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 근교) 데스칸소 가든 - 멀리 가야만 여행인가요
기억 속 한국은 낮은 산이 많다. 조금만 도시 근교로 나가면 울창한 나무숲 속 길을 따라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을 밟으며 산행을 할 수 있었다. 공기가 맑았다. 지붕 끝이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백로 날개처럼 시원하게 뻗은 처마에 작은 종이 달려있고, 섬세한 문양으로 장식된 절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들은 문 앞에서 굽신굽신 인사를 하고 들어가 큰 방석을 펼치고 부처님께 불교식 절을 올렸다. 방석 위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린 후 부처님께 작은 상을 올리듯 손바닥을 위로 올렸다. 앞마당에는 신자들이 적은 글이 담긴 연등이나 기와를 볼 때도 있었다. 슬금슬금 공기를 타고 와 코 속으로 스며들던 옅은 향냄새. 스님이 치시던 고요하고 맑은 목탁 소리.
앞마당에 고여 작은 관을 따라 흘러내리던 차가운 약수를 대나무 쪽바가지로 담아 한입 마시면 기분이 좋으면서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아주 어린 시절에 들었던 유언비어 때문이었다. 가끔 약수에 보이지 않는 뱀알이 산 위에서 떠내려와 그걸 모르고 마셨던 사람 뱃속에서 뱀이 자랐다는 요상한 이야기로, 성인이 된 이제 그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기분이 깨림칙함은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면 동글동글 활엽수들이 가득했고, 가을이면 마치 딴 세상처럼 울긋불긋 노랑 빨강 초록 연두 누런색잎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산이 되었다. 그렇게 가을이 뽐냈다.
산행을 마치면 전통가옥에서 토종닭으로 만든 영양 백숙을 먹고 집에 와서 한숨 푹 자면 기운이 불끈 쏟았다.
사실 한국의 이 모든 아름다움과 맑고 깨끗한 공기의 소중함을 깨달은 건 엘에이 온 후였다.
한국에 있을 때 그 모습들이 아름다운 줄 몰랐고, 당연하다 여겼던 풍경이다. 뉴욕에도 사계절은 있었는데, 로스앤젤레스는 계절이 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사계절은 아니다.
사막지역이라 산은 작은 나무들로 덮인 수준이고 땅은 버석거리는 흙이다. 불이 났던 산은 벌거숭이가 되어 반질거리고, 중간중간 산이 갈라져 바위들이 결을 맞춰 있는 모습은 흡사 지리 시간 교과서 어느 한 페이지에서 본 듯한 지층이다. 침엽수가 많고, 비가 자주 오지 않아 먼지가 날리며 와중에 그 먼지와 꽃가루로 없던 알레르기도 생긴다. 그래도 북가주로 더 올라가면 이쁜 단풍은 볼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와 근교. 한국의 산과 다를 뿐이지 여기도 여기만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는 있다. 하이킹 코스도 잘 닦여져 있고, 폭포가 흐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하이킹을 하고 싶지만, 사실 이곳 땡볕이 너무 뜨겁고, 하이킹 중 슈슈슈슈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큰 방울뱀을 마주친 이후로는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네, 겁 먹었습니다.
We are Lucky! 멀리 가야만 여행인가요
엘에이 도심에서 조금 북쪽으로 라카나다와 패서디나에 각각 큰 공원이 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와 데스칸소 가든. 두 곳 모두 LA 관광지들이다.
규모는 헌팅턴 라이브러리가 훨씬 크고 식물 종류도 많다. 이곳은 철도와 부동산으로 재력가가 된 헌팅턴가의 사유지로 그들이 살던 저택과 도서관, 미술관, 식물원이 있다. 지금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는 곳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구텐베르크의 성경책이다. 이것은 전 세계 49권 남은 성경책 중 하나라 하니 더욱 눈여겨보게 되었다. 인쇄며 색상이 여전히 잘 유지되어 있었다. 그 외 여러 고서들을 갖추고 있고, 따로 특별 보관한 도서류도 금고에 있다.
반면 데스칸소 가든은 그곳에 비하면 아담한 사이즈로 한두 시간이면 가든 전체를 돌 수 있다. 이곳도 지역 유지가 살았던 저택과 가든을 일반인에게 공개한 장소다. 저택 내에는 항상 새로운 이벤트로 꾸며져 있고, 건너 별채에 마련된 작은 미술관은 항상 새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주로 자연친밀 주제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뒷산을 오르면 나사 NASA JPL과 그 근처 확 트인 풍경을 바라볼 수 있고, 조금 가파르고 귀여운 오솔길이라 운동 겸 가벼운 하이킹을 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이나 타주등 멀리서 여행을 와 둘 중 한 곳만 가야 한다면 고서를 볼 수 있는 헌팅턴 라이브러리로 가라고 권할 것이지만, 엘에이나 그 근교에 체류하면서 산책을 원한다면 데스칸소 가든을 추천한다.
데스칸소 가든 Descanso Garden
데스칸소 Descanso는 스패니쉬로 영어로 풀이하면 쉼터 Place of Rest 다. 말 그대로 유유자적 뒷짐지고 한 바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일본정원과 동백꽃, 장미정원외 계절이나 때마다 새로운 이벤트들이 준비되어 있다. 봄이면 튤립이 한가득 피고 벚꽃이 날리며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음악 공연, 가을이면 조각한 호박들과 펌킨패치등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겨울이면 인첸티드 Enchanted라는 이름 아래 온 가든이 야광 불빛으로 꾸며져 신비로운 세상으로 인도한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엘이이 지역은 등산을 하더라도 그늘이 많이 없다. 동네 다른 하이킹 코스는 여름에 땡볕이라 아침 8시에 나가도 후끈하고 피부가 까맣게 태닝 된다. 길거리도 마찬가지다. 도심이든 근교든 햇볕이 강해 길거리를 걸어 다니기 힘들고 안전을 위해 아이들은 각자 개인 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말리부 근처 바닷가 하이킹을 가도 이른 오전이 아니면 그 햇볕을 견디기 쉽지 않았다.
더불어 가끔 하이킹 관련 두려운 뉴스가 들릴 때도 있다. 마운틴 라이언이나 곰, 코요테와 같은 야생동물을 마주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등산 초보인 우리는 함부로 아이들을 데리고 하이킹을 다니지 않았고,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런 지역에서 아이들이 쉬운 코스 하이킹을 야생동물 만날 염려 없이 안전하게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그게 바로 데스칸소 가든이다. 그곳이 사는 지역 근처에 있음은 굉장한 럭키다.
물론 여름에 뱀은 나오기에 주의 푯말도 있고, 몇 번 야생 사슴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 정도는 아이들에게 큰 기쁨이 된 시간이었다.
가든에는 간간이 그늘도 있기에 무더운 여름에도 걸을 수 있고, 때마다 작품이 바뀌는 미술관까지 공원 내에 있어 아이들이 걷기에 지루해질 무렵에는 시원한 그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한다.
지역 동네 주민들은 공식 시간표 보다 한 시간여 정도 일찍 입장할 수 있는데, 많은 어른들이 아침 산책을 즐긴다. 원하면 조금 더 가파른 작은 산길로 올라가 좁은 산책길로 짧은 등산도 할 수 있다.
오전시간에는 유모차 부대가 많다.
운동이 필요한 엄마, 바깥공기가 필요한 아기들은 가든 내 여기저기 흙을 가지고 놀거나 기차를 타거나, 거북이를 보며 탄성을 지른다. 나무를 깎아 만든 기차나라도 있다. 그곳에 가면 아이들이 좋아할 기차들이 마구 돌고 달리고 있기에 유아들은 신기하게 바라보며 좋아한다.
중간중간에 담요를 깔고 아이들이 앉아 놀기도 한다. 그 뒤로 엄마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여 그곳 가든의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오후가 되면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많고, 혹은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혹은 웨딩촬영 장소로 이용된다. 가끔 아티스트들도 만날 수 있다. 이젤을 펴놓고 풍경화를 그리는 나이 많은 아티스트들도 마주친다.
동창, 인연
몇 년전이었다. 어느 여름날 버드나무 아래 자리를 펴고 아이들은 엎드려 작은 손으로 꼬물꼬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평소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은 지나가다가 가끔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림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 날도 여러명이 아이들이 끄적이는 그림을 보고 지나갔는데, 한 아시안 여성이 지나가다가 우리 주변을 기웃거렸다. 낯익은 여성이었다.
그 낯익음에 서로 한참을 보다가 '우리 알죠? 우리 친했던거 같은데......'
30년만이었다.
내가 학교를 전학하면서 친구들과 이별 인사를 못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 그룹 중 한명이었다. 둘 다 너무 반가웠지만 상상도 못했던 타국에서의 만남이라 긴말을 잇지 못하고 일단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나사 NASA JPL에 일을 하게된 남편 따라 미국왔다고 했다. 근처 살다보니 혼자 데스칸소 가든을 가끔 산책한다 들었다. 이 큰 미국땅 그곳 그 장소에서 오래전 인연의 만남이 신기하기만 했다.
사진 앨범을 뒤져 우리가 함께 갔었던 수학여행 사진을 다시 만난 브런치 자리에서 보여주었다. 나와 그녀, 그리고 다른 친했던 친구들이 같은 반티셔츠를 입고 귀여운 포즈를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 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난 그저 즐겁게 보냈던 시절이라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담임으로 부터 약간의 차별을 당하고 있었단다. 조금 안타까운 일이지만 친구나 나나 당시 우리가 받았던 주입식 교육이 맞지 않았다. 친구는 똑똑했던 기억이 있지만 순딩하고 느린 친구였다. 성적은 중상위권. 나중에 들어보니 원치 않는 대학을 억지로 갔다가, 나중에 혼자 다시 공부해서 서울대 물리학과를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친구는 선생님으로 부터 차별을 당했고, 그 괴로움이 학업에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혹은 수학에 대한 두뇌가 늦게 열렸을지도 모른다.
주입식 교육에 가려져 짓눌러졌던 친구의 재능과 그녀가 사춘기때 받았을 아픔도 몰랐던 친구였던 내가 미안했고, 그 아픔을 지나 혼자 공부해 다시 본인이 좋아하는 공부를 해 가고 있음이 대견했다.
그런데 나와 마주친 당시도 약간의 우울증과 말 못하는 개인적인 일로 매일 산책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30년만에 만난 친구에게 그 개인적인 일을 알리지 않았다. 담임께 차별당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 학창시절처럼 말이다. 내 성격 또한 꼬치꼬치 묻는 성격이 못 되고, 프라이빗한 선을 함부로 넘지 않는지라 궁금해도 그녀가 하는 말만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두번 연락을 주고 받다가 나는 육아에 바빳고, 친구는 한국을 드나들며 치료한다고 하더니 다시 소식이 끊겼다. 우울해 보였던 친구가 떠올라 가끔 연락을 취했지만 귀국을 한건지 어디가 아파서인지 혹은 불임때문인지 다시 동굴로 들어간 듯 해 보였다. 그렇게 또 몇년이 흘렀다.
어른으로 인한 억울한 십대는 있으면 안된다. 특히 그게 선생님이라는 중요한 위치일 때는 더더욱.
하지만 우리 어릴때는 불평등한 선생님들이 계셨다. 학생주임도 그랬고, 담임들도 그랬다. 세상에 평등하기만 한 곳이 어디 있겠냐만은. 낙하산으로 들어오셨던 수학선생님은 사실 노트가 없으면 수업을 진행할 수 없으셨다. 성품은 좋으신 분이셨고, 죄송하지만 실력은 고등학교에 계시면 안될 분이셨다. 당시 한참 참교육을 강조하시던 선생님 모임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분들은 우리 학생들을 챙겨주셨다. 그러다가 어떤분은 운동권이라고 직업을 잃기도 했던. 떠나가시던 좋은 선생님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우리가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채 90년대 초 민주화 과정의 한 단면에 있었다. 당시 우리학교 진정한 교육자분들은 그렇게 떠나가셨다.
나 또한 고등시절 담임 선생님의 의미심장한 단 한마디에 진로가 바뀌기도 했다. 그 분들은 왜 그랬을까. 어쩌면 본인들도 그 자리가 아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위치였는지 모르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도 대학을 하향 조정해 가능한한 대학 합격률을 높이는데만 신경썼던거 같다. 그냥 직업.
서울대 물리학과를 갈 수 있었던 아이의 성장을 돕지 못하고, 남과 다른 그 아이의 느리고 조금 엉뚱한 모습에 오히려 구박하고 차별하며 괴롭혔을까. 그렇게 30년이 지나도 상처로 남긴 것일까.
(물론 당시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들리는 소식은 지금 한국의 선생님 입지는 우리때와 다르다. 오히려 선생님을 때리는 인성 상실한 학생들의 뉴스를 보면 기가찬다.학생도 선생님도 서로 존중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어른이 된 나는 아이들에게, 특히 인생을 진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십대들에게 농담 한마디라도 단어를 조심히 쓰고자 한다. 다행히 초등학생인 내 아이들은 아직은 사랑을 듬뿍 주시는 담임들을 만나 감사할 따름이다.
이 글을 쓰고 있으니 그 장소에서의 그 인연이 떠오른다. 그 친구는 다시 행복해졌을까, 귀국 했을까. 공원을 가면 혹시나 있을까바 두리번 거린다. 인생에 우연치 않은 부분에서 불쑥 다녀간 반가운 인연이 아닐까 싶다.
멀리 가야만 여행인가요.
아이들과 작은 물병 하나 들고, 가든으로 들어서면 아이들의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들에게 이 가든은 굉장히 크게 느껴질 것이다. 아이들은 잠시 학교 과제와 해야 할 숙제들을 잊고 숲 속을 헤집고, 나뭇잎을 가지고 논다. 어릴 때는 간간이 그림도 그리기도 했다.
헤엄치는 잉어 개수를 세고, 작은 시냇가를 깡충 거리며 건너기도 하고, 숲 속 미로를 따라 나무 사이를 뱅뱅돌기도 했다.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시기가 오면 이쁜 색상의 잠자리를 만날 수 있는데, 아이들은 특히 하늘색 잠자리를 좋아했다.
분수대를 보면 엄마를 쳐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작은 동전을 손에 쥐고 분수대를 등진채 소원을 빈다. 그리고 뒤로 쑥 던지면 맑은 소리를 내며 동전은 물속으로 떨어졌다. 무슨 소원을 빈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그 동전 던지기를 좋아한다.
걷다가 지치면 미술관으로 달려가 새로 전시되는 작품들을 감상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그들의 나무를 찾았다. 그 나무는 작은 나무 정도의 굵은 가지가 바닥 가까이 길게 뻗어 있는데, 그곳에 아이들은 올라타 안거나 누워있길 좋아했다. 그 나무는 항상 자기들의 안식처처럼 찾아가 걸터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쓴다. 엄마가 다그쳐야 아이들은 그제야 나무에서 내려와 인사를 하고 다시 달려 내려왔다.
봄이 오면 튤립과 벚꽃사이를 뛰어다니고, 여름에는 그늘에 앉아 이쁘게 핀 꽃과 버드나무를 그렸다. 가을에는 바삭거리는 나뭇잎과 장식해 둔 짚을 밟으며 호박 사이를 뛰어다녔고, 겨울에는 빛으로 꾸며진 신비로운 숲 속에서 따뜻한 핫초코를 마셨다.
아이들의 추억이 매년 쌓이는 이 가든을 보면, 내가 어릴 적 좋아하던 어린이 대공원이나 과학관이 떠오른다.
그곳에 가면 기분이 좋았다. 아마 내 아이들에게는 이 데스칸소 가든이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로 치면 절가, 근처 예쁜 공원이나 한강변이 아이들과 자주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멀리 가야만 여행이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라면 집 근처 공원 산책을 가더라도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의 한편을 밝힐 수 있는 짧은 여행이 아닐까 여겨진다.
거기에 아이스크림 한 입 더하면 여행 후 맛난 디저트를 먹은 듯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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