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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30. 2022

가끔은 단순함이 최고의 기술입니다.

“여보, 나 세수했다.약 발라줘”

어린아이처럼 남편은 아침, 저녁으로 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남편의 눈썹이 반 토막이 된 것을 나는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보니 우스꽝스러운 짱구가 되어 있는 겁니다. 

요즘은 남자들의 문신도 그리 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원의 동생이 전문 숍을 운영한다는 얘기를 듣고 인연이 되어 드디어 문신을 했습니다.

시술을 마치고 그 원장님이 그러더군요.

“당분간 아플거에요. 아침저녁으로 제가 드리는 이 연고를 상처에 발라주세요.”

그랬더니 세수만 마치면 남편은 저를 불러 눈썹주변 상처에 연고를 발라 달라합니다. 


아침에 두 부부가 마주 앉아 면봉으로 눈썹 주변을 쓱쓱~ 연고로 도포를 합니다. 

“내가 남자라서 말을 못해서 그렇지 정말 아프더라. 마취가 잘 안 되더라. 힘들었어.”

“그래서 내가 당신 손을 꼭 잡아 줬잖아. 두렵고 아플까봐.”

“그럴거라는거 어떻게 알았어?”

“당연한 거 아니야. 원래 뭐든지 실제 아픔보다는 막연한 공포가 힘든 거야. 내 팔뚝 봐. 며칠 전 조직 검사할 때 너무 두려워서 손톱으로 뜯었더니 이렇게 상처가 놨어. 실제로는 그렇게 아픈 것이 아니었는데 기다리는 공포가 얼마나 크던지”


말을 하는 중에 입으로 뱉어져 나오는 제 말에 얼마나 공감이 갔는지 모릅니다. 

최근 요 며칠이 제가 그런 시간입니다. 

2주전 암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1주일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암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나왔어요. 병원을 방문해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지금은 뚜렷이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암은 아닌 거 같고 전암 단계 같습니다. 그래서 조직검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에 눌러 순간 멍 해졌습니다.”

암은 아니고 전암단계라는 표현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좋은 것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취를 하지 않고 조직을 떼어내기 때문에 아플거에요.”


그때부터 정말 두려웠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시술을 하러 올 때까지 나는 오른쪽 손톱으로 왼쪽 팔뚝을 힘주어 뜯어내고 있었습니다.

다른 곳의 아픔이 먼저 느껴지면 이후의 아픔이 약하게 전달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막상 조직검사 시간도 짧았고 못 참을 정도로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결과가 1주일에서 10일 정도 걸려서 나온다고 했는데 하루하루가 불편합니다. 나름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마음의 준비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의 롤러코스트는 그 폭과 회전율이 어질하여 멀미가 날 지경입니다. 

뭐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큰 병이 있으면 치료하고 크지 않으면 감사하다 하면 됩니다.


덕분에 현재 나의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만났습니다.

어제까지 사소하게 다투고 안타까워하던 마음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그런 어이없는 것들에 집착하고 힘들어 했을까?’

그저 이렇게 존재하는 것으로도 감사한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말입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시간 그저 말없이 꼬~옥 손 한번 잡아주면 그 공포가 사라집니다. 


어린 시절 나는 무척이나 독립적인 아이였는지 초등학교 때부터 병원을 혼자 진료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중학교 어느 날 치과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치과의 공포는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시간입니다. 

첫째 날은 평소처럼 혼자 병원 방문을 했습니다. 치료가 끝나자 너무 긴장한 탓에 온 몸에 몸살 기운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버지가 동행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치료를 받는 동안 제 손을 꼬옥 잡아주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안도감과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신경을 건드리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온몸을 쪼여오는 날카로운 긴장의 아픔은 분명 없이 편안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아픔은 그 구체적 현실보다 보드라운 우리의 정서를 파고 드는 두려움이 더 큰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살아감에 늘 따듯한 무엇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제법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새벽녘 맑은 공기와 새소리, 화훼단지에서 만나는 수백 가지 예쁜 꽃송이들, 6월의 햇살에 이제 갓 고개를 내밀어내는 여린 오이 한줄기와 상추 한줌! 

그저 나는 이 사소함으로 행복합니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겁니다. 그럼 그때 가서 나는 또 새로운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오늘은 지금 내게 찾아온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다. 

으쓸하던 몸이 보일러로 따듯해진 집안공기에 이내 노곤해집니다. 참 이리도 단순한 것을요. 

추우면 따듯하게 하고 더우면 시원하게 하고 슬프면 위로받고 행복하면 나누면 될 입니다. 

뭐 그리 어렵게 할 필요 없습니다. 가끔은 단순함이 최고의 기술입니다. 

삶이 어려운 이유는 그러하여야 한다는 나만의 정의와 욕심 때문입니다. 

더 잘 살기 위해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그저 호흡하고, 먹고, 자고 그리고 웃고~ 씨익~ 하늘 한번 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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