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2편 - 몽마르뜨와 에펠타워
고등학교 갓 졸업한 19살.
소꿉같은 귀엽고 작은 커피잔에 진한 커피를 마시던 언니들이 멋져 보였다.
당시 에스프레소가 유행하던 시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걸 마시는 언니들이 주변에 있었고 그들 따라 나도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커피맛을 알기보다 진한 카페인이 필요했던 시기였는데, 멋진 언니들을 따라 쓴맛을 즐겼다.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 후 에스프레소를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연약했던 내 위가 더 이상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스트레스성 위염이 있었는데, 아침을 건너뛴 채 빈속에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또한 밤샘 작업과 신입생 술자리를 다니던 시기라 결국 탈이 났다.
폼생폼사는 내 위를 할퀼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이후로 에스프레소를 마신 기억이 없다. 줄곧 아메리카나나 라떼, 카푸치노를 마셔왔다.
(지금도 카푸치노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그렇게 쓴 기억을 가진 에스프레소를 파리 에펠타워에서 다시 만났다.
쓰라린 위경련의 고통스런 기억이 되살아났지만 남편의 에스프레소 권유에,
“암, 파리에 오면 에스프레소를 마셔야지… ”
직원은 작고 귀여운 잔에 든 앙증맞은 커피를 내 앞에 두고 갔다. 귀여운 컵 안에는 한 모금 정도의 한약만큼 새까만 커피가 있었다.
그래, 눈 아래 센강을 내려다보며 에펠타워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낭만을 즐기지 않을 수가 없지.
조심스레 입에 가져갔다. 한 모금 홀짝.
어머, 여태 내가 마셨던 에스프레소는 어디 출신이니.
진하고 고소한 커피맛에 감동 받았다. 이래서 프랑스 사람들이 매일 에스프레소를 마시는구나!
내 위를 할퀼만한 쓰디쓴 맛은 전혀 없었고, 진한 커피색인만큼 진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입안을 흘러들어 가며 동시에 향긋한 커피향이 내 코를 자극하였다.
그런 커피를 마시며 창밖 센강과 저 멀리 광장을 내려다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게 행복이지......
음식이 나오기 전 기다림이 지겨운 어린아이들의 푸닥거림과 S*** 포토앱으로 게임을 하는 통에 주변은 어수선했지만,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려다보자니, 커피 광고에서 보던 여유로움 그리고 낭만을 그 몇 분간 누렸던 거 같다.
이후 파리 방문 중에 매일 한두 잔씩 마셨다. 모두 맛있었다.
각 가게마다 맛은 달랐지만 (당연히 커피빈이 다르므로), 그 진함과 고소함, 부드러움만은 비슷했던 거 같다.
에펠타워 외 특히 기억에 남는 커피가 있다면, 루브르 박물관 2층 야외카페와 몽마르뜨의 한 레스토랑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였다.
역시 좋은 경치와 여유로운 마음으로 마셨던 그 몇 모금이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거 같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피맛과 향기, 그리고 텍스쳐.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다시금 그 에스프레소가 마시고 싶어, 곁에 있는 카푸치노 한 모금으로 욕구를 가라앉혀 본다.
하늘에 구름은 가득이지만, 화창한 어느 날 몽마르뜨를 향했다.
미술을 전공했던지라 어릴 적부터 몽마르트에 대한 환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을 대동하고 다니면 사실 낭만이나 쇼핑을 즐기기 쉽지 않다.
혹시나 싶어 파리 여행 내내 가방에 작은 여행용 스케치북과 펜, 여행용 물감을 가지고 다녔지만 앉아서 그림 그릴 여유가 전혀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오브제나 장면, 풍경을 카메라로 포착하는 그 찰나에도 가족멤버들은 이미 저만치 가있고, 나는 기자처럼 후다닥 사진을 찍고 달려가서 일행과 함께 발을 맞췄다. (여행 중 사진촬영할 때 일행이 기다려주면 더 불편하기에, 주로 순간포착 하며 가던길을 가는 편이다.)
언젠가는 이 장면을, 이 캐릭터를 내 스케치북에 옮겨 그리리라.. 는 마음으로 사진은 열심히 찍어댔지만 아쉽게도 내 스케치북은 여전히 공백인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또한 부모들이 감수성을 끌어올리기에는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많다.
가령 놀이터에서 아이와 조금 놀아주고 지쳐 앉았거나, 회전목마 티켓을 사기 위해 매표소를 찾아다니거나, 사크레퀘르 성당을 가서 화장실을 찾아다니는 등의 일 말이다.
한편으로 이런 경험 또한 가족여행에서만 즐길 수 있는 추억과 재미다.
아이들은 세상 어느 지역을 여행하더라도 그 동네 놀이터에서 논다. 그곳에서 또래 아이들과 뒤섞여 미끄럼틀도 타고, 그네도 밀어주며 한참을 놀다가 쿨하게 헤어지는 경험을 한다. 바로 곁에 큰 박물관이 있든, 풍경이든, 맛집이 있든 일단 아이들은 놀이터를 보면 뛰어 들어가고, 거기서 놀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 다음 스케줄을 더 즐겁게 소화했다.
혼자 혹은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면 멈추어 서 있는 회전목마를 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표소를 찾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두 딸들과 여행 시에 회전목마를 만나면 마치 도장깨기를 하듯 꼭 탑승한다.
뉴욕에서 20대를 보냈지만, 센트럴파크 내에 있는 회전목마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 딸과 함께 처음 타 보았다. 내가 거주하던 당시에는 그곳에 회전목마가 있었는지 관심도 없었다.
이렇듯 엄마가 된 후 아이들의 취향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관심 없던 장소를 찾게 되고, 바삐 움직이던 여행길을 아이의 속도에 맞춰 틈틈이 쉬어가며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래서 비록 미술인으로서 낭만은 즐기지 못했지만, 가족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 사크레퀘르 성당 앞 언덕에 앉아 탁 트인 공간에 가득 찬 파리 도심의 모습과 그 화폭에 반을 차지한 하늘 풍경을 바라보는 일만도 행복했다.
몽마르뜨에 자리 잡고 계신 화가들도 아이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여러 화가님들 작품 중 작은 풍경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스케치한 듯 펜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캐리어에 넣어오기 좋은 작은 사이즈여서 망설임 없이 구입하였다.
작가는 연세가 지극하신 할아버지 화가셨다. 70대는 족히 되어 보이셨다.
그 할아버지 화가는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뭘 알려주고 싶으셔서 그림 뒷면에 설명도 해주시면서 아이들과 소통을 시도해 주셨다. 물론 서로 소통은 잘 되지 않았지만, 화가님께 감사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를 공부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화가라는 명함을 떼고도, 타국, 타문화권에서 오래 살아오신 할아버지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면 또 다른 세상이야기와 시점,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내가 나서서 대화를 돕고 싶었지만 나 또한 프랑스어를 공부해 본 적 없는 젬병이었다.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아이들은 그냥 내일이라도 다시 볼 수 있는 옆집 할아버지 보듯 대했다.
할아버지의 아내분은 미술대학 교수셨다. 할아버지 곁에 할머니 홍보 엽서와 명함 등이 놓여있었다. 두 노부부의 그림 스타일은 정말 달랐다. 할머니는 컬러풀하고 심플한 모더니즘인 반면 할아버지는 검은색 펜으로 풍경을 그리셨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 두 노부부는 어떻게 만났을까. 어떻게 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그림을 그려왔을까.
하지만 끝내 아무런 질문도 못하고 Great! Thank you!라는 말만 연발하며 헤어졌다.
아쉬운 만남.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할아버지 화가님은 그곳에 계실까.
여행을 하다 보면 아이들과 연관되어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우호적이고 무언가를 하나라도 알려주고 싶어 하고, 주고 싶어 한다. 장난감을 챙겨주는 호텔직원부터 이렇게 길거리에서 만나는 어르신들까지.
아이들이 없었다면 빈말이나 농담 몇 마디 혹은 눈인사 정도로 지나치고 말 인연들인데, 가족여행을 하다 보면 여러 인연들과 짧은 추억을 가지게 되는 경험은 감사할 일이다.
거리의 화가들 기운이 모여 이루어져 있는 낭만적인 몽마르뜨 언덕. 그 주변 골목과 가옥들도 감각적인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안타깝지만 지역 랜드마크들은 더 이상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랜드캐년, 63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등 유명한 곳들은 이미 사진과 영상 등으로 질리도록 봐왔기에 막상 그 장소에 맞닿뜨려도 감동이 덜한 건 사실이다. 반면 우연히 들른 그 주변에 덜 유명한 곳에서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
에펠탑 방문도 마찬가지였다. 에펠탑 첫인상은 그동안 봐왔던 그대로였다. 높이도 예상했던 그대로다. 그 주변 날치기범의 소문도 무성해 가방 지퍼 단단히 잠그고, 카메라 끈도 사선으로 매고 걸었다.
세상에 잘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의 위엄 그대로였다.
그런데 에펠탑보다 타워 내 레스토랑과 주변 구경이 내 마음을 톡톡 건드렸다.
일단 레스토랑은 전망부터 맛과 서비스까지 모두 만족도가 컸다.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디저트로 먹었던 아이스크림은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 아이스크림은 결코 이쁘게 장식되지 않고 그냥 밥그릇 같은 그릇에 담겨왔지만, 그 맛은 반전이었다. 좀 전에 먹었던 혀에 남은 음식 맛과 머리속 기억을 모조리 씻어내 버렸다. 무척 맛있어서 아이들은 행복하게 흡입했다.
식사 후 강한 바람을 맞으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여러 층을 올라갔다.
전망대에 도착해 드넓은 파리 내 풍경을 바라보자니 가슴이 탁 트였다.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고, 광장과 센강, 유람선, 회전목마가 눈에 들어왔다. 도시가 예전 건축 양식 그대로 인지라 고층 빌딩이 보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지평선과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고, 다른 유럽 도시들처럼 전통이 간직된 모습으로 보였다.
천천히 광장으로 내려와 센강 유람선을 타고 강을 돌았다. 곳곳의 다리가 아름다웠고, 아이들은 그저 배 타는 자체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유람선 관광 후 회전목마를 타고, 의외로 재미있었던 광장의 거리 공연도 계단에 앉아 구경했다.
에펠탑과 주변에서 그 하루동안 만 오천보 이상을 걸었다. 지친 아이들을 위해 맛집 레스토랑 예약을 취소하고 우리는 택시에 올라 호텔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파리에서 매일 만보에서 만오천보 이상을 걸었는데, 칭얼거리지 않은 아이들을 생각하니 그저 재미있었나 보다.
아이들은 여행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본인의 물건은 스스로 정리하고, 짐을 싸게 되었다. 4살, 7살이었던 아이의 옷가지와 생활짐은 엄마가 담당했지만, 본인들의 장난감과 책가방은 스스로 챙겼다. 좋아하는 물건들만 챙겼기에 아이들이 꼼꼼히 짐을 싸고, 호텔에 와서는 짐을 풀어 책상과 탁자에 진열하며 살림을 꾸렸다.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 없고, 그만큼 속상할 것도 알기에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은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일 없이 이제껏 잘 챙겨 오고 있다.
오늘은 제목을 적다가 갑자기 첫자리 맞추고픈 야릇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스프레소, 에펠타워,, 하나 더 열심히 생각해 보았으나 계속 에스까르고만 떠오르고... 그런데 요 달팽이 요리에 얽힌 스토리가 없었네요. 너무 휘릭 먹어치워서 ㅜㅜ 그래서 에필로그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는 안 비밀 후담입니다. ^^
Copyright 2024. Beverly Story (BS, Agne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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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이트는 프랑스어로 되어 있으나, 영어버전도 있어서 링크해 봅니다.
https://www.toureiffel.paris/en
https://www.sacre-coeur-montmartre.com/en/
https://www.sacre-coeur-montmart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