 하모니처럼 솔직한 담백함과 샐죽한 삐침이 오묘하게 펼쳐지는 연극 같습니다. 

새로운 아침, 어제의 빗방울을 뚫고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유난히 반짝이고 아름답습니다. 

밤새 비워진 마음으로 내 마음의 세상도 반짝입니다. 


어제보다 한 줌 미소가 더 들어온 내 얼굴에 묘한 위로를 만납니다. 

이렇게 한 발 더 감정의 구덩이에서 벗어난 내가 대견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록 나 자신이지만 어려운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려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가 올라옵니다. 

‘수고한다. 영희야! 늘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네가 너무 고마워. 내가 너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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