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시각, 청각, 촉각으로 느낍니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는 다른 대상물을 통해 바람을 느낍니다.
저는 흔들리는 나뭇잎이나 사물들을 보면 ‘아, 바람이 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람은 시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주 전 동생과 초등학교 6학년 조카와 등산을 가게 되었습니다.
숲속의 아름다운 햇살이 이제 막 올라오는 연초록의 나뭇잎과 합체되어 인위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풍경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수줍은 몸짓으로 나뭇잎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처럼 ‘아~ 바람이 부는구나~’라는 생각이 올라왔지요.
옆에 있던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ㅇㅇ아 나는 바람을 시각으로 느껴. 저기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바람이 부는구나라고 생각하지. 너는 어떨 때 바람이 분다고 느껴?”
“그래? 나는 청각으로 느끼는데.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고 알지 않아?”
“아니지. 시각이지. 니가 이상한거 아니야?”
“아니다. 언니 네가 이상한거야.”
동생은 옆에 있던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에게 무엇으로 바람을 느끼는지 물었습니다.
“엄마, 나는 촉각으로 느끼는데. 바람이 불면 얼굴이 간지럽잖아.”
헐~~~ 세상에~~~ 고작 3명이 있을 뿐인데 바람을 인지하는 이유가 다 다른겁니다.
그런데 듣고 보니 또 공감이 갑니다.
그때 숲속의 눈앞에서 ‘쏴~~~’하는 소리가 지나가더니 얼굴에 기분 좋은 시원함이 부딪혀 옵니다.
바로 청각과 촉각이 동시에 도달하는 순간입니다.
아~ 평소에 경험하고 느끼고 하던 시간인데 저는 제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사고의 틀 안에서 하나의 진실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만납니다.
이렇게 바람이 분다 라는 같은 결론을 만나도 우리의 생각이 각자 다른데 다른 의견들에는 얼마나 치열한 관점의 이견이 있을까요?
우리는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을 만나면 한없이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고 그 상대가 틀렸다는 결론을 내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나도 참 다른 생각을 하는 답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매일 이런 현상을 일상으로 만납니다.
일차적으로 남편과 아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휴, 답답하네. 진짜. 왜 내 말을 못 알아 들어?”
“그건 네 생각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 됐어. 더 이상 말하기 싫다.”
아니, 너무 답답하잖아요. 왜 그걸 그렇게 생각하냐구요. 더불어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구요. ㅎ
그런데 상대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헛 웃음이 나네요.
저는 어린시절 참 제도권에 적합한 아이였습니다.
일명 모범생이었지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동그란 양철 밥상을 펼치고 또박 또박 숙제를 시작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숙제를 다 마치지 않으면 나는 친구들과 놀러 나가지 않았고 만에 하나 실수로 그것을 놓친 다음날 새벽에는 펑펑 울면서 숙제를 하고 있는 내가 있었습니다.
그런 나는 숙제를 하지 않거나 미루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그들에게 그랬습니다.
“나는 도대체 니들을 이해할 수 가 없어. 어떻게 숙제를 안하고 놀 생각을 하지?”
옆에 있던 남편이 그럽니다.
“난 당신이 더 이해가 안돼. 숙제는 안 하고 싶은게 정상 아니야? 난 많이 안 하고 갔는데. 그걸 어떻게 다할 수 있어?”
“맞아. 아빠 말이 맞아. 엄마가 이상한 거야.”
졸지에 그들과 나의 편이 되어버린 논쟁은 머리 수에 밀려 나의 패배로 끝나는 듯 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주변인에게 반 농담으로 말했지요.
“우리 집은 그들과 나, 3:1이에요. 나랑 다른 그들이에요. ㅎ”
그 표현 안에는 외로운 나 이지만 그래도 내가 맞는것이고 그들이 틀린것이라는 전제가 확고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를 적다 보니 뭔가 꿈틀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쩜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과 저것처럼 다름의 문제일 수 도 있겠다 싶은 겁니다.
MBTI 성격 유형도 수십가지가 나오는데 생각이 어찌 한 가지만 나올수 있겠냐 싶습니다.
오류도 너무 큰 오류를 안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한가지 생각으로 세상이 돌아갔다면 평화로운것이 아니라 엄청난 재앙에 노출 될 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그게 바로 독재가 될 테니까요.
역시 삶은 늘 배우고 고치고 또 갈등하고 수정하는 과정인가 봅니다.
4월의 산속에서 만난 바람은 내게 또 귀한 삶의 메시지를 담고 왔습니다.
그저 시각으로만 존재하던 바람이 시각, 청각, 촉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오늘은 내 주변의 이들에게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멋짐을 부려보려 합니다.
이렇게 내 삶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