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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쪼렙 시절 이야기

넷플릭스는 무엇이 달랐나

by 바그다드Cafe

2025년 지금,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제왕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단 하나의 기업이 생각날 것입니다. 바로 '넷플릭스'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글로벌 비디오 시장은 '블록버스터'라는 비디오 대여점 체인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블록버스터와 넷플릭스 그리고 변화와 적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정도 변화는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어"


2000년 초가을, 블록버스터의 CEO 존 앤티오코는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당시 제안은 5천만 달러에 넷플릭스를 인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앤티오코는 넷플릭스를 "틈새시장의 작은 스타트업"으로만 보았죠. 그의 자신감은 이해할 만했습니다. 당시 블록버스터는 9,000개가 넘는 매장과 6만 명의 직원을 보유한 대기업이었으니까요.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비슷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변화의 신호를 무시하고, 우리의 현재 위치가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치 23년 전 블록버스터처럼 말입니다.


"우리에겐 9,000개의 매장이 있다"


블록버스터가 가진 최대 강점은 촘촘한 오프라인 매장망이었습니다. 고객들은 동네 어디서나 쉽게 블록버스터 매장을 찾을 수 있었고, 비디오를 빌리러 가는 것은 미국 가정 주말의 즐거운 오락거리였습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자신들의 강점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은 거죠. 9,000개의 매장과 6만 명의 직원은 강점이 아닌 오히려 약점이 되었습니다. 매장 임대료, 직원 급여, 재고 관리 비용은 블록버스터를 옥죄는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시대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전문성과 경험이, 어쩌면 블록버스터의 9,000개 매장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우리의 강점을 재정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언제든 약점으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무엇이 달랐나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은 단순히 DVD를 우편으로 배송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본질을 '콘텐츠 추천'으로 정의했습니다. DVD 배송은 수단일 뿐이었죠. 그래서 스트리밍 시대가 오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블록버스터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비디오 대여점'으로 한정했습니다. 매장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대면 서비스에 집착한 나머지, 변화하는 고객의 니즈를 놓쳐버렸죠. 그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본질이 '엔터테인먼트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는 다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은 단순한 '업무 처리'일까요, 아니면 '가치 창출'일까요?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넷플릭스의 또 다른 강점은 데이터 활용 능력이었습니다. 그들은 고객의 시청 기록과 선호도를 분석해 더 나은 추천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결정도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죠. 반면 블록버스터는 풍부한 고객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를 단순한 재고 관리 수단으로만 활용했습니다.


데이터를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현재 우리가 AI를 바라보는 관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AI를 단순한 업무 보조 도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치 창출의 동반자로 볼 것인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혁신, 그러나 변치 않는 본질"


넷플릭스의 진정한 승리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정의했습니다. DVD 배송 회사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다시 콘텐츠 제작 회사로 진화하면서도 본질은 잃지 않았습니다. 고객에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제공한다는 그들의 미션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변화 앞에서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닌 본질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도구의 변화가 아닌, 그 도구로 우리가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2010년, 운명의 엇갈림


2010년, 블록버스터는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같은 해,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100억 달러를 넘어섰죠. 두 기업의 운명이 엇갈린 결정적 순간은 2000년 그 가을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선택이 10년 후의 운명을 결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기술 수용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블록버스터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했고, 넷플릭스는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혁신했습니다.


미래를 향한 질문


매일 아침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은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그 무게는 두려움이 아닌 책임감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마주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블록버스터가 될 것인지 넷플릭스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진정한 전문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과감히 낡은 것과 작별을 고할 줄 알아야 합니다. 블록버스터의 마지막 비디오처럼, 우리의 낡은 습관과 두려움에도 작별을 고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작별을 고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p.s. 넷플릭스 초창기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공동 창업자 마크 랜돌프의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를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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