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초등학생 때는 캠핑을 자주 갔었습니다.
나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텐트에 코펠에 각종 장비들이 잔뜩입니다.
그래서 차도 SUV를 샀더랬습니다.
그렇지만 제 아무리 짐이 많다 해도 차 한 대에 어찌 구겨 넣고 우리는 신나게 캠핑을 갔고 2박 3일은 거뜬히 잘 지내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 시절 캠핑을 가면 꼭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텐트 하나에 코펠 세트 하나, 그리고 몇 가지 도구만 있으면 이렇게 며칠을 자고, 먹고 할 수 있는데 우리 집에는 왜 그렇게 짐이 많을까?’
사실 챙길 것이 별로 없고 음식 재료도 정해져 있으니 집에서 보다 모든 것이 준비하기 수월했습니다.
그래도 음식 맛이나 그 만족도는 결코 떨어지지 않고 신나기만 할 뿐이구요.
그러니 항상 뭔가 알 수 없는 가벼운 삶에 대한 성찰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그런 성격이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름 준비성이라는 명칭 아래 저는 무엇이든 여분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사람입니다.
식용유, 밀가루, 냄비, 옷, 책, 양념, 우산, 신발 등등 정말 우리 집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모두 완벽하게 여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편리함이 더 많고 마음이 든든하지만 한 번도 집이 깔끔하다는 느낌은 가져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짐이 많으니 아무리 정리하고 챙겨 넣어도 돌아서면 알 수 없는 막힘을 만나는 거지요.
이런 성격이 어디 물건에만 해당 되겠습니까?
사람관계에서도 이곳저곳 참 다양한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관계는 안다는 것에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의미 있는 관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상호 간의 주고 받음이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에너지가 소진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참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하고 사람 관계를 위한 만남도 이어가야 하니 늘 뭔가 빼곡한 시간입니다.
좋은 말로 멀티플레이어를 잘 수행하는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의도하지 않은 시간과 사건에 많이 노출되고 그로 인해 고달픈 과제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때는 그리 위로를 했습니다.
‘새로운 뭔가를 하려면 어쩔 수 없어. 가진 자의 왕관이야.’
몇 년 전부터 강하게 그런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단순해져야 한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단순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게 인지하고 보니 잘라내어야 할 인연도 많고 내려놓아야 할 생각도 많고 버려야 할 물건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코로나 기간,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비상식량이라는 이름으로 채워둔 다양한 식품들이 유통기한 넘어 쓰레기로 변했습니다.
한 뭉치 사 두었던 부탄가스도 몇 년째 포장지에 싸여있고 끊임없이 사 날랐던 화장지는 몇 년을 써도 사라지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렇게 자꾸만 돈을 주고 쓰레기를 모아가는 내가 보입니다.
몇주전부터 냉장실이 자꾸만 얼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겨울 냉장고 온도 장치를 교체했기에 아무래도 냉장고 음식양이 문제인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일단 마트 장 보는 것을 중단하고 내용물을 최대한 버리고 소진했더니 정말 신기하게 결빙 현상이 사라졌습니다.
혹시 그런 경험이 있을까요?
깨끗한 바닥에 쓰레기가 하나 떨어져 있으면 우리 눈에 아주 잘 띄어 줍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수많은 물건과 쓰레기가 있으면 우리는 쓰레기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딱 그런 느낌입니다.
내 삶에 분명 치우고 없애야 할 것들이 있는데 너무 많은 물건 속에 섞여 있으니 인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 초부터 비움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단 거실을 했고 안방, 베란다까지는 갔습니다.
사람도 정리 중입니다. 내가 애쓰고 억지로 잡아둔 인연이 진정한 인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가장 심플한 마지막 그 물건과 그 사람이 참 인연이고 내 삶의 필수요소입니다.
행복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돈도 권력도 지식도 사람도 물건도 최대한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부족함이 아닌 너무 많은 에너지로 힘들어 합니다.
단지 음식을 덜어냄으로 제 기능을 찾는 냉장고를 보며, 버리지 못해 부패하고 얼어가는 과욕의 부작용을 뒤돌아봅니다.
정말 삶은 단순해야 합니다.
오늘은 내 인생에 한 덩이 들어내고 가진 자의 왕관이 아닌 무소유의 편안한 숨결을 꿈꿉니다.
그렇게 불필요한 것에서의 자유를 향해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