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드디어.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오랫동안 공사를 끝내고 2021년에 재개관했던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팬데믹 직후에 실내 박물관 방문은 뜸했고, 영화 관련이라 어린아이들에게 무섭기도 하고 난해할 거 같아 이제야 찾았다.
로스앤젤레스라 하면 우선 할리우드와 영화산업이 떠오른다.
할리우드 영화를 생각하면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상)이 연상된다. 어릴 적 티브이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며 가보고 싶었던 자리. 실제로는 지인들이 참석하러 가느라 드레스 길게 늘어뜨리고 가는 모습을 두어 번 보며 부러워만 했다. 반농담으로 나도 데려가라 했지만 시상식 티켓은 콘서트처럼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는 연예인 손바닥으로 유명한 거리다. 그 근처에 1929년 첫 아카데미 시상식을 했던 할리우드 루즈벨트 호텔 The hollywood Roosevelt, 1944년에서 46년까지 아카데미 시상식을 했던 TCL 차이니스 극장, 그리고 2002년 이래부터 최근까지 시상식이 열리는 돌비 극장 Dolby Theater이 있다.
매년 2월 시상식이 있을 때 배우들이 살포시 올라갔을 길고 우아하게 뻗은 계단은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 계단 앞에서 인증샷을 찍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찾아 바닥에 앉아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영화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까지 왔는데 그곳만 다녀가기엔 무언가 섭섭했다.
돌비 극장 내에 투어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외에 주변을 돌아보면 기념품점과 각종 가게들만 즐비하다. 캐릭터로 분장해 돈을 받고 사진 찍어 주는 몇몇 사람 외엔 대부분이 관광객이다.
할리우드를 더 알고 싶다면, 유니버셜 스튜디오나 워너브라더즈 스튜디오를 투어 할 수 있는데 그곳에 가면 실제 영화 촬영 현장이나 이전 촬영지등을 엿볼 수 있다. 재미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부족했다.
영화의 고장을 수박 겉핥기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개관했다.
영화팬이나 영화 관련업 지망생, 영화 관련 학과 학생이라면 강추
아카데미 박물관...이라 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시상식이라 그 스토리를 끌어내기에 큐레이터의 고심이 만만치 않을 테니 말이다.
처음 엘에이를 방문했을 때 아카데미 관련 박물관이 없나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그런 콘테츠를 가진 곳이 의외로 없었다. 물론 트램을 타고 투어 하는 대형 스튜디오 내 촬영지에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드는 공룡과 죠스를 만났고, 즐겨보던 <프렌즈>에서 친구들이 항상 모여 수다하던 카페 스튜디오 세트장을 방문했을 때 신기했다. 당시 시트콤을 찍던 <빅뱅 띠어리> 스튜디오도 방문해 방청석에 앉아 박수도 쳐보는 등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즐겨보던 드라마나 영화 속에 다녀온 듯한 즐거움은 있었다.
하지만 이제껏 봐온 모든 할리우드 영화 관련 전시회는 뻔했다. 아무래도 할리우드 영화는 팝콘 뮤비도 많고, 순수 작품이라기보다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구석구석 독립영화 극장도 없지 않다. 관련 이벤트장이나 전시장은 좋아하는 캐릭터를 볼 수 있으나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시킬 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이들의 지난 스토리들을 차근차근 정리해서 분류해 역사적, 예술적으로 박물관을 채워놓았다.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해 둬서 지루할 겨를은 없었고, 글도 많았다. 더불어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디자인한 공간 구성안에 돌아다니며 셔터만 눌러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영화 관련 학생이나 미대생이라면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도 있다.
사실 학창 시절 영화와 애니메이션등 필름 관련 책을 보면 가끔 지겨울 때가 있었다. 영화 보는 것은 재미있는데, 역사와 기술적인 내용의 책들이 생각보다 참 딱딱했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였다. 귀엽고 즐겁고 그림이 많을 거 같은 책표지의 애니메이션 전공 서적이었지만 막상 책을 펼치면 작고 촘촘한 글씨에 어렵게 적어놨다.
거기에 카메라나 3D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면 공부가 끝이 없음이 느껴진다. 하다 보면 컴퓨터 언어도 습득해야 할 거 같다.
그런데 박물관은 이 영화산업을 쉽게 설명해 놨다.
실제로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필름제작 기술은 칼텍, MIT와 같은 공대 출신 인재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기에 첨단기술을 사용 중이고, 할리우드는 항상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데 시간과 자본을 아끼지 않았다.
찰리 채플린 때부터 거론되던 영화와 정치, 그리고 거대한 자본을 움직이기에 말도 많은 할리우드지만, 다 제쳐두고 재미있는 필름을 만들고자 하는 꾼들이 모여 시작된 곳이 이곳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은 집에 들어갈 시간도 없이 작품에 몰입해서 제작한다.
할리우드 진입벽은 높다.
그게 인종차별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관찰해 본 바는 비주얼, 뮤직등 제작진, 프리프로덕션 일은 모두 일단은 실력이고, 그다음은 감독과 제작진과의 소통이다. 그들의 컬처 안에 들어가 있어야 언어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과 공상조차도 서로 공감이 된다.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는 가끔 눈만 봐도 통하지 않은가. 예를 들면, 한국 병맛 작품을 제작한다고 할 때 그 느낌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더해 감독과 결이 맞으면 원활하게 함께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이라고 다 통하는 것도 아니듯, 같은 백인이라도 다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했던 크루가 계속 이어지고, 다른 백인도 들어가기 어려운 제작진 그룹에 타인종이 스며들기는 더 쉽지 않다.
그래서 진입이 어렵지만, 일단 그들의 일원이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함께 간다.
학교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백인이라도 한 친구는 학교를 다니며 HBO 거대 프로젝트( Game of Throne)에 19살 때 잡일부터 시작해서 계속 경력을 쌓고, 관계자들과 인맥을 쌓아갔다. 그는 30대가 된 지금도 아직도 HBO 프로덕션일을 하며 상도 받고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일을 계속 이어가며 프로덕션 감독으로 성장한다면 후에 그는 오스카상을 받을 기회도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가기에 어지간한 백인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흑인, 아시안, 여성도 마찬가지다. 한편 다른 백인 친구는 처음 친구보다 그림도 더 잘 그렸고 아이디어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작업장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아직도 게임 컴퍼니에서 적당히 편히 아트일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꾸리며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다.
가끔 할리우드는 인종차별 주의자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실만도 아니기에 들을 때마다 불편했다. 위에 동기들처럼 같은 백인이라도 달랐다. 학교를 다니며 밤잠을 설치고 영화 촬영장에 갔다. 방학 동안은 무더운 야외작업장에서 살았다. 스무 살일 때도 윗사람 포함 주변 분위기도 맞출 줄 알았다. 야간작업을 때우러 오라고 연락 오면 달려가는 그런 친구가 이쁨 받고 결국 성공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렇게 20-30년을 할리우드 바닥에서 성장했는데, 그에게 할리우드에서 주는 오스카상을 받을 기회가 더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미국 시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백인이라서 그에게 상을 주지 않는다면 그 또한 역차별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할리우드 영화와 자본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그 벽을 부수고 싶어 하는 거 같다. 할리우드는 칸처럼 순수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부수려 하기전에 본인 나라에 오스카상 버금가는 영화제와 할리우드를 넘 볼 작품을 만들면 될텐데. 한국의 모 게임컴퍼니를 중국이 덥석 먹으려 할때도, 시시탐탐 할리우드를 먹으려 자본으로 밀어부치는 모습을 보면 그저 대중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씁쓸하다. 그래서 80년대처럼 자유롭고 즐거운 할리웃 영화가 더 이상 탄생하지 못하는 걸까.
아무리 한국국적이라 해도 우리나라 세종대왕을 곱슬머리 흑인 배우가 연기한다거나 명성황후를 금발 백인 여배우가 맡아 한국에서 공연한다면 잘 받아들여질까. 잘하는 까만 머리 한국인 배우도 많은데. 헐리웃도 마찬가지다.
뮤지컬 <해밀턴>이 그랬다. 해밀턴역의 배우가 흑인이었다. 랩처럼 만들어진 뮤지컬곡이라 흑인이 해도 되었다. 실력이 좋은 흑인이나 아시안 배우가 있다면 당연히 해밀턴역을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헷갈렸다, 실제 해밀턴은 백인이었으므로. 관객도 흑인 해밀턴에 적응이 안 되고, 어린이들 중 해밀턴을 흑인으로 알고 있는 아이도 봤다.
인종차별로 도전에 억눌리는 유색인종은 억울하고, 경쟁에 떨어진 백인도 억울하다. 그런데 픽션이 아닌 실제 역사를 제작할 때, 관객도 생각해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요즘은 무엇이 인종차별인지 가끔 헷갈리는 세상이다.
그래도 요즘 프로덕션 쪽은 타인종도 많다. 영화 크레딧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프로덕션, 코스튬, 극본, 메이크업등 시상식장까지 갈 직급은 대부분이 백인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봉준호 감독의 뜻을 제일 잘 알아들을 인종은 한국인일 것처럼 말이다. 조지 루카스나 JJ 아브라함 감독이 준비하는, 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영상과 그 뜻을 몇 마디 말과 눈빛으로 철떡 같이 알아듣고 미리 준비하고, 그 결에 맞는 의견을 낼 수 있다면 아시안이라도 그 크루에 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소통이 중요한 창의적인 부분이라 쉽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기술쪽은 다르다. 한국계 미국인인 지인은 기술 쪽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올라갔다. 그는 MIT를 졸업하고 할리우드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영화제작에 기여를 한 분이다. 비록 배우들과 함께 티브이에 출현하는 시상식은 아니지만 (엔지니어들은 따로 한다) 그들 모두 아카데미 상을 받고 뿌듯해한다. 프로덕션부터는 실력있는 타인종들도 할리우드 작품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사족으로, 연로한 유명 할리우드 프로듀서 중에는 감당하기 쉽지않은 성격을 가진 이가 꽤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로 인종차별, 여성비하 하는이도 있을 겁니다.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런 상사를 감당할 수 있을 사람이 크루에 들겠지요.
아카데미 시상식을 백인들만의 잔치라며 인종차별만을 거론하며 질투하는 사람들은 그 산업에 대한 연구와 역사 공부를 더 했으면 하는 바람에 잠시 언급했습니다.
서로 이해를 하고 다가간다면 더 좋은 작품이 탄생될테고, 또 다른 봉준호 감독이나 한국인 존 윌리암스같은 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단 실력이 먼저겠지요. (사족이 길었습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전 레드카펫 위에 키보다 더 큰 아카데미상이 있는데 거기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은 레스토랑이 있고 왼편에 '시네마 이야기 1' 공간과 기프트샵이 있다.
'시네마 이야기 1' Stories of Cinema 1 공간에는 사람들이 편하게 큰 소파에 앉아 1800년 후반 영화부터 최근까지 영화를 15분으로 단축해 보여주는데, 영화의 발전과정을 짧게 한눈에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오래전 읽었던 영화 역사책인지 교과서였는지는 무척 딱딱했다. 필름역사를 알고 싶어 읽은 책인데 무료하기 짝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15분은 영화 초보자도 한눈에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시대별로 영상을 편집 정리해 방영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1980-90년대가 할리우드와 홍콩영화의 부흥기로 내가 아는 많은 작품들이 등장했다. 당시 천재적인 감독과 작곡가, 연출가들이 큰 역할을 했고, 지금은 그 거장들이 70-80대 노인이 되어 아직도 할리우드에 고문 역할을 하고 있다. 존 윌리엄스와 같은 작곡가는 90대인 지금도 활동을 하고 계신다.
2010년대와 2020년 시기에는 할리우드 영화에도 점점 유색인종 등장도 많아지고, 특히 우리나라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영상은 밑에)
2층으로 올라가면 '시네마 이야기 2' Stories of Cinema 2 공간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영화를 만드는 요소를 16가지로 나누어 짧게 설명을 해 놓았다.
아이들이 뚱땅거리기에도 작아 보이는 피아노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뒤로 피아노가 등장했던 장면이 크게 확대되어 벽을 장식하고 있다. 영화 장면 속에서는 일반 피아노로 보일만큼 그 크기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실제로 자그마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또한 그곳에는 요즘 아이들이 본 적 없는 두꺼운 옛날 텔레비전이 있었다. 미디어 아트에나 쓰일법한 오래된 텔레비전은 노이즈 강한 화질로 영상을 투영하고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인 트로피도 전시되어 있다. 1927년부터 2020년까지 트로피가 유리 상자에 고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중 1934년 클라크 게이블이란 유명배우의 트로피가 눈에 띄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열연했던 중후한 미남 남주로 기억하고 있다.
이제껏 수상자들의 수상소감 화면들, 거장 '히치콕'의 <새> 대본과 콘티, <사이코>를 집필했던 타자기, 다른 영화제작 하던 메모들, 대본들 등 많은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영화학도라면 눈여겨볼 섹션이다.
어릴 때 보았던 명작 <대부>. 출연자들의 의상과 책상 등 프로덕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알파치노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의상을 보니 생각보다 더 작아서 놀랐다. 그 외 <타이타닉>의 남녀 주인공이 입었던 의상, 교통사고로 요절한 미남 배우 '제임스 딘'이 영화에서 입었던 의상,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가 신었던 빨간 구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위대한 게츠비>에서 입었던 핑크 양복 외에 여러 영화 속 기억에 남는 영화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애니메이션이나 <스타워즈>등 판타지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도 있다.
<터미네이터> 콘셉트 디자인, <월리>의 여러 스케치와 모형들, 일본만화 <아키라>의 원본 그림, <피노키오>의 애니메이션 촬영했던 그의 집등을 볼 수 있다. 또 H.R. 기거가 디자인했던 오리지널 <에일리언>의 머리가 전시되어 있어 놀랍고 반가웠다.
그곳에는 에일리언 말고도 SF나 판타지에 나왔던 캐릭터나 프로덕션들이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방이었다. 거꾸로 매달린 스파이더맨, <매트릭스> 영화 속 캐릭터 모피어스의 뻣뻣해 보이는 가죽 롱코트를 입은 마네킹, <X맨>의 스톰, <아이언맨>의 헬멧, <토르>의 쇠망치,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스타워즈 The force awakens>에 출현했던 빨간 팔을 단 'C-3po'와 일그러지고 깨진 다크베이더의 검은 헬멧등이 있다.
1982년 작 미래형 영화였던 <트론 Tron>의 의상을 입은 마네킹 곁에는 몇 년 전 돌아가신 존경하던 디자이너 '시드매드 Syd mead'의 트론 바이크 디자인 원본 스케치 두장도 벽에 조용히 걸려있었다. 그의 디자인을 따르던 사람이라면 벽에 무심히 걸려있는 작은 스케치를 보면 단박에 그의 선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피카소의 원본 스케치를 봤을 때 기분처럼 심장이 찌릿했다.
이 박물관에서 눈여겨본 색다른 스페셜 이벤트는 컬러였다.
미술 전공 수업에서만 보거나 만들던 컬러 서클이 한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니 그전에 건물 입구 바닥에 원형 카펫처럼 큰 컬러차트가 깔려 있었다.
컬러를 이야기하기 위해 큰 공간을 사용한 박물관을 본 기억이 없다. 물론 이곳에서 다루는 컬러는 안료를 섞어 만드는 색이 아닌 빛이 만들어내는 색을 이야기한다.
영화 제작에 있어 프리 프로덕션과 프로덕션 과정에서 색을 사용하는 일은 중요하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도 한국에 영화 조명 전공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빛과 컬러를 이용해 영화의 톤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해리포터>가 후속작으로 갈수록 포터의 성장과 함께 점점 어두워지고 컬러톤도 무거워진다. 그런데 그때부터 1편에 비해 성인 시청자가 늘었다.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거나 강한 색감을 이용한 자극적인 영화든, 빛과 컬러를 잘 아는 창조력과 감각을 가진 조명 디렉터가 필요했다. 요즘은 디지털 기기로 영화가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 디지털 컬러리스트가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런 중요하지만 크게 노출되지 않았던 빛과 컬러에 대한 공간을 따로 만들어 방문객에게 정보와 액티비티를 제공한 점은 이곳의 특별함 아닐까 여겨진다. (이 공간은 시기별로 달라진다)
이곳은 비슷한 전공의 친구와 방문했다면 빛과 노느라 하루종일 시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이 박물관의 외형적 큰 특징은 스피어 건물이다.
이곳은 두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원래 있던 빌딩을 리모델링한 사반 saban 빌딩과 새로 건축한 스피어 Sphere 빌딩이 유리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반빌딩에 이제껏 설명했던 여러 공간들이 존재하고, 유리다리를 건너 스피어 빌딩으로 가면 천석 규모의 최첨단 '데이비드 제픈'상영관과 옥상 '돌비 테라스 Dolby Terrace'로 나눠져 있다.
우리 가족은 테라스만 방문했는데, 멀리 할리우드와 베버리힐즈 외 로스앤젤레스 전망이 트여 가슴도 함께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 외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 독특한 아이템들이 있는 기프트샵. 야외로 나오면 라크마 LACMA로 연결되어 있다. 오후에 들어가 살짝 어두워질 시간에 나온다면 불이 켜진 어반라이트 Urban light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인증샷을 열심히 찍고, 가끔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도 보였다.
가족 여행 특성상, 불이 켜진 어반라이트를 멀리서 보며 우리 일행은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식당으로 향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디저트로 초콜릿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고서야 과다 정보를 흡인한 후 지쳤던 어린 아이들 얼굴이 활짝 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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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