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_ 로웰 천문대 Lowell Observatory
아직은 조금 쌀쌀했던 4월 첫 주.
4월 첫째 주는 일기예보도 백퍼센트 믿을 수 없는 가늠하기 힘든 날씨다.
날씨의 변덕을 알 수 없어 반팔, 긴팔, 겨울옷등 레이어룩으로 입힐 생각에 옷가지를 여러개 준비했다. 가족들의 비니, 장갑, 목스카프, 핫팩등 각종 겨울 물품을 작은 가방에 모조리 모아 담았고, 또 다른 작은 가방엔 수영복등 여름 관련 물품들을 담았다. 아이들과 그랜드캐년에서 등산을 계획 중이었기에 방수처리된 등산화부터 운동화, 슬리퍼등 네 가족 신발만 12켤레였다. 물론 미니밴에는 모든 게 들어갈 공간이 충분했다.
우리 가족은 애리조나로 5박 6일 로드트립을 시작했다.
애리조나에 다다를 무렵 US Route 66, 즉 미국 국도 66번 경유지인 킹맨에 잠시 들렀다.
국도 66번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를 잇는 길이 약 4000km의 국도다. 당시 미국 최초의 동서 간 대륙횡단 고속도로 중 하나였고, 1926년에 완공되었고 1985년 폐쇄되었다. 각 도시 간 이주를 하며 미국인들 마음의 고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장소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여러 영화나 뮤직 비디오 같은 미디어에 자주 노출 되었는데, 한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결국 2003년에 복원되어 관광객이나 옛 추억을 떠올리는 미국인들이 여전히 이 도로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던 킹맨에는 66번 국도 박물관과 기프트샵이 있었다. 근처에는 옛 향수를 일으킬 만한 자동차들과 간판들로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겼다.
차는 계속 달려 숙소로 향했고, 그 한주도 잊지 못할 여행으로 남았다.
일주일간 우리는 많은 날씨를 겪었다. 어떤 날은 일기예보에 없던 눈보라로, 그랜드캐년에서 차들이 미끄러지고, 눈밭에 고꾸라져 전복된 차량들이 보였다. 또 어떤 날은 숨을 쉴 수 없고 앞으로 걸어가기도 힘든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은 90도로 꺾여 흉하게 날렸다. 가끔 180도,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기도 했다. 비니를 쓰고 후드를 뒤집어 썼다. 바람에 함께 날려오는 사막 모래에 눈을 찌푸리고 얼굴은 따끔거렸다. 정말 어디서 고글이라도 구해오고 싶었다. 그나마 마스크를 쓰면 모래를 들이켜지 않았다.
또 어떤 날은 여름날씨처럼 아주 덥다가 저녁이면 언제 그랬냐인 듯 싸늘한 밤기운에 입김이 나왔다.
고생했냐고? 아니 재미있었다. 이런 게 자연으로 가는 여행의 묘미구나.
여행의 주목적지는 그랜드캐년이었다. 그리고 주변 곳곳 굵직한 장소들. 그중 한 곳이 로웰 천문대였다.
애리조나 플래그스탭 Flagstaff에 위치해 있는 로웰천문대는 1894년에 퍼시벌 로웰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중 하나로 미국 내셔널 랜드마크 중 한 곳이다. 퍼시벌 로웰은 로웰 천문대에서 원래 화성의 지적 생명체 거주설을 주장하며 운하를 찾으려고 했는데, 의외의 천문학적 발견을 이룩하게 되었다.
우선 1896년에 24인치 클라크 리프랙터 ( 24" Clark Refractor)를 건설했고, 1912년에 V.M.Slipher가 우주팽창의 최초 증거를 발견했고, 1930년에 클라이드 톰보 Clyde Tombaugh에 의해 명왕성이 발견되었다. 2006년 명왕성이 행성에서 퇴출되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더욱 뜻깊은 곳이었지 않았을까.
처음 도착 후 프레젠테이션을 듣기 위해 로툰다 박물관 The Rotunda Museum에 들렀다. 그곳에 역사 관련 귀중한 유물과 별, 우주, 명왕성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돔 형으로 생긴 건물로 들어서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에 커다란 공 Sphere 이 있다. 공 전체가 모니터로 화면이 티브이처럼 바뀐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구슬같다. 그런 최신 기기로 제작된 프레젠테이션 화면 위로 아주 오래된 듯한 골동품 같은 램프가 있어 마치 미래형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천정에 램프는 1918년 로스앤젤레스 라잇 컴퍼니가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마블 토성 램프라고 한다.
또한 플루토 망원경이 있는 관측대나 거대한 24" 클라크 리플랙터가 있는 관측대의 천정이 나무 조각조각 꼼꼼하게 이어져 개폐식 천장으로 지어져 있는 내부가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제작된 그대로인데, 여전히 작동한단다. 날씨에 따라서 오픈여부를 결정하는데, 우리 일행이 방문한 날은 오픈하지 못했다.
전체 단지 내는 아담한 관측대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해발 2210미터 플래그 스태프 산에 위치해 있는 천문대는 작은 시골에 위치한 아담한 천문대였다. 엘에이 그리피스 천문대에 비하면 훨씬 오래되고 소박해 보였지만, 그런 작은 동네에 위치해 있기에 하늘의 별이 잘 보인다고 한다. 엘에이 그리피스 천문대는 도시의 불빛이 환해서 별이 잘 안보이다고 들었다.
우선 로툰다 박물관에서 설명을 들은 후, 안내자를 따라 플루토 디스커버리 망원경을 구경했다. 지금은 명왕성이 퇴출되었다지만, 한 때는 행성으로 인정을 받았던 별을 처음 발견한 곳이라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박물관에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거리에 태양계 이름 하나하나 적힌 푯말이 있었다. 그 끝에 명왕성과 관측소가 있다. 작은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작은 관측공간이 나오고, 당시 하늘을 들여다보던 오래된 망원경이 있었고, 나무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5분 여정도 안내인의 설명을 들었고, 그곳에 플루토 타임캡슐등의 여러 가지 물건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 작은 방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고 허무했다. 주변은 숲 속으로 오래전에는 맹수도 가끔 출현했다고 한다. 그런 어둡고 작은 방에서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추운 날은 두꺼운 담요를 뒤집어쓴 채 지붕을 열고 평생 하늘과 별만 바라보았을 톰보라는 청년 천문학자를 생각했다. 명왕성 발견 후 동료들과 기뻐했을 모습, 그 후 평생 추앙받던 천문학자로 지냈는데, 그가 평생 일궈놓은 업적이 무산된 결말을 알기에 마음이 짠해진 거였다.
그는 1930년 2월 18일에 명왕성을 발견했고, 이름은 플루토라 지었다. 행성마다 고대 그리스 신의 이름을 붙였던 관례를 따라 짓기도 했지만, 톰보는 퍼시벌 (P) 로웰 (L)의 첫 글자를 따서 구성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발견한 당시,
"마치 그 별이 나에게 윙크하는 것처럼 보였다."
톰보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은 사상 최초로 행성을 발견한 데 대해 흥분했다. 그런데 유럽 천문학자들의 반발로 76년 만에 자격을 박탈당하는데, 사실 그들은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지만 발견자 톰보가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참고 있었다고 한다.
톰보는 자신의 유골을 우주로 보내달라고 유언했다.
그가 사망 후 2006년, NASA의 뉴호라이즌호가 그의 유언에 따라 톰보의 뼛가루 1온스를 캡슐에 담은 유골함을 싣고 명왕성으로 향했다. 거기엔 명계의 뱃사공 카론에게 바칠 25센트 동전 한 닢도 들어 있다.
뉴호라이즌호는 떠난 지 10년 후 명왕성 가까이 다가갔고, 직접 관측하다 '하트존'을 발견했는데 나사는 이곳을 '톰보영역'이라 불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떠난 2006년 명왕성은 태양계의 행성에서 퇴출당했다. (출처; ntdtv.kr)
이 문제로 미국과 유럽 간 힘겨루기가 시작되었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일부 학자들은 명왕성 복귀 운동을 전개 중이라 한다.
와...내가 방문했던 곳이 국사시간에 배웠던 유명 고서의 저자가 건설한 곳이었다니!
오늘글에서 이야기 나누고 싶던 사람은 톰보였지만, 로웰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들과 천문대를 방문할 때만도 그는 천문대 건설한 사람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퍼시벌 로웰에 대해 좀 더 리서치 하던 중, 그와 한국간 의외의 흥미로운 인연을 찾게 되었다.
1855년 미국 보스턴 명문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로웰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무역을 하면서 세상을 여행 다녔다. 남동생 애보트 로웰은 하버드 역사상 최장수인 24년간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수재 교육학자였고, 여동생 에이미 로웰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당시대로 보면 장남 퍼시벌 로웰은집안에서 한량처럼 여겨졌다고 한다.
1883년 일본 주재 미국대사로부터 조선에서 미국으로 가던 사절단의 통역을 의뢰받았고, 29살 나이에 조선 최초의 미국 사절단 '보빙사'의 공식 수행원이 되었다.
조선의 외국인 홍보대사 공식임무를 마치고 고종의 초대로 다시 조선을 방문했다. 그는 조선에서 약 3개월간 한양에 머무르며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등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했는데, 2년 뒤 로웰은 이 기록을 정리하여 <조용한 아침의 나라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풍물을 기록하는 것 외에도 고종의 어진을 포함한 조선의 당시 풍경 사진 25매를 남겼다.
그는 노월이라는 한국 이름도 있었고, 수학자 김낙집과 친했다고 한다. 후에 갑신정변의 내역을 상세하게 기록한 <조선의 쿠데타 A Korean Coup d'Etat>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1894년 로웰은 카미유 플라마리옹이 쓴 <행성 화성>을 읽고 화성을 관측하기로 결심했고, 천문학을 그의 생업으로 바꾸게 되었다. 로웰은 당시 밀란 천문대 수석이었던 이탈리아 천문학자 지오반니 스키아파렐리가 스케치한 '화성의 수로'에 관심을 가졌다. 그 후 로웰은 애리조나 주 플래그스탭으로 이주해 살게 되었는데, 앞서 언급했듯 그곳은 고도가 2천 미터 이상이었고, 구름 낀 날이 적어 하늘을 관찰하기 적합한 곳이었다. 그는 여기에 많은 돈을 들여 천문대를 지었다. 로웰은 살아생전 "행성 X'를 찾기로 결심하고 천체 발견에 집중하고, 천문학자의 길을 걷고 싶지만 돈이 없어 좌절하던 젊은 학자들을 로웰천문대에 근무하게 하면서 후원했다. 그들이 로웰의 프로젝트를 이어왔고, 결국 클라이드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하며 결실을 맺게 되었다.
로웰은 평생 호기심에 아시아 국가 및 세계를 여행하고, 그들의 언어와 정치,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극동의 두 나라, 한국 일본을 미국인들에게 소개했다. 후에 그의 호기심은 멀리 화성의 생명체까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천문 관측소에서 결국 열매를 맺었고 그것을 전 세계인에게 알림으로 그의 의지는 끝까지 진행되었다.
현재도 그의 천문대는 최첨단 기기들을 이용해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지구 밖, 우주를 관찰 중이다.
날이 어둑어둑 해질 때쯤, 지오베일 전망대 Giovale Open Deck Observatory로 갔다. 날이 추워 작은 담요를 덮기도 했다. 그곳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여러 가지 설명과 천체 망원경을 이용해 직접 관찰할 수 있다. 망원경은 대부분 아이들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했고, 어떤 망원경은 대포처럼 컸다.
우리 일행이 있던 날은 달과 금성을 비롯해 화성, 목성, 멀리 토성을 봤던 거 같다. 아이들이 질문을 하면 곁에서 항상 친절히 설명해 주고,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외 시간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액티비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컬러 오브 더 코스모스 colors of the cosmos는 강사가 나와 설명을 하며 직접 실험도 했고, 3D 안경을 쓰고 듣는 설명회도 있었다.
3시간여 정도 머물면서 알차게 잘 보냈던 시간이었다.
플래그스탭 타운으로 내려오면 여러 작은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있다. 그중 우리는 긴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수제맥주를 판매하는 곳으로 가 보았다. 허름한 듯 감각 있는듯한 인테리어와 그 감성에 어울리는 시원한 맥주와 함께 수제 피자등으로 저녁을 먹었다. 지역 음식이 생각보다 맛났다.
그리고 이 로드트립의 끝에는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부활절 달걀 모양의 마시멜로가 얹힌 스트로베리 맛, 스모어 맛, 바닐라 맛 수제 아이스크림으로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아이들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여행때 겪었던 스토리를 종알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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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owell.edu/discover/history-of-pluto/
덱 관측대에서 볼 수 있는 천체망원경 종류
https://lowell.edu/discover/telescopes-exhibits/go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