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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verly지아 Jul 01. 2024

모르는 게 약

미국 유타 - 자이언 캐년

‘아는 만큼 느낀다. “

어린 시절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은 후 줄곧 유념하는 문장이다.

특히 건축물이나 아트 작품을 볼 때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점은 크다.  


그렇다고 어디를 가든 철저한 정보수집을 하고 분석을 하여 모든 여행에 임하는 건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 여행은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며 중요한 것을 보고, 동반하는 이의 의견에 따라다니는 편이다. 특히 가족여행은 하루 한 개 정도 큰 활동을 행하는 것으로 계획을 짜고, 나머지 시간은 풀장에서 놀거나 쉬는 등 여유롭게 움직인다. 아이들의 컨디션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때에 따라서는 예약된 레스토랑을 취소하기도 한다.


멀리 프랑스를 가도 베르사이유 궁전을 들르지 않았고, 하와이를 가도 진주만 기념관을 아직 가지 않았다. 그런 곳은 아이들이 역사를 알고 가면 ’ 아는 만큼‘ 더 즐겁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지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 여행이 아니라, 세상엔 이런게 있다고 노출시켜 주고, 가족들 추억 쌓기가 여행의 이유였다.

학습과 연관짓는 여행은 초등고학년, 중고등학생 이상이 되면 좋을듯하다.


물론 나와 남편은 어린아이들의 나이에 맞고 가족들 취향을 고려해 미리 지역 탐구를 하고, 여행지 정보를 모아 여행을 계획한다. '아는 만큼' 안전한 여행 또한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 모르는 게 약이다 ‘ 싶은 여행도 있다.

지난 봄방학 자이언 캐년이 그런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이와 미국립공원


누구나 나만의 여행 철학이 있는 법.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영유아 시기일 때는 주로 안전한 리조트로 여행을 갔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거나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동물원과 식물원, 어린이 박물관이나 키즈카페를 다녔고,  레고랜드나 디즈니랜드에서도 영유아 놀이기구를 타며 놀았다. 가령 스타워즈와 같은 인기 많은 빠른 놀이기구보다 범보나 회전목마등을 타고 뱅뱅 돌며 하루를 보냈다. 디즈니랜드에서 조차 아이들은 유모차에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오래 걷기가 힘들었고, 때로는 생리현상을 조절 못해 엄마는 아이를 들쳐 안고 100미터 달리기 속도로 화장실로 달려간 적이 수십번이었다.

어린 딸들을 데리고 광활한 지역을 탐험할 엄두를 내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이 7살-10살이 될 무렵, 좀 더 단단한 다리와 지겨워도 천천히 걸을 인내가 생겼다. 그리고 생리현상에 대한 참을성이 생길 무렵 우리 가족은 국립공원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미국립공원과 4학년

미국 4학년 학생에게 제공되는 무료 패스권 photo by BS


미국 4학년생들은 미전역 59개 국립공원이 무료다.

 

왜?

 

그것은 미공립학교의 교육과정과 관련이 있는듯하다.

미국 아이들 소셜 스터디 (social study) 수업을 한다. 그 시간에 역사, 사회등을 배우는데 학년에 따라 배우는 과정이 다르다.

킨더와 1학년부터 시작하여 내 방, 우리 집과 동네, 우리 타운 (town, 한국으로 치면 -동)등으로 점점 구역을 확장하면서 배워나간다. 그 과정에서 지역동네 가장 오래된 가옥을 방문하거나 시티홀( City Hall, 동사무소나 시청같은 곳)등을 견학한다.

4학년이 될 무렵 주(state)에 대해 배우고 미주립 및 국립공원과 지형 등에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5학년이 되면 나와 국가, 즉 미국의 역사와 정치, 지형 등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때 50개 주이름과 위치를 다 외우는 시험을 치기도 한다.


그리하여, 주립 및 국립공원에 대해 배우는 미국 4학년들과 교육 관계자들은 야외 프로그램 (kids outdoor program)의 일종으로 국립공원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각 국립공원의 입장료는 조금씩 다르지만 4인기준으로 간다면 80-100불 정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4학년 학생이 있다면 그 가족은 모두 함께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사실 대부분 초등학생들을 둔 가족은 무료입장이 가능한 듯 하다. 작년 첫째가 4학년일 때 그랜드캐년, 요세미티 국립공원등 입장료를 걷어간 국립공원은 없는 둣 하다. 올해는 3학년 5학년, 그런데 둘째 이름으로 자이언캐년에서 카드를 발급받았다. 그래서 하루 80불(약 9-10만 원) 정도의 액수를 절약할 수 있어 좋았다. 이틀을 갔으니 총 160불 (17-18만 원 정도) 정도가 절약된 셈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자이언 캐년은 유타주에 위치한 국립공원이다.

일단 캘리포니아보다 날씨가 청아하고 4월 첫 주였지만 쌀쌀한 듯 따뜻했다. 작년 이맘때 그랜드캐년 산행 중 거대한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눈이 펑펑 내렸던 기억에 올해도 두꺼운 파커들을 챙기고 따뜻한 비니도 눌러쓰고 산을 올랐다.

일단 봄방학인 관계로 관광객은 무척 많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각 코스로 움직여야 하는 곳인데, 그 버스 정류소 줄만도 한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 듯이 인파가 붐볐다. 이런,, 더 일찍 나왔어야 했는데.

호텔 직원말로는 비수기라 늦은 오전에 나가도 셔틀버스가 여유롭단다. 그런데 우리 학군과 같은 방학 스케줄을 가진 학교가 많은지 그녀의 조언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미국은 학군과 학교마다 방학 기간이 다르다.)  


정류소에서 멀뚱히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우리 가족은 다음 역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이런... 다음역이 공사 이유로 막혔다. 그래서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와 지도를 보며 일단 적당해 보이는 근처 산행길을 찾았다.

그다지 어려운 코스가 아닌지 대여섯 살 어린아이들도, 노인들도 즐겁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안내를 보니 왓치맨 트레일이라고 유명한 산행길 중 하나란다.

 

"올라가기 적당해?"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는 내가 휴대폰 앱으로 지도를 보던 남편에게 물었다.


"응 가장 쉬운 코스는 아닌데, 그렇다고 최고 어려운 산길은 아니고. 어린이들도 올라가기 괜찮아 보이는데? 더 쉬운 코스도 있는데 원하면 거기로 가도 되고. (아이들에게) 너네 생각은 어떠니?"


산행을 즐겨하는 나와 남편이 아닌지라 적당히 지도만 보면 수월해 보였고, 설명을 보면 가끔 난코스가 섞인 중간 수준 레벨의 산행길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 ’ 조금‘ 어려운 코스를 선택했다.

날씨가 더워져 두꺼운 파커를 벗어 허리에 매고 우리는 천천히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등산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점점 가팔라지고, 바로 곁에는 울타리도 어떠한 보호 장치도 없는 경사진 곳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 뭐지..?

머 한 시간이면 끝나는 코스니 올라가 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걸었다.


"나 절대 어려운 코스 안 가는 거 알지?"


"아니야~ 그냥 어드벤스(중간) 수준이래. 조금만 올라가면 끝일 거야."



길은 점점 더 가팔라지고, 평소 까불거리는 둘째가 혹여 가장자리에서 발 헛디뎌 떨어질까 조심시키며 천천히 올라갔다. 바로 곁이 낭떠러지 같은 지점도 나왔다. 그럴 때는 둘째 아이 허리춤을 살짝 잡고 걷기도 했다.

내려오는 사람들과 어깨를 스치 듯 지나가거나, 혹은 길이 좁아 서로 기다려주며 왕복 한줄로 산을 타기 시작할 무렵, 어느덧 나는 큰 산 비탈길 중간쯤에 와 있었다.

옆을 보니 거대한 자연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기에 지나왔던 길이 보이는데, 산양도 아닌 내가 저길 왜? 란 생각이 들 만큼 가팔라 보이는 곳에 올라서 있었다.

초보 등산객인 내게는 놀랄 일이었다.

왼쪽 자연경관을 확대해 보면 우리가 걸어온 산행길(초록선으로 표시)이 보인다. 점은 사람이다. photo by BS  

비록 좁은 산길이지만 잘 닦아두었고, 곳곳에 돌들도 있어 걸어 올라가는 게 지루하지 않아 무작정 걷다 보니 중턱이었다. 그만큼 올라갔는지 몰랐다.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이 산길의 끝은 봐야겠다.


"도대체 끝은 어디지..?"


"곧.. 헥헥"

숨이 찬 남편도 몰랐다.


어느덧 우리는 드넓은 경관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올랐다.  

산행 목표지점이 그 정도로 높은 곳인지 몰랐다. 저만치 앞서가던 목발 짚은 십대 소녀도 가족들과 함께 정상에 도착했다. 그녀와 그 가족들도 어쩌면 우리처럼 모르고 올라왔을 듯했다. 그녀를 위해 근처에 있던 등산객들 모두 손뼉 쳐 주었다. 일반인들에게 왕복 3-4시간의 산행. 그 깁스를 한 십대소녀는 어쩌면 훨씬 더 오래 걸렸을지 모른다.


내려와서 다시금 산을 올려다보니, 하늘로 치솟은 바위산 유명 산봉우리에 우리가 올라갔었던 거라 했다.

몰랐으니 저기까지 갔나 보다.

산 하나를 정복했다는 느낌이 뭔지 어슴프레 알 거 같았다. 뿌듯했다.

그만큼 높은 산봉우리인지 알았더라면 어쩌면 지레 겁먹고 올라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혹여 아이가 미끄러져 떨어지면 어쩌려고, 중간에 화장실이 급하면 어쩌려고, 방울뱀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

( 연애하던 시절, 남편과 등산을 시작했다가 야생 방울뱀을 만났던 후로 산행을 주저하기 시작했다.)


다음날은 이른 새벽 일찍 셔틀버스에 올랐다.

어퍼 에머럴드 풀 트레일 Photo by BS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절벽이 바로 곁에 있었지만 어제의 경험으로 아이들과 천천히 잘 걸으며 경치도 구경하게 되었다.

로우 에메럴드 폭포 Low Emerald pool trail에 도착한 후 긁어낸 듯한 거대한 바위들과 그 위에서 시원한 소리를 내며 눈앞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보고 감명받을 무렵, 위에 사람들이 보여 그곳에 올라가 보자고 했던 것이 어쩌다 한두 시간 땀 뻘뻘 흘리며 등반을 하게 되었다. 어제보다 훨씬 더 가파른 길이었다. 표시판이 몇 개 없었고, 그래서 사람들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였다.  

그들 목적지가 어퍼 에메럴드 폭포로 한동안 땡볕아래 산을 더 타야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너무 덥고 가팔라 중간에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등산을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모르겠다.


결국 바위산 꼭대기 어퍼 에메럴드 폭포수를 보고, 사람들 사이를 비짚고 인증 사진을 찍고 다시 가파른 돌길을 천천히 내려왔다. 땀이 줄줄 흘렀다. 크고 작은 바위가 많아 무릎 관절에 무리가 왔다.

내려오는 중에 관절이 좋아 보이지 않는 노인분도 계셨고, 아기를 업고 등반하는 아빠를 보며 돌아 내려가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저들도 어쩌면 나처럼 모르는 게 약일지도.


아마도 우리가 자이언캐년 앱에서 세세한 정보를 못 읽은 탓일 수도 있지만, 지도로 보면 그만큼 가파른지도 모르고, 생각보다 더 먼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미리 알았다면, 아이들 안전상 가파른 낭떠러지를 만나는 산행을 두 손 흔들며 반대했을 것이다. 세네 시간 걸리는 등산이 부담스러워 미리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기에 지레 겁먹지 않고 새로운 모험과 탐험을 할 수 있었고, 그곳에 숨겨진 경관을 바라보고 올 수 있지 않았을까.  

투덜거리지 않고 열심히 산을 탔고, 언제 만날지 모를 목표지점을 향해 땀을 흘렸다. 

목표지점 이름만 알뿐 그 길이 어떤 곳인지 몰랐는데, 한발 한발 내딛다 보니 멋진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 집중해서 등반을 하다보니, 나아가 인생을 등반하고 있는 내게 쓰디쓴 교훈도, 행복한 교훈도 떠오르며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평소 벌레 많고 무더운 땡볕 뒷산을 올라가지 않는다. 한국과 달리 캘리포니아 산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방울뱀도 만날 수 있고. 

그런데, 미국립공원들, 가령 요세미티나 세도나, 자이언 캐년등은 등산이 재미있다.

산행길에 울퉁불퉁 솟은 바위덩이들을 요리조리 피하고, 동네에 없는 생소한 꽃들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지루하지도 않다. 


처음 가본 유타는 좋았다.

음식도 괜찮았고, 동네도 깨끗했다. 


특히 자이언 캐년에 다시 돌아가 전기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고 싶다. 캐년 내에는 셔틀버스 말고 다른 차량은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한적한 길과 넓은 지역이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아직 아이들과 내가 자전거 운전이 서툴러 이번 여행은 셔틀을 타고 다니며 등산 위주로 하였는데, 그 또한 장엄한 자연경관과 함께 건강한 여행이 되었다.

물론 달달함 가득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말이다.

자이언 캐년 입구와 경관, 셔틀버스 photo by BS
와치맨 트레일 watchman trail / The narrow  동틀 무렵 더 네로우 트레일 photo by BS
로우 에머랄드 풀 / 낙상 사고 많은 엔젤즈 랜딩의 경고문 / 자연적으로 쪼개진 바위 photo by BS
와치맨 트레일 정상에서 본 경관 /  파러스 트레일 Pa'rus trail  Photo by BS  
자이언캐년 경관 / 산행후 아이스크림 가게 / 여행 마지막은 라스베거스 ( 로드트립에서 하룻밤 묵어야함 )젤라또로 마무리 Photo by 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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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ps.gov/zion/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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