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내가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이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라 합니다.
딸을 낳고 집으로 돌아온 날, 각종 시험합격 발표 날, 재수학원 보낸 아들 한달만에 만나던 날, 어린시절 소풍전날, 생일날 아침 등등
모두가 참 소박하고 일상적입니다.
한편 생각하면 나라는 사람은 참 주어진 틀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나 봅니다.
사실 결혼 할 때도 보니 여행이라고는 수학여행, 신혼여행이 전부인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30대의 어느 날은 이탈이라는 것이 하고 싶었습니다.
동생들과 나이트클럽이라도 가서 실컷 놀아보자 했는데 그것도 결국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이 순간 살면서 심장이 터질 듯 했던 순간이 언제인가 생각해 보니 한 장면이 떠 오르기는 합니다.
좀 어이없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남편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당구를 하러 가기로 약속한 남편이 저더러 같이 가자며 덥석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방망이질 쳤습니다.
그 심장의 비정상적 작동 때문에 현재 우리가 부부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당구를 전혀 하지 못하던 저는 그날 일명 ‘게임돌이’을 하며 그 자리에 온 선배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더랬습니다. ㅋ
1993년 7월의 어느 날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신청을 하러 왔던 남편과 나는 도서관 앞 등나무 꽃 아래에서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일명 군기가 빡~ 채워져 있던 남편은 정말 늠름해 보였습니다.
표정과 눈빛이 살아있고 어투도 자신감이 가득했습니다.
일명 ‘오빠가 다 해 줄게. 오빠만 믿어’였습니다.
21살 어린 나이에 2살 많은 그 오빠가 어찌나 크고 믿음직스럽던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운이 좋아 그렇치 큰일날 뻔 했습니다. ㅋ
여하튼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늘 당당하고 박력 넘치던 그 오빠야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주변인들에게 당연한 연인 것처럼 소문을 내고 그렇게 인지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불과 채 1달도 안된 것입니다.
아무리 어리고 판단이 미숙하다고 해도 제가 볼 때 다소 장난같기도 한 그 행동이 불편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커피솝에서 이야기 좀 하자 했습니다.
“선배, 저는 이렇게 소문내고 행동하는거 불편해요, 장난 그만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만난지 얼마된다고”
남편의 얼굴이 진지하게 굳어졌습니다.
“너는 내가 장난하는 것으로 보이니? 군대까지 다녀온 놈이 그럴 리가 있냐?”
그러면 이쯤에서 좀 자존심 있고 멋있어 보이려면 “아, 그래도 저는 선배 별로에요.” 이래야 하는데
현실 속 저는 그렇구나~ 하면서 그냥 그렇게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고도 몇 개월은 정말 숨막히게 설레이고 그립고 가슴 떨리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원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그 무엇처럼 우리는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5년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입니다.
21살 만났던 남편을 올해까지 약 29년 동안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의리라고 할지 동지애라고 할지 헷갈립니다.
그럼에도 제 삶에 있어 없으면 안 될 사람인 것은 확실합니다.
어느 순간에도 계산 없이 내가 망가져도 되는 사람, 세상 유일하게 내 속살과 마음을 내어주어도 되는 사람, 내가 불행을 만날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줄 사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입니다.
요즘 그 사람이 밖에서 참 힘이 듭니다. 그런데 삶의 영역이 달라 제가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어깨가 늘어져가는 그 모습을 그저 매일 옆에서 안타깝게 바라볼 뿐입니다.
집에서 한껏 안아주고 보듬어서 내 보내면 또 쓰러지기 직전으로 펀치를 맞고 돌아옵니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두려울 정도입니다.
성탄절 새벽 일찍 잠들었던 덕분에 5시 기상을 합니다.
이른 아침도 먹고 책도 읽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7시 30분이 넘어가자 이제 세상의 또렷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새근새근 잠든 남편을 보고 옷을 챙겨 입고 등산을 나갑니다.
집안이 따듯하여 미처 몰랐습니다.
-10도, 아우~ 귀 끝이 떨어져 나가는것처럼 아려옵니다
그래도 하늘의 햇볕은 눈부시고 그 빛은 시각적으로 그리 없이 따듯합니다.
추위로 굳은 몸을 따듯한 샤워로 녹여내니 그리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남편이 말없이 추위에 후들리는 제 몸을 꼭 안아주며 말합니다.
“병난다, 일 좀 줄여.”
에이~ 이 감동~ 이래서 내가 더 열심히 산다. ㅎ
점심준비하려고 보니 부엌이 엉망입니다.
어제 밤 그들이 마신 술병과 치킨 찌거기, 산더미같은 설거지들, ㅠㅠㅠ
퐁퐁 거품을 보글보글 내고 따듯한 온수로 닦아내는 설거지가 묘한 평화로움을 가져다줍니다.
이런저런 일상의 대화들이 흘러갑니다.
“여보, 당신 박근혜 대통령 최근 사진 봤어? 진짜 이상하게 변했더라.”
“응, 그렇더라.”
“그렇게 보면 다들 왜 그렇게 대통령을 못해서 안달일까? 뭐 끝이 행복한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그러게 말이야.” 열심히 손을 움직이다 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대통령들보다 훨씬 행복한 것 같아. 돈이나 권력이 좀 없어도 나는 든든한 남편도 있고 딸, 아들도 있는데. 사는 것도 걱정 없고.”
남편이 어이없는 듯 웃습니다. 이 사람, 요 며칠 스트레스로 다크 서클이 잔뜩입니다.
에크~ 안쓰러운 사람. 마음이 요동칩니다. 아이들과는 또 다른 안타까움에 꼭 안아줍니다.
그 옛날 심장이 터질 것 같던 설레임은 이제 없고 세월의 흐름에 기가 꺾인 아저씨가 한명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가벼운 감정보다는 묵직함이 많아지고 우리는 무던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30대에는 이런 삶의 안정감이 무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50이 눈앞에 오니 오히려 감사합니다.
아무런 변화 없는 다음날 아침 햇살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젠가 가슴 두근거림의 추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점심 먹고 저녁 메뉴를 걱정하는 이 순간의 지리함이 제 삶의 두근거림이니까요.
“여보야, 힘내라. 오빠야만 믿으라며~ 진짜 나는 믿고 있데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