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오진으로 대학병원에 입학한 적이 있습니다.
‘뇌종양’ 천청벽력같은 소리였습니다.
자세한 검사를 위해서 3일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초2, 7살, 눈물이 앞을 가렸지요.
어린것들을 돌보아야 하니 남편은 얼굴만 잠시 비추고 병실에 혼자 누워있었습니다.
그때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앙상한 여자분이 입원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저보다 나이가 2살 많은데 폐에 문제가 생겨 오신분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중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태어나서 먹고싶어서 음식을 먹어본적이 없어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어 먹어요. 맛있는거 먹으러 차타고 가는 사람을 제일 이해할 수 없어요.”
이럴수가? 우리는 대부분 입은 맛나고 몸은 무거워지고 하니 걱정인데 이 무슨 말인가 싶었지요.
아직도 제가 만나본 많은 사람들 중 제일 신기한 분이 이분입니다.
제게는 음식과 관련된 추억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복숭아와 방울토마토가 생각납니다.
제가 5살 전신마비가 되었을 때는 뜨거운 여름날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언제나 노란 황도를 사서 껍질을 벗겨내고 밥 숟가락으로 푹~ 떠서 입안에 넣어주셨습니다.
말랑하고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지는 순간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5살 어린 시절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황도 복숭아가 연상됩니다.
어른이 되어서 보니 제법 맛있는 황도 복숭아는 가격이 만만찮습니다.
그 옛날에도 싼 과일은 아니었을텐데 그리 보면 또 할머니는 어린 손녀가 참 안타까웠구나 하는 마음이 전해져 가슴 한구석이 아려옵니다.
두 번째는 방울토마토입니다.
이게 특별히 맛있는 과일도 아니고 비싼 과일도 아닌데 무엇인가 싶을 겁니다.
대학교 3학년 어느 날 남편과 저는 수업을 마치고 남편의 자치방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만난지 1년도 안 된 풋풋한 연인이었고 여전히 순수하다 못해 바보스러움과 촌스러움이 잔뜩이던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의 자치방을 가려면 재래시장을 거쳐야 했습니다.
순대도 보이고 야채도 보이고 어~ 작은 방울토마토가 제 눈에 띄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토마토는 주먹만하게 커다란 것들이고 그 맛도 싱거워 설탕가루를 마법처럼 뿌려먹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먹어본 방울토마토는 한입에 들어가지만 맛도 당도가 높아 막 떠오르는 신상 과일이었습니다.
“오빠, 우리 방울토마토 사 먹자. 나 먹고 싶어.”
“됐다. 큰걸 먹어야지 저 조그마한걸 뭐하러 먹노.”
그러더니 정말 잠시의 주춤함도 없이 쌩~ 걸어가 버립니다.
못내 아쉬워 발길이 느려진 나는 멀어져가는 오빠야와 빨간 방울토마토 사이에서 감정이 폭발해버립니다.
22살 아이도 어른도 아닌 나는 눈물이 나기 시작합니다.
‘나쁜 오빠야. 내가 방울토마토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걸 무시하고 그냥 갈수가 있지? 나를 사랑한다면서 겨우 3천원 과일 하나도 못 사준단 말이야?’
원래 감정이란 놈은 한번 그 모습을 발현하고 나면 여간해선 진정되기 힘든 성향이 있습니다.
냉정한 오빠야는 저만치 걸어가고 나는 눈물을 훔치며 뒤따라가고,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습니다. ㅎ
자치방에 도착한 저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울음이 무려 3시 30분....
나중에는 하도 울어 눈앞이 안 보이고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서럽지만 남편은 당황스러움에 어쩌지를 못합니다.
“왜, 우노? 그게 그리 서러울 일이가? 오빠가 담에는 꼭 사주께. 울지마라.”
“오빠는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면서 내가 먹고 싶다는 것도 안 사주는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 가 버리는데.”
“엉엉엉~”
“내가 잘못했다. 제발 울지마라.”
몇 년전 그 이야기를 들은 남자 후배가 그랬습니다.
“차장님, 바보였네요. ㅋㅋㅋ”
지금 보면 바보 같은 순간이지만 그때 저는 정말 진지했습니다. ㅋㅋㅋ
우리 아빠라면 정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사주었을 방울토마토인데 그래도 명색이 22살 그 설레이는 시절 연인이던 사람이 그렇게 냉정하게 가 버리다니요.
그 당시 애인은 최소한 우리 아버지 이상이어야 된다는 깊은 신념을 가지고 있던 제게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이야기를 꺼내면 남편은 그럽니다.
“아니 진짜 나는 그때 방울토마토를 처음 봤어. 토마토는 큰게 맛있는데 왜 저런 작은 것을 돈 주고 사먹나 싶었지. 그런데 그렇게 서럽게 울줄 알았나?”
“그러니까 당신이 안 되는 거야. 그냥 모든 것을 다 수용했어야지.”
그러면 또 옆에 있는 딸에게 말합니다.
“딸, 너는 다음에 꼭 네가 먹고 싶다고 하는거 두말없이 사주는 남자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알았지?”
제게 음식이란 것은 일종의 사랑입니다.
엄마는 늘 3끼를 따듯하게 갓지은 밥상을 차려주었습니다.
국도 끓이고 고기도 굽고 나물도 정성스레 무쳐낸 그런 집밥이었습니다.
그때는 다 그랬다고 해도 유난히 엄마는 음식에 정성을 담았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반드시 부추전을 굽고 손으로 치대고 칼질을 한 칼국수를 끓여 주었습니다.
그 정성과 사랑 속에 우리 6남매는 늘 따듯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저도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집밥을 먹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주중에 안되면 최소한 주말이라도 실천하려 했구요.
요즘은 점점 외식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간단한 밀키트도 정말 잘 나오고 있는 세상입니다.
얼마 전 코로나19 백신패스가 시행되며 백신 2차 접종이 180일이 넘어간 사람은 식당 출입이 자유롭게 안 되고 있습니다.
PASS 화면을 띄워보니 D+169, 이제 11일만 지나면 저는 식당 이용에 제한이 생길 듯 합니다.
백신 부작용 이상 반응 신고를 할 만큼 고생이 컸던 탓에 3차는 신중할 계획입니다.
당분간 저는 예쁘고 맛있는 식당의 서비스를 받지 못할 듯 합니다.
그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작은 것의 소중함을 이리 느끼게 됩니다.
너무도 손쉽게 먹고 즐기던 행위 자체가 언제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행위가 됩니다.
역시 음식에는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그것 자체가 사랑이고 추억이고 고백이 되니까요.
설날을 맞이하여 사무실 직원이 직접 산지에서 사온 딸기를 한 통 줍니다.
한 알을 깨물어 보니 입안 가득 시원하고 설탕 같은 달콤함이 퍼져나갑니다.
그 달콤함 속에 음식에 대한 추억이 나오고 그러다 울컥 옛 시간이 그리운 날입니다.
할머니, 엄마, 남편, 그리고......
오늘은 퇴근 후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말하겠지요.
“나는 코로나19 백신패스가 사라지기 전 며칠날 나의 아름다운 시간을 위해 멋진 만찬을 먹었어. 지금 생각하니 그건 완전 사랑이었어.”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빙그레 미소가 납니다.
“여보야! 내가 28년 전 방울토마토 사건을 만회할 기회를 줄게. 오늘 저녁을 사라. 어쩜 당분간 가지 못할 외식에 대한 나의 조촐한 파티가 될 수 있으니까. 당신 사랑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야.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