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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21. 2023

3년 적금은 아버지의 희망이고 행복이다.

“이번에 농협에서 5.4% 이율 적금이 나왔더라고. 10만원 이상 30만원까지 이고 적금기간이 3년이더라. 다 마음에 드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조금 걸리던데 그래도 3년 후면 내 나이가 85살이고 100세 시대에 그 정도는 살아야 안 되겠나 싶어 하나 가입했다.”

아버지는 월 10만원 납입하는 적금을 가입하시고 제게 자랑을 하십니다. 

아마도 나 3년은 당연히 더 살아갈거다 하는 확신을 가지고 시행하신 느낌입니다.

문득 아버지는 저금 하나 가입하는 것도 이제 신중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나 싶어 마음이 짠 해져 옵니다.

누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다 싶은 이야기가 어떤 누구에게는 너무도 큰 과제가 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100세 시대에 85세는 살아야 안 되겠나 싶었다.’ 하는 아버지의 말이 자꾸만 마음속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집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제게 우주였고 어떤 위험도 막아주는 튼튼한 울타리였습니다. 

그러니 단 한 번도 아버지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시간을 인식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2022년 4월 엄마가 돌아가시고 당장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도 어느 날 문득 나의 곁을 떠나 갈 수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고는 하루 하루가 두려운 시간입니다.

아버지는 개인적으로 유독 ‘죽음’이라는 단어를 싫어하셨습니다. 

엄마는 늘 살아 생전에 “내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살 만큼 살았다.” 이리 말씀하셨지만

이런 엄마의 말에 아버지는 “죽는다는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니는 몰라도 내는 건강하게 오래 살다 죽을기다.”라며 정색을 하셨습니다.     

그럼 엄마는 “참 어지간이도 오래 살고 싶나 보네~” 하며 아버지를 핀잔주곤 했습니다. 

그런 엄마도 정작 죽음을 눈앞에 두고는 너무도 절박하게 생을 이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엄마의 애절함을 보았기에 아버지가 더 걱정이 되는 시간입니다.

“아버지 진짜 잘 하셨어요. 그럼요 3년은 금방 가요. 적금 잘 넣으셨네요.”

아버지의 결정에 기운을 더하기 위해 오버스럽게 리액션을 해 줍니다. 

사람은 가끔 목표가 있고 그것에 대한 긴장과 희망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어쩜 3년 후 수 백 만원의 만기가 돌아오는 적금 하나가 아버지에게 작은 긴장과 희망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 행복하다는 기준이 수시로 바뀌는 요즘입니다.

어찌될지 모르는 내일의 불확실성을 안고 고민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오늘 행복하고 좋은 것을 많이 만드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아는 지인분이 후무사 자두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5킬로 한박스 3만원, 4만원, 5만원.

과거 나는 3만이나 4만원 중 하나를 선택주문하면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구를 참고 견디는 나를 칭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 특상품 5만원 한 박스 주세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먹을 과일이고 최근 몸이 아파보니 그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조차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먼 후일 내가 힘들어 음식의 미각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시간에는 그 자두가 특상인지 버려지는 제품인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오늘 이순간 최대한 행복하고 즐길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입니다. 

삶에 중용이 참 중요합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의 선택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삶을 잘 살아간다는거 별거 아닙니다.

아버지에게는 3년의 적금이 희망이고 행복이고 제게는 입안 가득 달콤한 과일 한 알이 행복입니다.

인생 심각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지금 여기,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정답입니다. 

“아버지 우리 3년 후에 적금 만기 타서 맛난 거 먹으러 가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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