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러한 원칙 하에서는 맨날 한낮맥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독일에서는 물처럼 맥주를 마신다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독일은 얼마 전옥토보페스트였는데 낮에도 엄청 맥주를 마신다고 하더이다.
독일 오토보페스트. 낮에도 맥주를 엄청 마신다고 하더이다. (출처: 옥토보페스트 공식 홈페이지)
K직장인인 나와 팀원들은 독일을 갈 수 없으니, 엄격한 원칙 아래 그렇게 점심을 먹으며 아주 오랜만에 한낮맥을 했다. 사실 우리 팀은 팀 차원의 회식이란 설날&추석과 이음동의어*여서 가끔씩 회식을 가장한 점심의 한낮맥을 하는 이유도 있다.
*공식적인 팀 회식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그렇게 오늘도 성공적인 한낮맥을 즐겼고, 그리고 또 업무에 복귀해서 엄청난 일들을 해냈다.
한 시간 동안의 한낮맥
저녁 회식보다 한낮맥이 좋은 점이 있다.
1. 숙취가 없더이다. 오후 업무에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주량은 무조건 제어해야 한다. 안 그러면 한낮맥이 성사가 안 된다.
2. 업무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오후에 어떤 극도로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전투력이 필요한 미팅 같은 경우, 살짝 술을 마시고 들어가면 도움이 되더이다.
대충 이런 느낌?
3. 그리고 이런 점심이 기억에 남더이다. 가끔 직장 동료들에게 묻는다. '어제 점심 머 먹었는지 기억나?', '엊그제는?' 대부분 기억을 잘 못한다. 나 조차도. 어제와 그제와 내일과 내일모레가 비슷한 직장인에게 가끔 너무 한낮의 맥주는 기억에 남더라.
K직장인의 신남이 느껴진다.
김금희 작가님의 <너무 한낮의 연애>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사실 이 글의 제목도...
<너무 한낮의 연애>의 주인공은직장인 '필용'이다. 필용은 대기업의 잘 나가던 영업팀장이었으나 문책을 당해 시설관리팀 직원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울면서 혼자 점심을 먹기 위해 종로까지 걸어가는 장면이 소설 첫장면으로 나온다. 다음은 직장인 필용의 점심시간을 묘사한 장면이다. 소설인지... 아니면 나의 점심시간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이 아닌가 싶다.
필용은 한동안 종로에 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언제까지 사무실 사람들과 안 섞이며 지낼 수는 없으니까 정상적인 샐러리맨들처럼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비빔밥을, 내장탕과 다슬기해장국을, 비냉과 물냉 반반을. 업무에도 익숙해졌다. 체념과 어떤 자조가 들어 있기는 했지만 일을 대하는 필용의 태도는 자연스러워졌다. 이 빌딩 몇 층의 배전반이 말썽인지도 알았고 생각보다엘리베이터가 빈번하게 고장난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다음이다. 어쩌면 이 부분을 전달하고 싶어서 낮에 맥주를 마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네가 날 사랑한댔잖아. 킬킬킬킬…… 그 고백을 들은 거잖아, 지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앞으로 우리 어떻게 되는 거냐고.”
“모르죠, 그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알 필요가 없다고?”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
필용은 황당했다. 얘가 지금 누굴 놀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며?”
“네, 사랑하죠.”
“그런데 내일은 어떨지 몰라?”
“네.”
“사랑하는 건 맞잖아. 그렇잖아.”
“네, 그래요.”
“내일은?”
“모르겠어요.”
그렇다. 너무 한낮의 연애도, 너무 한낮의 맥주도, 내일은 없다. 바로, 지금 여기만 있을 뿐이다.독일'옥토보페스트'에 참석할 수 없지만 한국 직장인도 한국에서'10월축제'를 즐긴다.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카르페디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