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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21. 2023

운명을 디자인 하다.

"음~ 약해! 기운이 많이 약해서 노력을 많이 해야겠어."

딸의 초등임용시험 원서접수를 하던 시점, 누군가가 그리 말했습니다. 

딸의 임용 시험운이 약해서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어릴적부터 공부라면 늘 우수한 아이였고 교대에 입학할때도 전체 차석이었구요. 

그래서 주변 누구도 그 아이의 합격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습니다. 원래 시험에 확답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정말 알수 없는 수많은 기운들이 작용해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시험이라 믿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그건 과거 내 20대 시절 그렇게도 나를 좌절시켰던 중등임용 시험의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초조해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정해진 종교가 없지만 이럴 때는 꼭 누군가를 찾게 됩니다. 


딱히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곳도 아니고 아는 스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울산에서 가장 유명한 절에 무작정 전화를 했습니다. 

그저 아이들 수능치던 날이면 공개적으로 열리는 법회에 몇 번 방문하던 곳입니다. 

다만 그렇게 큰 절이라면 뭔가 내 대신 빌어주는 기도 시스템이라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젊잖은 스님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옵니다. 

"스님, 제 딸아이가 조금 있으면 초등임용고시를 치룹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기운이 약하다 하는데 혹시 절에서 대신 해 줄수 있는 시스템이 있나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냉정하게 스님이 말씀하십니다. 

"보살님, 특별히 할게 뭐 있어요? 본인이 열심히 공부하고 어머니가 열심히 기도해야지. 다른사람이 뭔가 해주는 것은 없어요."

순간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참으로 어리석게 또 내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고 생각하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전화를 끊고 그 순간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딸에게는 너무 운이 좋아서 틀림없이 합격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본인의 자신감은 어떤 요소보다 중요하니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머리에 떠 올랐습니다. 

"따님은 늘 촛불을 켜두면 앞날이 밝아지고 좋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7일 양초라는것이 있습니다. 즉 7일 동안 타는 양초라서 안정감도 있고 화재 예방도 되고 무엇보다 오랜시간 촛불을 밝힐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2차 시험날까지 계산해보니 약 100일입니다. 

그래서 그 시간분만큼의 양초를 주문하고 그날 이후 우리집에는 단 한 순간도 촛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108배를 시작하며 노트 한 권을 준비했습니다. 

하루에 100번, 100일 동안 간절한 소원을 적으면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 100번 100일 동안 소원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운이 좋아지는 여러가지 방법 중 진심으로 나를 생각하는 사람의 기도만큼 효과가 있는것은 없습니다.”

자식에게 있어 부모의 간절한 기도만큼 그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또 있을까요?

저는 빌고 또 빌고, 적고 또 적었습니다. 

"ㅇㅇ 초등임용 합격했다." 


그렇게 시작된 100일 프로젝트는 2023.1.13.일 마무리 되었습니다.

정말 100일 동안 단 1초도 촛불을 꺼트리지 않았고 단 하루도 100번 소원 적기를 놓친 날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살짝 비웃던 가족들도 점점 한 마음이 되어갔습니다. 

같이 바라고 또 바라고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드디어 2023.1.27.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났습니다. 

결과는 합격!

그런데 성적이 압도적으로 우수합니다. 조금만 더 힘냈더라면 한자리수로 통과했을 점수입니다.

"이상해. 엄마. 나는 내가 그렇게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네. 헤헤"

"그게 다 엄마의 촛불의 힘이야."

"진짜, 그런가? 촛불의 힘인거 같기도. ㅎㅎㅎ"

거실 한켠 매일 촛불을 켜두던 잔재물이 보입니다. 

깊은 긴장의 끝은 항상 알 수 없는 허전함입니다. 

제법 도톰해진 하루 100번 100일 노트를 넘겨봅니다. 

비뚤비뚤 하던 글씨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정돈되는 힘이 보입니다. 

빙그레 웃음이 묻어납니다. 어쨌든 나는 운명을 바꿨습니다. 

내게 메시지를 전했던 사람이 틀렸을수도 있지만 그 순간 그 말이 내게 분명 불안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고 그 운명을 내가 바꾸기 위한 최선을 다 했습니다. 

즉 운명을 디자인 한 것입니다. 


물론 이 결과에 누구보다 큰 변수는 딸의 노력이었습니다. 본인의 공부가 없었다면 엄마의 간절한 소망이 그리 크게 작용할 것은 없으니까요. 

다만 딸도 보았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별나게, 얼마나 간절히 최선을 다해서 빌고 또 빌고 있는지...

그러니 함부로 시간을 낭비할수도 없었고 함부로 내 팽개칠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팀으로 훌륭한 팀워크를 발휘하며 지난 100일을 지나온 것입니다. 

살면서 좋기만 한 날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럴때마다 좌절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결과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해보는 겁니다. 아주 조금 정말 마지막 점 같은 그 실오라기 희망이라도 잡아보는 겁니다. 

그 마지막 순간 '그때 해볼걸~' 하는 후회 따위는 남기지 않아야 하니까요.

2023년 새해 큰 복과 선물을 받았습니다. 

'역시 나는 운명을 디자인 하는 여자! 해피영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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