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세수했다.약 발라줘”
어린아이처럼 남편은 아침, 저녁으로 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남편의 눈썹이 반 토막이 된 것을 나는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보니 우스꽝스러운 짱구가 되어 있는 겁니다.
요즘은 남자들의 문신도 그리 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원의 동생이 전문 숍을 운영한다는 얘기를 듣고 인연이 되어 드디어 문신을 했습니다.
시술을 마치고 그 원장님이 그러더군요.
“당분간 아플거에요. 아침저녁으로 제가 드리는 이 연고를 상처에 발라주세요.”
그랬더니 세수만 마치면 남편은 저를 불러 눈썹주변 상처에 연고를 발라 달라합니다.
아침에 두 부부가 마주 앉아 면봉으로 눈썹 주변을 쓱쓱~ 연고로 도포를 합니다.
“내가 남자라서 말을 못해서 그렇지 정말 아프더라. 마취가 잘 안 되어서 힘들었어.”
“그래서 내가 당신 손을 꼭 잡아 줬잖아. 두렵고 아플까봐.”
“그럴거라는거 어떻게 알았어?”
“당연한 거 아니야. 원래 뭐든지 실제 아픔보다는 막연한 공포가 힘든 거야. 내 팔뚝 봐. 며칠 전 조직 검사할 때 너무 두려워서 손톱으로 뜯었더니 이렇게 상처가 놨어. 실제로는 그렇게 아픈 것이 아니었는데 기다리는 공포가 얼마나 크던지”
말을 하는 중에 입으로 뱉어져 나오는 제 말에 얼마나 공감이 갔는지 모릅니다.
최근 요 며칠이 제가 그런 시간입니다.
2주전 자궁경부 암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1주일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암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나왔어요. 병원을 방문해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지금은 뚜렷이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암은 아닌 거 같고 전암 단계 같습니다. 그래서 조직검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에 눌러 순간 멍 해졌습니다.
암은 아니고 전암단계라는 표현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좋은 것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취를 하지 않고 조직을 떼어내기 때문에 아플거에요.”
그렇게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결과가 1주일에서 10일 정도 걸려서 나온다고 했는데 하루하루가 불편합니다. 나름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마음의 준비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의 롤러코스트는 그 폭과 회전율이 어질하여 멀미가 날 지경입니다.
뭐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큰 병이 있으면 치료하고 크지 않으면 감사하다 하면 됩니다.
덕분에 현재 나의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만났습니다.
어제까지 사소하게 다투고 안타까워하던 마음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그런 어이없는 것들에 집착하고 힘들어 했을까?’
그저 이렇게 존재하는 것으로도 감사한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말입니다.
중학교 어느 날 치과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치과의 공포는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시간입니다.
첫째 날은 혼자 병원 방문을 했습니다. 치료가 끝나자 너무 긴장한 탓에 온 몸에 몸살 기운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버지가 동행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치료를 받는 동안 제 손을 꼬옥 잡아주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안도감과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신경을 건드리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온몸을 쪼여오는 날카로운 긴장의 아픔은 느끼지 않고 너무 편안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아픔은 그 구체적 현실보다 보드라운 우리의 정서를 파고 드는 두려움이 더 큰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살아감에 늘 따듯한 무엇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제법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새벽녘 맑은 공기와 새소리, 화훼단지에서 만나는 수백 가지 예쁜 꽃송이들, 6월의 햇살에 이제 갓 고개를 내밀어내는 여린 오이 한줄기와 상추 한줌!
그저 나는 이 사소함으로 행복합니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겁니다. 그럼 그때 가서 나는 또 새로운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오늘은 지금 내게 찾아온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다.
으쓸하던 몸이 보일러로 따듯해진 집안공기에 이내 노곤해집니다. 참 이리도 단순한 것을요.
추우면 따듯하게 하고 더우면 시원하게 하고 슬프면 위로받고 행복하면 나누면 될 입니다.
뭐 그리 어렵게 할 필요 없습니다. 가끔은 단순함이 최고의 기술입니다.
삶이 어려운 이유는 그러하여야 한다는 나만의 정의와 욕심 때문입니다.
더 잘 살기 위해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그저 호흡하고, 먹고, 자고 그리고 씨익~ 웃고~ 하늘 한번 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