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까자까 May 30. 2023

어쩌다 동맹

타국에서 만난 이방인들끼리




독도는 누구 땅이라고 생각해?





유퀴즈의 유재석의 공통 질문이 있듯, 멜버른에서 일본을 만날 때마다 하는 나의 공통 질문이었다. 다짜고짜 물어보지는 않았고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이 되면 꼭 물어보았다. 놀라운 건 그들은 독도가 한국땅인지, 일본땅인지, 독도의 존재조차 몰랐다. 모른 척을 한 건지 진짜 모르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대답에 따라 친구가 될지 적이 될지 결정되었다.


"난 처음 들어봐. 몰랐어."

친구가 되었다.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생각해."

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일본인 친구들은 늘 예의 바르고 친절했으며 영어를 잘 못했다. 함께 랭귀지 스쿨을 다니던 일본인 친구 케이코의 페어웰 파티가 있던 날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공원에서 바비큐와 맥주를 마셨다.


"이제 일본을 가면 무엇을 할 거야?"

"멜버른의 생활은 어땠어?"


등의 스몰 토크가 오고 갔다. 대화를 한참 하던 중 케이코는 '~~~ 리뜨로 비뜨로' 라는 표현을 했다.


'엥? 리뜨로 비뜨로가 뭐지??'


순간 모두가 정적을 이루고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다며 다시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 리뜨로 비뜨로'라고 말을 했고 못 알아듣는 우리가 답답했는지 노트에 스펠링을 적어 보여 주었다.

'a little bit' (어 리틀 빗 = 조금)

그제야 우리는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발음의 중요성을 또 한 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날 이후 발음 연습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도토리 키재기였지만 랭귀지 스쿨에서의 나는 중간 정도는 되는 실력이었다. 쓰기는 잘 못했지만 나름 말하기는 두려움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랭귀지 스쿨을 패스하고 난 후 드디어 RMIT English Program 수업 첫날. 설레던 기대감과 자신감도 잠시 학생들 수준은 상당히 높었다. 나는 막 걸음마를 뗀 유치원생이었는데, 이들은 중 고등학생 아니 대학생 같았다. 영어를 잘 못하던 일본인들 사이에서 은근히 우쭐대던 못난 나는 이곳에서 현실과 마주쳤다. 도토리 키재기는 아무 의미 없었다.



RMIT English Program을 10주 동안 들었던 건물


내가 속한 반은 12명 남짓이었는데 대부분 인도인, 중국인, 이슬람권이었고 한국인은 나뿐이었다. 자발적 아싸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기 어려운 포지션이었다. 히잡과 벌카를 쓴 이슬람 사람들은 이슬람 사람들끼리, 중국 사람은 중국 사람들끼리, 인도 사람들은 인도인들끼리 이미 삼삼오오 짝이 나누어졌다.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한 한국인 1명은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변비가 있는 척을 해야만 했다. 그것도 아니면 쉬는 시간마다 밖에 나가 강제 산책을 했다.


그렇게 어색했던 일주일이 지나고 클래스에 웬 키 작은 아시아 여자 아이 한 명이 뒤늦게 합류했다. 그녀의 이름은 미야. 이리저리 보아도 딱 봐도 일본인. 선생님의 소개로 짧게 인사하는 그녀의 악센트엔 일본인 특유의 발음이 뚝뚝 묻어났다. 수줍게 자리에 앉아 요리조리 힐끔 거리는 단발머리 여자애였다.


선생님의 폭풍 같은 수업이 끝이 나고 드디어 쉬는 시간. 화기애애한 클래스메이트들의 잡담 속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한 눈인사를 하고 화장실로 가려는 찰나 미야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노... 수업 어디까지 들었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이날부터 어쩌다 한일 동맹 관계가 형성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그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