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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Nov 25. 2021

나의 평범한 일상이 타인의 불가능한 행복입니다.


하루사이 급격하게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에 몸이 움츠려 들고 덩달아 마음도 추운 날입니다. 

몇 년을 매일 포스팅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내게는 진심을 담은 글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발행한다는 것이 쉬운 듯 어려웠습니다. 

무쓰무행 프로젝트를 할때는 글을 매일 쓰지만 프로젝트가 쉬는 기간에는 나의 글쓰기도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강제적 규율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작용을 하는 것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없는 기간에도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웃님들에게 100일 연속 글을 쓰겠다고 선언을 했었습니다. 


스스로 강제성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이웃들에게 나의 계획을 드러내고 응원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글이 잘 쓰지는 날도 있지만 정말 머리에 쥐가 나는 날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잘 쓰려고 할수록 점점 굳어가는 머리에 그저 편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풀어내자 싶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소소한 나의 이야기가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아들의 수능이야기, 수능을 마친 후 술자리 이야기, 남편과의 데이트 이야기 등 그저 내가 살아가는 그 순간이 가장 특별한 시간이고 살아있는 시간이었기에 그 속에서 느낀 나의 감사와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나의 글에 격려와 응원과 공감의 댓글을 많은 분들이 보내주셨고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도 댓글을 달고 그분들의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니다. 

그러다 어느 분의 블로그 글에서 나의 시간은 정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눈물이 또르르 흐르고 미안함과 죄송함, 그리고 지독하게 이기적인 감사함까지 뒤범벅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습니다. 

방안에 있던 아들이 놀라 뛰쳐나왔습니다. 

“엄마, 왜? 왜 울어?”

아들의 작은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한분의 댓글이 그랬습니다. 

“따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음 그 글을 보았을 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많은 댓글 중 하나였기에 깊은 생각 없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다른 분의 글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블로그 글을 읽으며 왜 따라할 수 없는지를 알고 만 것입니다. 


남편분이 6년 전 딸의 수능이 10일 남은 순간 그만 하늘나라로 가 버렸답니다. 

그러니 수능 날이 다가오면 그렇게도 다정했던 남편과 딸 생각이 나는 겁니다. 

매년 기일이 다가오면 세상은 특별한 이벤트로 늘 시끄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수능 날 아들기도, 남편과 아들과의 저녁 술자리, 또 남편과의 한가한 일상을 올렸으니 그 모든 글들이 부러움과 서러움으로 마음에 들어 선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분의 슬픔덩어리를 강하게 건드린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느 카페에 앉아 나의 글을 보다 눈물이 났다는 말에 가슴이 녹아내리는 아픔이 전해집니다. 

저는 그분도 그분의 남편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저 심한 공감이 올라오며 마치 형제의 아픔처럼 그렇게 힘들어집니다.  


블로그를 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그 중 서로이웃을 맺고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아주는 인연의 수는 극도로 낮은 확률입니다. 

그런데 그분과 저는 불과 2주 사이에 이웃이 되었고 서로의 글을 보며 공감하고 행복해 하다 또 아파 울고 있습니다. 


삶이 왜 신기하다고 하는 것인지 다시 느끼는 시간입니다. 

그저 무심히 하는 나의 행동과 말이 누구에게 생각하지 않은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삶의 무게가 전달됩니다. 

나의 그것이 감사와 행복이라면 상관없지만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건드린다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제가 그분의 힘든 시간을 건드렸다는 무거움에 아주 잠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한 격려의 답을 주십니다. 

“죄송하다니요, 천만에요. 영희님 덕분에 오랜만에 남편한테 편지도 썼는걸요.”


사람이 살아감에 감동이란 것이 너무도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지만 저는 이런 마음의 글귀 하나가 그리도 울컥합니다.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가에 대한 보상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과거 저도 참 많이 아팠습니다.  


그 아픔이란 것이 객관적인 점수로 매김을 할 수는 없지만 제게는 숨을 쉴 수가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행복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잘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잘살기 위한 방법들을 진심으로 찾고 또 찾아 헤메이었습니다. 


가끔은 나 스스로 미친년 같다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미쳐야 나는 최소한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거울보고 헤헤거리고, 중얼중얼 나에게 말도 걸고....

이렇게 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 10년 그렇게 살아보니 신기하게 행복한 내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행운이고 축복입니다. 

올해는 봄날 하늘을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도 보았고 휴가내고 딸과 벚꽃놀이도 갔고 가을날 꽃비가 되어 내리는 낙엽의 장관도 만났습니다. 


누구나 누리고 경험할 수 있지만 모두가 경험하고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행복도 그렇게 노력하는 이에게 허락되는 축복입니다. 

나의 평범한 일상이 누구에게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귀한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말 호흡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세상이 정한 기준을 위해 아득바득 사는 어리석음 보다 나의 마음에 반짝이는 보석들을 잘 품길 빌어봅니다.

“ㅇㅇ님, 제가 진짜 약속해요. 언제라도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저 해피영희잖아요.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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