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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질에도 멀쩡한 핸드폰의 함정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by 바그다드Cafe

"3310으로 못 박는 못도 있나요?"


2000년대 초반, 오가던 반농담입니다. 노키아 3310은 '탱크폰'이라 불릴 만큼 튼튼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3310으로 망치질을 해도 멀쩡하다고 하니, 이 정도면 휴대폰이 아니라 흉기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못 박을 수 있는' 견고함이 노키아를 무너뜨렸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과 사고방식이 너무 견고해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터치스크린? 그건 진지한 비즈니스 툴이 될 수 없어"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노키아 CEO 오일리 칼라스부오는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는 심비안 OS를 고집했고, 터치스크린은 진지한 비즈니스 사용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반응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업 리더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전기차?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았어..." "클라우드 스토리지? 보안 리스크가 너무 크지..." "AI? 아직은 신뢰하기 어려워..."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 비즈니스 리더들은 처음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당시 노키아는 세계 휴대폰 시장의 50%를 장악한 절대 강자였습니다. 분기별 실적 미팅에서는 "시장점유율이 또 상승했습니다"라는 보고가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에, 그 시장점유율은 3%로 급락했습니다. 화려했던 본사 회의실에 침묵이 흐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 있다"


2011년, 새로 부임한 노키아 CEO 스티븐 엘롭은 직원들에게 유명한 '불타는 플랫폼(Burning Platform)' 메모를 보냅니다. 요약하면 "우리는 지금 불타는 석유 플랫폼에 서 있다. 불길 속에 머물러 천천히 타 죽을지, 아니면 차가운 바다로 뛰어들어 살아남을 기회라도 잡을지 선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메모가 회사 안팎으로 퍼지자, 주가는 더 폭락했고 결국 노키아는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휴대폰 사업부를 매각했습니다. 한때 '핀란드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기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시장 지위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외부의 공격이 아닌 내부의 경직성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PC 비즈니스의 선두주자입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기술 거인 마이크로소프트도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2007년 출시된 윈도우 비스타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2010년 출시된 윈도우 폰은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았습니다. PC 시대의 제왕이 모바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난 후, 스티브 발머 CEO는 "아이패드? 결국은 키보드 없는 노트북일 뿐입니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2014년, 발머가 물러나고 사티아 나델라가 새 CEO로 취임합니다.

이 중요한 전환점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집착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기로 한 것입니다.


"클라우드로 가는 길에 장애물은 우리 자신뿐이다"


나델라가 취임 후 한 말입니다. 그는 윈도우 중심주의를 버리고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 전략을 선언했습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한때 경쟁자로 여겼던, 심지어 적대시했던 리눅스를 포용한 것이었죠. "마이크로소프트 ♥ 리눅스"라는 슬로건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는 기업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했습니다.


나델라는 오피스를 iOS와 안드로이드에 무료로 제공하고, 애저(Azure) 클라우드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윈도우 운영체제 회사'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로 전략적 전환을 이룬 것입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2014년 3천억 달러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은 2023년 3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10배의 성장을 이룬 것이죠. 이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 아마존과 함께 글로벌 빅테크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족쇄가 될 때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상반된 결과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둘 다 과거의 성공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지만, 한 기업은 몰락했고 다른 기업은 재탄생했습니다.


그 핵심적인 차이는 '과거 성공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노키아는 끝까지 '하드웨어의 노키아'라는 정체성을 고수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감히 '윈도우의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제한적 정의를 넘어섰습니다.


시장 변화에 대한 이런 상반된 대응은 비즈니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어떤 기업은 자신들의 차별화 요소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반면, 다른 기업들은 기존 성공 모델에 계속 의존합니다.


당신은 노키아인가요, 마이크로소프트인가요?


우리도 매일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쌓아온 전문성과 성공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에 맞춰 이를 재정의할 것인가?


노키아의 3310처럼 견고한 비즈니스 모델은 변화의 바람 앞에서 오히려 취약할 수 있습니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유연하게 적응하는 전략은 예상치 못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핵심 비즈니스'와 '핵심 가치'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노키아는 자신들의 핵심 비즈니스(휴대폰 제조)와 핵심 가치(사람들을 연결하는 것)를 혼동했습니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핵심 비즈니스(윈도우, 오피스)에서 벗어나 핵심 가치(생산성 향상, 기술 접근성)에 집중했습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특정 제품 생산, 특정 서비스 제공)은 핵심 비즈니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장에 제공하는 진정한 가치(문제 해결, 혁신, 신뢰 구축)는 훨씬 더 본질적입니다.


'하던 일'을 고집하는 것은 노키아의 길이고, '제공하는 가치'에 집중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길입니다.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족쇄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성공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새롭게 정의하느냐입니다. 노키아처럼 과거에 묶여 있을 것인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과감히 새 길을 찾을 것인지, 그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문해 봅니다. "우리 조직은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 있는가?" 그렇다면, 차가운 바다로 뛰어들 용기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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