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 피는 섞이지 않은 가족과의 여행
하와이를 가면 일몰에 노을이 아름답다. 그만큼 아름다운 또 다른 자연경관은 무지개다. 그래서 하와이는 무지개 섬이다. 하와이 자동차 번호판에도 무지개 로고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 섬에 매년 방문했지만 제대로 된 쌍무지개를 본 기억이 없다. (기억을 마구 끄집어내보면 희끄므레한 쌍무지개를 본 적이 있긴 했지만 내 가슴속에 감동을 남기진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쌍무지개가 내 눈 앞에 한참 떠 있었다.
그 전에 저녁노을의 빛깔이 예사롭지 않았다.
누런빛이 가득하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모든 입자가 공중에 정지한 듯한 느낌. 평범한 시간에서 잠시 몽환적인 시간으로 넘어가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런 빛과 기운이 들 때면 항상 무지개가 떴는데. 하지만 해는 점점 바다 뒤로 기웃기웃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사람들의 와.. 탄성이 들렸고, 돌아보니 우리나라 무지개떡 마냥 선명한 색을 선보이며 예쁜 무지개가 고층 빌딩 사이에 드리워졌다. 처음에 옅던 무지개가 점점 진해졌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휴대폰으로 열심히 저 눈앞에 펼쳐진 무지개를 찍어댔다.
곧 이어 그 무지개 위로 더 큰 무지개가 옅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쌍무지개가 환하게 건물 위에 내 비치며 해가 저물어가고 어두워지기 전까지 우리 머리 위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혹여 좋은 기운이 들까 밑에서 무지개를 배경으로 기념샷도 찍었다. 우리 일행은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렇게 떡 하니 하늘에 나타난 무지개는 약간 높은 언덕길에 있는 찻길 지평선까지 내려왔고, 저기 찻길로 가면 마치 그 무지개에 기어 올라 갈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생각처럼 무지개 다리위에서 놀 수 있을거 같았다. 신비로웠다.
그곳은 시애틀이었다.
퍼블릭 마켓 센터, 바다를 포함한 경치를 전망할 수 있는 야외 데크였다.
5년 전 방문했던 시애틀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 더 많았다. 비가 많이 오지 않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아이들은 그런 비가 즐거워 우산 쓰고 다니고, 후드를 뒤집어 쓰고 내리는 비를 맞기도 했었다.
이번 시애틀 여행도 삼일 중 하루는 적어도 비가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같이 간 날씨요정 친구 덕분인지 날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살짝 더운 듯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 그런 날씨가 지속된다면 시애틀도 살 만하다 생각되었다.
지난 주말여행은 가족이지만 피는 섞이지 않은 가족, 즉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이었다.
이 가족여행 에세이는 원래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를 해야 했지만, 미리 이야기하자면 아이스크림 대신 시원한 화이트 와인, 소비뇽 블랑과 그곳 한인마켓에서 구입했던 풀무원 흰색 단무지로 여행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물론 식탁에는 각종 과자와 치즈, 포도, 음식등이 있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와인과 단무지가 강하게 남았다. 맛있었다기 보다 처음 시도해 봤던 의외의 조합이라 더 기억에 남을지 모른다.
5년 전 시누이 가족들과 함께 어른넷 아이 세명과 함께 이 도시를 들렀다.
비도 오고 어린아이들이 있었던 탓에 맛집투어로 기획해서 3일 내내 맛난 음식을 먹으며 여행했다. (시누이네가 맛있는 먹을거리를 좋아한다.) 음식과 술, 커피, 디저트를 먹으며 시애틀을 구경했었다.
당시 스타벅스 1호점은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서 들어갈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고, 근처 시애틀 커피 웍스 Seattle coffee works라는 또 다른 커피점을 들렀었다. 카푸치노를 시켰는데 두꺼운 세라믹컵이 아닌 손잡이도 없는 유리컵에 카푸치노가 나왔다. (나중에 유럽에서도 그런 두꺼운 유리컵에 카푸치노를 마신 기억이 있다.) 거품만이 아닌 갈색 속이 다 보이던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그 비에 낙엽 떨어지고, 앞에 서 있는 금빛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마시던 커피향과 그 맛이 나의 감수성을 자극했었다.
곁에서 아이들이 핫쵸코를 마시며 떠들어도 그 커피와 날씨는 나의 감성을 깨웠다. 글을 끄적이거나 스케치를 하고 싶었지만, 가족여행에서 엄마는 그런 낭만을 즐길 틈이 없기에 사진으로 그 순간들을 남겼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시애틀에 온다면 여자친구들과 커피투어를 하고 싶다…. 란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마침 당시 시애틀 커피맛이 너무 좋았고, 가끔 블로그에 커피맛집 투어글이 올라오기도 했었다. 당시 우리가 음식 맛집투어를 했다면, 그 20대 블로거들은 커피맛집 투어 기행을 올리고 있었다.
커피와 시애틀. 무척 어울린다.
그 후 5년이 흐르고, 지난 주말, 그 막연했던 생각이 현실이 되어 그곳을 다시 찾았다.
올해는 내게 특별한 해였으므로 친구들은 내 생일을 위해 남편들과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함께 2박 3일 동안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작은 러기지 하나, 글 쓸 아이패드가 든 짐가방이 벌써 가벼웠다. 아이들이 없으니 여행 장소, 그곳에 집중할 수 있었다. 주변을 관람하던 중 아이 손을 잡고 화장실을 찾아 뛰어다니지 않아도 됐고, 식사 시간을 맞춰 먹이지 않아도 됐으며, 사진을 찍느라 한참을 같은 곳에 머물러도 누구 하나 징징대지 않았다.
싱글들은 이해할 수가 없는 가벼운 몸과 마음일 테다. 나도 싱글일 때는 몰랐던 혼자일 때의 가뿐함과 자유로움.
또한 여행일정도 아이들이 동행하지 않았을 때는 조금 더 빡빡하게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에 짐 gym으로 가서 운동을 하고, 함께 호텔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AI에게 물어 계획했던 스케줄을 조정해서 그날그날 가보고 싶던 곳들을 들렀다.
마음도 여유롭고, 택시를 타도 걸어야 했고, 걷다 보니 더 걸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하루에 만 오천보 이상을 삼일동안걸었다. 아이들이 있었다면 불가능했던 거리였다.
도보로 다닐 수 없는 엘에이 지역에 살다보니 그렇게 걷고 나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힐링여행
여행에서의 음미, 감상을 하려면 이렇게 마음이 맞는 여자친구들과 혹은 혼자만의 여행이 최고다.
커피맛집만 돌아보기에는 시애틀에 생각보다 맛난 음식이 너무 많다. 특히 퍼블릭 마켓 센터 Public market center (혹은 Pike place market)에 가면 맛집들이 가득하다. 한국의 수산시장처럼 생선을 팔고, 공예품, 꽃, 싱싱한 과일 등을 판매한다. 그 주변으로 오래된 간식집, 전통 있는 수제 도넛, 수제 치즈, 빵집, 중국 만두집, 클램 챠우더, 스시, 해산물집등 유명 레스토랑이 가득 있다.
물론 커피숍도 빠질 수 없다.
그런 각종 먹거리가 모인 그곳에 스타벅스 1호점이 있다.
대학시절 스타벅스 커피는 뉴욕의 블록마다 가게가 생겨나고 있었고, 매일 그곳에 들러 바닐라라테를 사 마셨다. 시즌이 되면 밤으로 만든 라테 (체스트월넛 부를리 라테)나 스파이시 펌킨 라테를 마셨고, 카페인 가득한 커피가 부담스러울 때 거품 가득 초록색 그린티 마차 라테를 마셨다. 그래서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한때는 매일 출근도장을 찍던 커피숍이었다.
길고 좁은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이 커피숍은 미 동서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있는 국제적인 커피점으로 성장해 대기업이 되었다.
그 시작의 장소에서 여전히 바리스타들이 밀려드는 주문에바삐 커피를 제조하고, 1호점에서만 볼 수 있는 기념품들과 커피원두를 판매했다. 처음 사용했던 지금과 사뭇 다른 브랜드 로고가 가게입구와 기념컵들에 새겨져 있었다. 술 많이 드신 미국 어느 베테랑 어부의 배처럼 배가 불룩하게 나온 인어가 로고에 있어 나중에 집에서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당시 이번 시즌에 나온 새메뉴를 1호점에서 마셨는데, 어제 동네 스타벅스에서 같은 메뉴를 시켜 마셔보았지만 그 맛이 달랐다. 1호점 커피가 훨씬 더 맛났다. 아무래도 가장 신선한 커피빈으로 좀 더 트레이닝된 바리스타가 제작한 커피였기에 더 맛있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요즘은 인스타에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여행장소를 소개해 놓는다. 덕분에 일일이 찾을 필요 없이 맛집도 찾아갈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지나가다 들렀던 랜덤으로 들린 레스토랑의 커피맛도, 그 인테리어도 감성 그 자체였다.
이전의 샌프란시스코를 간 듯한 느낌이었다. 가게마다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고, (그 뜻은 성소수자를 옹호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게이분들도 눈에 많이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게이 친구들을 보면, 그들은 남성적인 강함과 여성의 섬세함을가져 감각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환경보호 단체에 활동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요즘 왜 샌프란시스코가 그렇게 버려졌는지 모르나, 지금의 시애틀은 15-20년 전의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를 보는 듯했다. 깨끗한 동네, 감각 있는 인테리어와 그 분위기.
더불어 구글,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이 시애틀에 오피스를 열어 젊은 프로페셔널들이 더 많이 유입되는 걸로 안다. 그래서인지 시애틀이 5년 전 보다 더 활기차 보였다.
스페이스니들 Space needle, 더 스피어 The Spheres
시애틀의 랜드마크인 스페이스 니들 타워와 그 근처에 팝컬처 뮤지움, 유리 공예가인 치훌리 Chihuly 작품전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함께 있다. 그곳에는 근사한 큰 놀이터가 있는데, 5년 전 방문 때 아이들이 그곳에서 한 시간여를 놀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시간동안 놀이터가 아닌 치훌리 작가의 작품전을 구경할 수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유명 호텔인 벨라지오에 그의 작품이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 천정에 큰 꽃들로 만들어진 유리작품들이다. 그의 아름답고 화려한 유리 공예 작품들과 관련 책, 그리고 간단한 유리공예 쇼를 볼 수 있었다.
또한 시애틀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생겼는데 그것은 더 스피어란 미래형 스타일 건축물이다. 아마존 건물인데 4시 이후에 여는 레스토랑을 방문할 수도 있다. 혹은 한 달에 한번 예약한 일반인들에게 빌딩 내부가 공개되는데 우리 일행이 갔던 토요일은 개방되지 않는 날이라 아쉬웠다.
그 외 근사한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는 워싱턴 대학교 University of Washington는 도서관이 유명하다. 마치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학교를 연상케 하는 도서관을 보러 혹은 그곳 넓고 평화로운 공원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학교를 들렀다.
올림픽 조각 공원에는 거대한 조각상들이 곳곳에 있었다. 빨간 의자에 앉아 바다풍경을 바라보고, 조각상 사이로 바닷가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고 찰랑찰랑 바닷물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잠시 눈을 감고 오감으로 느끼며 걸어보았다.
작가들이 시애틀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시애툴에는 커피 한잔 들고 산책하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았다. 비가 자주 오다 보니 사람들은 감성적이 될 텐데, 기분 때문인지 날이 맑아도 감성 촉촉한 공기가 배어 있는 듯한 그런 곳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한적한 듯 아닌 듯, 시골스러운 듯 아닌 듯한 묘한. 그런데 여기저기 맛난곳이며 이쁜 곳들이 숨어있었다. 사람들의 차림새도 그 곳만의 컬러가 있었다. 촌스럽지도 않고 도시적인 세련미도 아니지만, 그 곳만의 스타일.
무엇보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운동하고, 모닝커피를 마시고, 밥 먹고, 산책하고, 사진찍고, 커피와 와인을 마시며 한가로이 혹은 깔깔 농담을 하며 함께 했던 시간들이 소중하고 값졌던 여행이 아닐까 생각된다.
야식으로 한인마켓에서 사 온 각 종류의 컵라면 오마카제, 제육볶음, 포도와 치즈, 와삭거리는 상큼한 작은 단무지를 입에 넣으며 요즘 인기많은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를 함께 시청했다.
앞서 살짝 언급했듯이, 야식과 함께 하루의 마지막은 아이스크림 대신 소비뇽 블랑 한잔으로 달콤시원하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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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애틀에 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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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언급되었던 장소들
https://www.seattlespheres.com/
https://www.pikeplacemarke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