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사랑의 고백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1880~1918)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른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
회상해야만 하나 그 사랑을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왔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로 만든 다리 아래로
끝없는 눈길에 권태로워진
강물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남아 있네
사랑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인생은 얼마나 느린가
그리고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남아 있네
날이 가고 주일(週日)도 가지만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남아 있네
Le pont Mirabeau
Guillaume Apollinaire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ès la p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es mains dans les mains restons face à face
Tandis que sous
Le pont de nos bras passe
Des éternels regards l'onde si lass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érance est violent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Passent les jours et passent les semaines
Ni temps passé
Ni les amours reviennent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미라보 다리
파리의 세느 강과 동숭동의 대학천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불어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그때 나는 사전을 찾아가며 어렵게 이 시를 읽었습니다. 뜻을 해석하기에 바빴던 나는 이 시가 시인의 연인이었던 여류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과의 사랑과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이 시를 시 그 자체로 해석하며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1960년대 말, 프랑스의 파리는 꿈의 도시였습니다. 가보고 싶어도 가볼 엄두도 못 내고 마음속으로 동경 만하던 그때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른다’로 시작하는 이 시의 첫 구절을 읽었을 때 느꼈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머릿속에서 파닥이는 상상(想像)의 날개를 타고 아름다운 미라보 다리와 세느 강의 풍경을 따라가다가 나는 문득 지난 3년간 학교를 드나들면서 거의 매일같이 ‘미라보 다리’를 건넜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복개되었지만 그 시절엔 동숭동 대학로와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이로 대학천이라 부르던 작은 하천이 흘렀고 그 하천 위로 학교 정문과 연결되는 다리가 있었는데 학생들은 즐겨 이 하천을 ‘세느 강’이라 불렀고 다리를 ‘미라보 다리’라고 불렀습니다. 등하교 때마다 세느 강가를 걷고 미라보 다리를 건너면서도 이 시를 몰랐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다리(橋)는 아름답건 아니건 시인들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무언가 느낌을 주는 존재입니다. 건널 수 없는 곳을 건너게 해주는 매개체(媒介體)로서의 다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기도 하고 끊어졌던 관계에 연결의 고리를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시인에게 시적(詩的) 영감을 일으키는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에 서서 그 아래 흐르는 세느 강을 바라보다 지난 시간과 가버린 사랑이 떠올라 이 시를 썼을 것입니다.
흐르는 세느 강을 끝없이 내려보다가 시인은 흘러간 사랑이 생각나자 스스로 묻습니다. 그 사랑을 꼭 회상해야만 하겠느냐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고통 뒤에는 언제나 기쁨이 왔으니 내게도 오지 않겠느냐고?
후렴(後斂)으로 네 번이나 반복되는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남아 있네’에서 나오는 종(鍾)은 종탑의 커다란 종이 아니고 시계의 종(l'heure)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밤이여 오라와 종이여 울려라’는 밤이 와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 달라는 시인의 심정을 말해 줍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 세월이 지나고 세월과 더불어 사랑도 가고 사랑이 남긴 고통도 가겠지만 자신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이 후렴을 읽으면 그 옛날 어느 현인(賢人)이 말했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가슴 아픈 사랑도 결국은 지나갈 것을 알기에 시인은 모든 것이 빨리 지나고 자기는 본연의 자세를 지키겠다고 계속해서 다짐하고 있습니다.
시 전체를 통해 시인은 떠나간 사랑을 흐르는 세느 강물에 비유하며 회상하면서 세월이 흘러도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며 오히려 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5연의 후반부에서 ‘인생은 얼마나 느린가 그리고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라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다 보면 힘든 시간은 실제보다 한결 느리게 느껴집니다. 실연의 괴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시인에게 인생은 느리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괴로움을 견디고 남아있어야 하기에 희망은 격렬하다고 신음하듯 적어 놓았습니다. 그 희망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시인이 소문자로 써야 할 희망이란 명사를 유독 <대문자 희망(Espérance)>으로 쓴 것을 보면 독자들에게 실연의 괴로움을 뛰어넘어야 할 희망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 구절을 첫 연 끝 절에서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왔다’라고 읊은 마음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아폴리네르보다 거의 반세기 뒤에 태어난 우리나라 시인 박인환은 그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시(詩)인 ‘세월이 가면’에서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노래했지만 아폴리네르는 4번이나 반복해서 ‘세월은 가도 나는 남아 있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말에 더 공감하실지 궁금합니다.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옛날이 남는 것’과 ‘내가 남는 것’은 결국 같은 말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의 진통제
꽤나 오랜 세월 외국에 나가서 살았지만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고국을 찾았습니다. 보통은 9월 중순에 왔다가 가을을 만끽하고 11월 중순쯤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2017년 가을에 고국을 찾았을 때엔 꼭 첫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싶다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귀국날짜를 늦춰 12월 중순으로 잡았습니다. 일 년 내내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던 우리에게 눈 내리는 고국의 겨울은 가장 그리운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다행히 그 해 겨울 서울엔 11월 20일에 내린 첫눈을 시작으로 비교적 눈이 많이 내려서 아내와 나는 눈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의 그림전시회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다는 광고를 신문에서 보는 순간 나는 그 옛날 대학교 때 읽었던 아폴리네르의 시(詩) 미라보 다리가 생각났습니다. 아폴리네르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했던 그러나 결국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주인공인 마리 로랑생의 그림을 보고 싶어 가서 보았습니다. 그녀의 그림들은 몽환적일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화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할 만큼 재능이 많은 여인이었지만 그녀의 삶의 도정엔 군데군데 슬픔과 질곡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그림을 뒤덮은 황홀하고도 부드러운 다양한 색채 속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는 우울한 회색은 바로 그녀의 평탄치 못했던 삶과 사랑의 반영이었을 것입니다.
전시회 끝 부분에 ‘진통제(Le Calmant)’라는 그녀의 시(詩)가 벽에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을 그녀는 ‘죽는 것보다 더한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라고 매듭지었습니다. 그날 전시회장을 나오는 내 가슴에 남은 것은 그녀의 수많은 아름다운 그림들보다 오히려 그녀의 시의 마지막 구절이었습니다.
진통제는 아주 짧은 시이니 여러분과 같이 읽어 보도록 하지요.
진통제
마리 로랑생
권태보다 더한 것은 슬픔
슬픔보다 더 한 것은 불쌍한 것
불쌍한 것보다 더한 것은 고통스러운 것
고통스러운 것보다 더한 것은 버림받는 것
버림받는 것보다 더한 것은 세상에 홀로 남는 것
세상에 홀로 남는 것보다 더한 것은 쫓겨나는 것
쫓겨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죽는 것
죽는 것보다 더한 것은 잊혀지는 것
LE CALMANT
Marie Laurencin
Plus qu'ennuyée Triste.
Plus que triste Malheureuse.
Plus que malheureuse Souffrante.
Plus que souffrante Abandonnée.
Plus qu'abandonnée Seule au monde.
Plus que seule au monde Exilée.
Plus qu'exilée Morte.
Plus que morte Oubliée.
어떤 번역은 이 시를 제목부터 ‘잊혀진 여인’이라고 고치고 마지막 구절을 ‘죽은 여인 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다’라고 의역했는데 어떤 의미로는 아폴리네르와의 깨어진 사랑을 괴로워하고 있었던 마리 로랑생의 심정을 잘 표현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마리 로랑생은 “내가 죽으면 흰 드레스를 입히고 한 손에는 장미를, 다른 한 손에는 아폴리네르의 시집을 들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다가온 죽음보다 사랑했던 아폴리네르에게 잊히지 않겠다는 그녀의 마지막 소망은 ‘진통제’의 마지막 구절 ‘죽는 것보다 더한 것은 잊혀지는 것’을 신음처럼 다시 토해내는 것 같아 안쓰럽기만 합니다.
오늘 두 편의 시를 읽은 여러분의 느낌은 어떤 지 궁금합니다. ‘죽는 것보다 더한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라고 한 마리 로랑생과 ‘세월은 가도 나는 남아 있네’라고 한 아폴리네르, 두 사람 중 누구의 말이 더 여러분의 가슴을 울렸을지 궁금합니다. 시를 쓰는 것은 시인이지만 시를 읽고 느끼고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 궁금한 마음을 그대로 둔 채 이 글을 끝냅니다. 감상은 사람마다 다르고 여운을 남겼을 때 시가 더 기억에 남기 때문입니다.
2024. 9월 석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