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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라 Nov 22. 2020

행복의 조건

기술복제시대의 아우라

 로맹 가리는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4세 때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 니스에 정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공군에 입대하여 참전했고, 공을 세워 무공훈장을 받는다. 이후 1941년부터 1961년까지 외교관으로 일을 하며 여러 소설을 발표했다. 

 그 당시 발표한 소설 중 1956년에 발표한 《하늘의 뿌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받았다. 한 번 수상한 작가에게는 다시 주지 않는 상이다. 프랑스 문학계의 스타가 된 것이다. 


 그로부터 19년 뒤 에밀 아자르라고 하는 신예 작가가 나타나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으로 같은 상을 받는다. 하지만 에밀 아자르는 수상을 거부하며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온 언론이 떠들썩하게 그를 찾았지만 그는 결코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즈음 TV 프로그램에서 한 평론가는 로맹 가리의 작품을 혹평한 뒤, 아자르를 격찬하기도 했다. 


 프랑스 문학계가 충격에 빠진 것은 로맹 가리가 죽고 나서다. 66세에 생을 스스로 마감한 로맹 가리가 유서에서 자신과 아자르가 동일인이란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는 죽기 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내 삶에 의해 살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 사람들이 나에 관해 쓰는 모든 것에서 매일 나를 보지만 나는 내가 끌고 다니는 그 이미지 속에서 결코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의 이름을 쓴 건 자신을 오해하는 사람들을 피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 앞의 생》 작품 말미에 소설가 조경란은 이런 취지의 해설을 달았다. 

 “그 자신에게 중요했던 건, 그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한 번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오지 못했던 지난 삶에 대해 싫증을 느꼈던 것이다. 새 이름을 만든 것은 그에게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모든 기회를 다시 한 번 갖게 했다.”    


 잘 사는 삶에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시작된 연구가 있다.


 1937년 미국 하버드대 2학년생 268명이 인생사례 연구를 위해 선발됐다. 세계 최고의 대학에 입학한 수재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야심만만하고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이들이었다. 연구팀은 70년 넘게 조사 대상자의 직장, 결혼과 이혼, 성공과 실패, 은퇴 후 삶의 경로도 조사하고 분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가 실시간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지나온 삶을 회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20대에 겪은 일은 20대에, 30대에 겪은 일은 30대에 기록하는 방식을 취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이 찾아낸 행복의 조건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부와 명예, 학벌 등이 아니었다. 행복의 조건 중 으뜸은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성숙한 방어기제)’였다. 나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일 없이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태도 말이다. 


 또한, 연구를 주도했던 하버드 의대 정신과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저서 《행복의 조건》에서 성인으로서의 발달을 위한 첫 단계로 ‘정체성’을 들고 있다. 정체성이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생각, 가치, 열정 등 ‘자기다움’을 가지는 것이다.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논문에서 사진기술의 발달이 기존 회화예술이 가지고 있던 아우라의 붕괴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복제로 인해 예술의 원작이 가지는 신비한 분위기나 예술의 유일성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클래식이나 미술 작품은 과거 귀족들만 향유할 수 있었지만(클래식은 사회 계급을 뜻하는 class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원적으로 귀족 음악을 뜻한다), 오늘날엔 복제된 복사물(mp3, jpg)을 통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는 루벤스가 그린 그림을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오늘날의 기술복제시대에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기술복제시대를 넘어 인공지능시대에 인간의 아우라는 어떻게 될까?

 자신의 개성을 잃고 다른 이들을 따라하는 것은 기술복제나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개성,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생각을 가지는 것이 인공지능시대 나의 아우라를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 

 오늘날 우리에겐 무엇보다 자기다움이 필요하다.


 고난을 긍정으로,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난 차라리 나 자신 그대로 남아 있고 싶어요. 불쾌하더라도 나 자신 그대로요. 아무리 즐겁더라도 남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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