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그다드Cafe Oct 15. 2024

직장인의 숨은 이유 찾기

마곡은 땅값이 오르고 나는 발전하고

나의 직장은 강서구 마곡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예전의 마곡 동네는 잘 모르나,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의 아내님은 마곡을 지나칠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아... 여기 나 어렸을 때 완전 논밭이었는데... 우리 엄마 아빠(나의 장모님 장인어른)는 이런데 땅도 안 사놓고 머 했는지 몰라."


서울에서 나고 자란 80년대 생의 흔하디 흔한 통속적인 클리셰다. 강남을 지나갈 때도, 아현동을 지나갈 때도, 홍대를 지나갈 때도, 비슷한 클리셰가 이어진다. 촌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나는 잘 모르는 서울사람들의 아쉬움과 탄복이다.


어쨌든 마곡은 천지개벽을 했나 보다. 나는 논밭 시절의 마곡을 잘 모르니 궁금증이 일어, 과거의 마곡 사진을 찾아봤다.

(사진 위쪽) 20년 전의 마곡과 지금의 마곡

20년 전의 마곡과 지금 내가 아는 마곡은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이만큼 변했다는 것은 회사라든지 편의시설이라든지 사람들이 유입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인데, 내가 느낀 마곡은 지금도 변화 중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새로운 식당과 카페가 있다. 사람의 유입이 많은 곳에는 으레 힙한 가게부터, 프랜차이즈까지 많이 들어서는데 마곡은 유독 심한 편이다.


나와 팀원들은 새로운 식당과 카페가 생기면 자주 가는데, 우리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희한하게 오래가지 못할 법한 가게는 대부분 의견을 같이 한다.


가끔 빙의해서,  


“팀장님, 점심때 갔던 제육볶음 가게는 고기가 이븐 하게 익지 않았어요. 저는 익힘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거든요. 양파는 다행히 이븐 하게 익었어요. “


“오직 맛으로만 평가했을 때… 조금 아닌 거 같다…“


그러면 몇 달 뒤 혹은 몇 주 뒤, 그 가게는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할 확률이 꽤 높더이다. (결국 돈 버는 사람들은 인테리어 업주와 건물주인가... 이런 통속적인 클리셰가 있나...) 마치 자영업계의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랄까…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에서 유래함.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데, 하나의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표현.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나와 팀원들은 나이도 취향도 제각각이지만 그동안 수없이 먹은 바깥밥(집밥의 반대말)으로 쌓은 내공과 데이터 덕분에 안될 법한 식당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이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평가할 때도 비슷한 생각회로로 적용될 수 있다.


얼마 전 우리 팀에 새로운 과장님이 입사했드랬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슈 때문에, 팀장인 나는 우리 회사와 우리 팀에 부합하지 않겠다는 힘든 결정을 내렸드랬다. 그래서 혹시나 나의 결정이 어떤 편향에 사로 잡혀 내리진 않았을까 걱정 되어 회사 내에 다른 직원들의 의견을 물어봤다. 그러자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마치 안될 법한 새로운 가게에 갔을 때 서로 의견이 모이는 것처럼.


반대로 도저히 왜 폐업을 하는지 모를 법한 가게가 폐업을 하고, 다음의 새로운 가게를 오픈하기 위해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최근에도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S라는 프랜차이즈 순대국 식당이 있었는데, 맛도 좋고 가게도 깔끔해서 나의 순대국 최애 식당으로 마음속에 고이 담아드랬다. 회사 동료들도 S 순대국을 좋아해서 순대국으로 메뉴가 결정되는 날에는 S 식당으로 갔다. 점심에 갈 때마다 손님으로 북적대서 '역시 잘되는 집은 이유가 있군' 속으로 생각하는 건 덤.


그런데 며칠 전 점심때 갔다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섭섭함과 함께 의문이 들었다.


'왜?? 왜지?? 도대체 폐업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인테리어 중인 순대국 식당


그래서 다른 순대국 가게에서 급히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인근 카페로 옮겨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회의를 했지만 결국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팀원들도 도무지 폐업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순 있지 않을까? (답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선문답이 최선)


진짜 어려움과 힘듦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S 순대국 사장님은 가게를 지속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어려움(식구들 중에 아픈 분이 있다거나…), 혹은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월세 등의 이유로 인해 폐업을 결정한 건 아닌지. 즉, 진짜 어려움과 힘듦은 쉬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진짜 어려움과 애로사항은 잘 드러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은 쉬이 알아채기 힘들다.


나는 아직 많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최애하는 순대국 단골가게가 왜 망한지도 모르고, 집에서는 아내님이 왜 진심으로 힘들어하는지도 모르고, 우리 팀원들이 진짜 애로사항은 모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누구든 아는 이유 말고) 그 너머의 진실을 알아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벼리고 궁극적으로 탑재 하고싶다 . 어떻게 벼리느냐? 아직은 잘 모르지만, 우선 이렇게 생각을 풀어쓰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모으는 게 첫 단계라는 확신은 있다.


p.s. 인테리어 중인 순대국 가게를 보며 (마곡은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땅값도 오르는데) 나도 진짜 나의 발전이 먼지 심란하게 고민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 직장인의 오만과 편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