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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21. 2023

모든게 다 내 책임이다.

"가시나야, 엄마말 안 들을끼가? 달맞이라서 궁합이 안 좋다 안하나~"

"무슨 소리야, 요즘 세상에 그런말을 누가 믿어. 난 상관없어."

"살아봐라, 그런기 아이다. 와 사서 고생할라고 하는데?"

1997년, 5년을 사귄 남자친구와의 궁합이 좋지 않다며 엄마는 이별을 고하라 했습니다. 

내 나이 21살에 만나 25살 될때까지 셀수도 없는 추억을 쌓은 그 사람을 어떻게 잘라내란 말인가?

어릴때부터 저는 굉장히 고집쎄고 주도적인 성격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절대로 엄마말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


나는 무작정 철학관을 찾았습니다. 어디가 용하다더라 하는 말을 들을 인터넷도, 직장동료도 없던 시절이라 그저 동네골목을 걸어다니며 대나무 꼭대기에 빨간 천이 달려있는 집을 유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빨갛고 파란 천이 달린 대나무가 서있는 집은 '여기는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하는 표식이었습니다. 

고불고불한 시멘트 골목 어느 길목에서 멈추었습니다. 작고 초라한 지붕 아래 파란 양철 대문이 열린 마당으로 대나무 표시가 보였습니다. 

용감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긴 머리를 말아 올려 비녀를 꽂은 나이 든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맞이합니다.

알수없이 알록달록한 방안에는 처음 보는 물건들이 많아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전 당당했습니다. 

"제가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궁합을 보려구요. 우리 엄마는 안 좋다고 하는데 전 그걸 믿을수가 없어요. 제가 직접 확인하러 왔어요."

할머니는 정갈히 정신을 가다듬는 듯 눈을 가만히 감았고 잠시 후 입을 열었습니다. 

"생년일시를 말해 봐라."

엊그제 전화로 남자친구에게 들은 날짜를 알려주고 눈을 반짝이며 기다렸습니다. 

"너그는 나쁘지 않다. 잘 살끼다. 니는 결혼을 늦게 하는것이 좋기는 하고 이 남자가 아니라도 다른 좋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니가 아니면 안되것다. 그라니까 결혼해라."

지금 생각하면 이 무슨 말인가 싶지만 그 당시 제 귀에는 잘 산다는 그 말만 들렸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당당하게 돌아가서 그 말을 그대로 전했지요. 

그렇게 저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했으니 꽃길만 걸어야 하지만 절대 삶은 그리 쉬운곳은 아니었습니다.     

정신 차릴 수도 없는 다양한 사건과 시간들이 늘 눈앞에 나타났고 우린 그것들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26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결혼하고 살면서 문득 문득 그 할머니 말이 떠 오릅니다. 

"니는 그 남자가 아니어도 되지만 그 남자는 니가 있어야 한다."

'정말 용하단 말이야. 남편은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 보면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그럼 우리가 잘산다는 말도 맞겠지?'

그렇게 늘 희망을 안고 살면서 내가 정말 한 명의 인생을 구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제가 중심인 생활을 살았고 남편이 제 이야기에 동의하고 따라오는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남편이 항상 내게 동의를 해야 하지? 왜 매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거지?'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남편은 늘 내편이었고 내가 맞다고 했습니다. 

어쩌다 아니라고 하면 나는 2박 3일은 드러누워 서러워했습니다. 

평생 남편은 그런 나를 품고 살아주었던 겁니다. 

살면서 제일 힘든 시절, 그때 남편에게 제가 부탁한 것이 있습니다.

"여보, 당신 내옆에 지금처럼 든든하게 있어주라. 큰 아름드리 나무처럼 단단히 옆에 서 있어만 주라. 그럼 나 다 이겨낸다."

"당연하지. 내가 다른건 못해도 늘 이렇게 건강하게 단단하게 있을거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살아."     


오늘 아침 출근하는 남편을 꼭 안아줍니다. 

"조심해서 잘 다녀와. 당신은 내 우주야!"

"그렇치, 아직은 내가 건강하게 돈을 잘 벌어다 줘야지. ㅎㅎㅎ"

"뭐??? 그래. 맞아. 아직은 더 많이 벌어줘야지. ㅋㅋㅋ"

아직도 우리는 여전히 20대 그 시절 아이들처럼 토닥거립니다. 

어느 책 구절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인생의 모든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

'그래. 맞지. 내 책임이지. 내가 만약 그때 엄마 말만 듣고 수동적이었다면 지금 나는 없겠지? 별스럽고 고집쎈 내가 그래도 참 괜찮네. ㅎ'

그런데 문득 그 용하다고 믿었던 할머니가 말이 다시 생각납니다. 

'그 남자는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거 맞다. 그런데 나도 그 남자가 없으면 안 된다. 그 중요한 걸 모르다니~'

역시 드라마는 최종회를 보아야 그 결말을 알수 있고, 인생은 끝까지 살아보아야 참된 진리를 만나나 봅니다. 

오늘 나는 나의 고집쎄고 주도적인 이 성격을 칭찬합니다. 

그 성격이 아니었다면 지금 다른 사람과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역시 인생의 진리입니다. 

"모든 책임은 다 자기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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