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정신과 포기를 함께 배우다
아이스스케이팅.
여덟살의 취미다.
오랜만에 스케이트를 신고 스피디하게 달리며 행복해 하는 여덟살.
라스베거스에 겨울 동안 설치하는 야외 아이스링크라 얼음이 고르지 못한 점도 있지만, 여덟살은 이제 스핀은 안 하려 한다.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아이스스케이트장을 갔던 건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3살과 5살 반. 막내가 얼음 위에서 아장아장 걸을 때였다.
딸들을 김연아 선수처럼 키우고 싶다, 피겨스케이팅 빅팬이다,, 따위의 이유를 안고 간 것은 아니었다.
초등시절 몇 번, 대학시절 고작 한 두번 타본 게 나와 아이스스케이팅의 인연이다.
왜 갔냐고?
그저 더위에 약한 내가 도피처를 삼은 곳이었다.
축구를 따라갔다가 엘에이 땡볕 아래서 열병 걸려 쓰러지는 줄 알았다.
아이스링크장에 오면 아이들은 운동하면서 놀고, 나는 시원한 냉동고 벤치에 앉아서 쉬면 그만이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된 운동이었다.
한참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갈라쇼를 하는 모습을 보며, 피겨스케이팅을 하면 발레리나처럼 이쁜 몸매가 될 거 같았다.
딸 엄마로서 아이들 건강과 몸매에 대해 약간 기대를 하며 아이스스케이팅 수업 등록을 하였다.
수업 첫날, 혹여 어린아이가 얼음 바닥에 넘어져 다칠세라 헬멧, 무릎보호대, 스키 장갑, 방수 스키바지를 입혀 얼음판에 들여보냈다. 두꺼운 옷과 헬맷에 아이는 뒤뚱뒤뚱 걸어 얼음판에 올라갔고, 코치의 도움을 받으며 레슨을 받는 곳까지 미끄러져 갔다. 우리 딸만 그런거는 아니었다. 그 클래스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장하고 들어간 탓에 마치 펭귄들이 수업 받는냥 뒤뚱거리며 얼음판을 걸어 다녔다. 두꺼운 스키복 덕에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첫 수업을 마쳤다.
신기하게도 어린아이들은 생각만큼 넘어지지 않았다. 또한 여러 코치들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수업은 진행되었고, 연습 때 혹여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 스케이트를 타며 마냥 즐거워하였다.
관중석에서 넘어질 듯 말 듯 하는 당시 세살이었던 막내딸과 어느 정도 잘하던 6살 첫째딸을 바라보며, 시원한 냉동고 같은 곳에서 캘리포니아의 더운 여름을 피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운동하며 즐거워하고, 나는 시원한 곳에서 더위를 피하고. 역시 탁월한 선택.
둘러보니 높은 레벨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소녀, 소년들은 늘씬하고,
빠른 스피드로 달리며 여러 테크닉을 마구 선보이던 아이스하키를 하는 소년들은 멋있었다.
‘음~ 이 운동 시킬만하네. 좋다~!’
여덟살은 몸이 가볍고 빠른 편이며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데, 초보 그룹 수업에서 세분의 코치가 전화번호를 주고 가셨다. 코치들의 제안을 받으니 도치맘의 마음은 왠지 이 아이를 연아언니처럼 키워봐야 하나.. 라며 로또 당첨을 상상하는 사람 마냥, 피겨 공연을 하는 딸을 상상하였다. 머 상상의 나래는 본인 마음이니.
아이들은 즐겁게 배웠는데, 첫째는 10개월 정도, 둘째는 얼마 배우지 않아 코비드 19가 터지고, 팬데믹 때문에 아이들은 운동을 3년여 정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갔을 때는 6살.
코치님들은 여전히 아이가 재능 있다고 했다.
탤런트도 있고, 즐거워하는 막내딸 운동으로 제격이었다.
겁이 많아 엉덩이를 빼고 타는 첫째와 달리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 달리는 막내딸은 근성도 좋고, 실력도 좋다고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바로 팀에 들어가지 않고, 1년 기한을 두고, 취미와 선수 그 중간 강도로 운동을 시켜보기로 하였다. 그 운동에 대해 가늠할 시간이 필요했다.
선수로 키우려면, 팀에 아이를 가입시켜 일주일에 10-20시간씩 훈련을 하였다. 각종 대회와 장거리 대회도 나가고, 바쁜 코치들의 스케줄과 연습을 위해 홈스쿨링을 하며 피겨스케이팅을 집중적으로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다 실력이 더 나아지면, 왕복 5-6시간 걸리는 링크장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 전국전이나 월드 레벨로 올라가도록 도와줄 수 있는 더 나은 코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취미로 대충 시키는 경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노력과 금전 지출에 비해 실력이 전혀 늘지 않았다. 그들은 연습을 위해 따로 링크장을 찾지 않았다. 내가 첫째 아이에게 그런식으로 여유롭게 취미로 시켰던 것이다. 아이는 연습하러 더 가고 싶어 했지만, 내가 그러지 못했다. 아무리 취미라도 아이들이 실력이 늘어야 본인도 즐거운 건 당연한 일이다. 연습을 하지 못하고 수업만 듣는 학생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중에 친구들과 링크장에 놀러 간다면 넘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 아이스스케이팅을 타며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우리가 다녔던 아이스링크장의 경우, 피겨스케이팅 교육 레벨은 왕초보에서부터 프리스타일 플레티넘 레벨까지 총 13단계로 되어 있었다. 프리스타일 레벨이 되면 파워스케이트 등과 같은 고강도 훈련도 들어갈 수 있었다. 피겨 파워 스케이팅 같은 경우는 얼음판에서 푸시업을 하고 빠른 스피드 연습을 시키는 등 말 그대로 빡센 수업이다.
일 년 동안 피겨스케이팅 그룹레슨과 개인레슨, 발레, 피겨스케이팅 발레, 짐네스틱 외 체력운동까지 일주일에 5-6시간 운동하였다. 그 외에 연습시간도 필요하였다. 이 정도가 여덟살이 6-7살 때 했던 운동 수준이었는데, 유별나게 많이 한 게 절대 아니다. 딱 선수와 취미, 중간 수준.
코치들은 무뚝뚝하고 가끔은 엄하기도 하였는데 아이는 불만이 없었다. 피곤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하며 링크장에 가는 시간을 기다렸다.
레벨이 올라 갈수록 일반인들이 없는, 프리스타일 이상의 실력만 링크장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에 연습을 가야 했는데, 주로 새벽 5-8시 등교 전 시간과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중고등학생들은 새벽에 와서 연습을 하고 학교를 갔다가, 저녁에 다시 와서 연습을 하였다. 우리가 가던 아이스링크장엔 중국인들이 많았다. 역시 타이거맘답게 새벽과 저녁 연습시간, 링크장에서 밥을 먹으며 거의 매일 살다시피 하였다. 그러니 실력이 늘 수밖에. 거기다 유명 코치가 있다면 왕복 3-4시간을 걸려 특별 수업을 받으러 가기도 하였다. 불과 4-9살 아이들이었는데, 모두들 심각하게 운동하는 듯했다. 물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배울 점도 많았다.
기특하게 막내딸은 스케이트를 신은채 얼음판에서 푸시업도 곧 잘 따라 하고, 친구들과 경쟁도 하며 신나 하였다. 아침잠 많은 아이가 새벽에 일어나 연습을 가고 싶어 하였다.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지 약 일 년 정도 되어서 첫 경기를 출전했는데, 그것을 준비하면서 아이는 도전 정신을 배웠다. 팬더믹 동안 무대에 서본 경험이 없어서 무척 떨렸을 텐데, 실수를 하였지만 그래도 홀로 모든 관객들의 시선을 받으며, 링크장을 누비면서 짧은 퍼포먼스를 잘 마쳤다. 그 첫 대회에서 아이는 2등을 하였다.
운동을 하는 동안 아이는 즐거워하였고, 눈빛도 달라지고 성장하였다.
그런 아이 성장을 보면서 마흔즈도 행복하였다.
문제의 시작
그런데 엄마인 마흔즈가 점점 번아웃이 오기 시작하였다.
시원한 냉동고에서 쉬는 느낌으로 시작했던 운동인데,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한국은 코치님이 아이들을 데려다가 수업도 시키고 훈련도 한다고 들었다.
이곳은 그런데가 없다.
학교를 마치고 허겁지겁 링크장으로 운전대를 향하고, 들어서면서 무릎 꿇고 쭈그려 앉아 스케이트화부터 꽁꽁 조여매며 신겨 주어야 했다. 체력을 위해 도시락과 간식을 싸들고 다니며 차에서 혹은 링크장에서 틈틈이 먹였다. 코치들 수업 시간 조절을 위해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연습시간 스케줄을 예약, 협회에 뮤직 등록등 자잘한 매니저 업무가 많아졌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벤치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림의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수업을 마치면 아이는 또래 꼬맹이들이나 언니들과 밖에서 잠시 놀고 왔다. 그러고 집에 와서 씻으면 자야 할 시간이었다.
토요일에는 차를 달려 발레학원에 가야만 했다. 피겨스케이팅을 하려면 일반 발레는 기본이다.
러시안 할아버지 코치가 하는 피겨스케이트 발레도 배웠는데, 다리를 쫙쫙 찢어주고, 점프도, 턴도 스케이팅에 맞게 연습을 시켜주어 유용하였다. 아무래도 이런 수업들을 듣다 보면 자세와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였다. 아이스스케이트 수업이 끝나자마자 신발을 벗기고, 발레슈즈로 갈아 신기며 수업 시간에 맞춰 서둘러야 했다.
연습을 제대로 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했는데, 이는 아침잠이 많은 엄마에게 과했다.
겨우 6살 아이의 연습을 위해 내가 이 정도로 희생해야 하나.. 왜? 라며 질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 정도는 진짜 선수 생활의 맛보기일 뿐이었는데 엄마는 그렇게 조금씩 지쳐갔고, 결국 번아웃이 왔다.
또 다른 문제는, 당시 3학년이던 첫째가 집에 혼자 있었다. 물론 재택근무하던 아빠가 집에 있었지만, 아빠가 아이 숙제를 봐주거나 책을 같이 읽는 등의 시간을 내줄 수 없었기에 첫째 아이는 혼자 숙제를 하고 피아노 연습을 하였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 외 다른 활동은 하지 못했다. 아직 엄마손이 한창 가야 할 나이(당시 8살)였기에 마음이 쓰였다.
금전적 지출도 컸다. 아이 운동을 제대로 시킨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여야 하는데, 선배맘들은 청소년 선수들만 돼도 이미 집 한 채 값을 썼다며. 더구나 레벨이 올라갈수록 더 나은 코치를 찾아야 하는데, 그 레슨비는 정비례로 올라간다고 했다. 어떤 분은 한국에 가서 김연아 선수의 코치에게 아이 레슨을 시켰다.
수업뿐 아니라 연습하는 모든 시간들도 금전 지출과 연결되었다.
하루 링크장 사용료를 지불하고 수업 듣고 연습하고, 주차했던 2시간 동안 지출된 액수는 디즈니랜드 하루 입장료 가격이었으니 약간의 회의가 들기 시작하였다. 6살이면 디즈니랜드 가서 뛰어놀 나이인데.
올림픽 선수를 목표로 심각하게 하지 않더라도, 다른 스포츠에 비해 많은 지출이 따라야만 하는 운동이었다.
아이가 어려서 그만큼 연습시간을 잘 활용하지도 못했다. 어느 날은 거의 놀고만 나왔다.
연습시간도 충분히 잡기 힘들었다.
피겨스케이트는 일단 링크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땅 위에서 자주 탔지만, 링크장에서 연습만 못했다. 그런데 엘에이 지역에 아이스링크가 많지도 않고, 모든 곳이 바빴다. 특히 퍼블릭 시간에는 연습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퍼블릭 시간에 초보 틴에이저나 어른들이 쿵쿵 넘어지는데, 아이가 아무리 잘 타더라도 결국 6-7살 꼬맹이들이라 넘어지는 그들에게 깔리거나 차일까 봐 걱정되었다. 실로 틴에이저 그룹이 손을 잡고 와르르 넘어지는 바람에 지나가던 아이도 심하게 부딪힌 적이 있었다.
마지막 문제는 아이가 피겨의 꽃인 스핀을 주저하였다.
아이는 조금씩 높은 기술을 배워갈 때 힘들어했고, 특히 스핀을 어지러워서 연습하기 싫어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스핀을 뱅뱅 돌며 연습할 때 딸은 링크를 빠르게 달리거나 친구들과 놀기 바빴다.
링크장 밖에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연습하라고 눈치 주는 일 밖에 없었다. (어떤 엄마들은 밖에서 큰소리 지르며 혼내기도 한다.) 곁에서 지도를 해주고 싶었으나 나는 엉덩이 빼고 겨우 스케이트를 타는 수준이다. 그 프리스타일 이상 연습 시간에 나 같은 초보 입장이 허락도 안 되었고, 들어갔다면 사고가 날 수 있었다. 틴에이저 탑급 선수들이 굉장한 스피드로 연습을 하기 때문이었다.
답답해서 미셀콴이나 다른 미국 선수들의 행적을 뒤져보았다.
앞선 선수들을 본다면 도움이 될 거 같았다.
제대로 선수로서 운동을 시작한다면 어떤 길로 가야 할까. 혹은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결론은 미래 비전도 희미했다.
어떤 선수는 아빠가 하루 5-6시간씩 운전을 해서 훈련을 받고 왔다고 했다. 나중에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결국 올림픽 금메달은 인연이 못 되었다.
피겨스케이팅은 스폰서도 없었다.
스노보드나 스피드스케이팅과 달리 스폰서가 많지 않기에 사비로 모든 지출을 감당하여야 했다.
그만큼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해도 메달을 딴다는 보장이 없었다.
유명해져서 연예인 같은 레벨이 되어 광고도 찍고 방송도 하려면 김연아 선수처럼 월드챔피언, 금메달등을 따야 그나마 지난 시간 감당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메달이 없다고 실패한 인생은 절대 아니다.)
거기에 부상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있었다. 실로 캘리포니아 초등 1위를 차지했던 선수가 중학생이 되면서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선배맘으로부터 들었다.
어렵다.
아이가 좋다고 무조건 다 시킬 수 있는 입장이 안된다. 또한 엄마 수고가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골프, 테니스, 수영처럼 평생 아무 데서나 즐길 수 있는 레저스포츠라면 고민도 아니다.
내가 힘들다면 그만큼 아이의 실력을 체크하고 나도 모르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운동선수가 되려면 꾸준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데, 아직 아이가 어려 그러기엔 힘들었다. 더구나 굳이 엄격하게 아이를 훈련시켜야 하나..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요즘은 아이들이 잘해서, 9살 전에 악셀을 해야 한단다.
모든게 되지 않으면 이도저도 안 되는 시간들과 노력.
투자에 대한 분석을 해야만 했다. 또한 계속 배운다면 어느 정도 목표를 정해야 했다.
(모든 배움에서 목표를 정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무엇보다 첫째 아이는 방치되어 있었다.
가족의 행복을 희생하며 해야 할 운동인가..
아이가 좋아서만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첫 대회에서 아이는 긴장을 한 탓에 실수를 하고 2등을 하였다.
그 넓은 곳에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혼자 얼음판에서 쇼를 해야 했던 첫 경험.
당연히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쉬운 대목에서 실수를 했다. 아이가 긴장도 했지만, 그만큼 연습이 덜 되었던 거다.
엄마로서는 이 모든 것을 6살 아이가 감당했음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지만, 매니저의 입장에서 덜 된 연습을 강조하며 그 중요성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꾸준한 연습을 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게 운동을 하는 아이들이 받아가는 교훈이다.
마음이 힘들었다. 부모의 자리는 참 힘들다.
칭찬만 하며 기를 북돋워주고 싶은데, 현실도 가르쳐야하기에 따끔한 지적도 해 주어야 한다.
불과 6살 아이인데, 8살짜리 어린 언니까지 방치하며 앞으로 몇 년 더 운동해야 하나.
외동이었다면 이런 걱정은 없었을 거다. 아마도 여덟살이 된 지금도 피겨 스케이팅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이가 좋아하였으므로.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던 딸.
엄마가 결정을 해야만 했다.
결국
지. 못. 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접었다...
좋아하는 운동을 포기시키는 게 많이 속상했다.
그래도 팀소속이 되어 앞으로 몇 년 더 일주일에 15시간-20시간 이상 훈련을 한 후 포기를 하느니 차라리 지금이 나았다.
그런 선수 생활을 시작하면 친구들 생일파티나 플레이데이트는 포기해야 한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내 삶을 온전히 바쳐 아이를 운동선수로 기를 만큼의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첫째 아이는 엄마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살아야 하며, 부모가 아닌 다른 어린 자매를 희생시키는 것은 합당치 않는 거 같았다.
엄마의 단호함이 필요한 때였다.
재능도 있고, 여태껏 가장 행복해하고, 좋아하던 운동이었는데 그만두는 과정에서 아이가 많이 실망하였다.
아이에게 포기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았다.
'잠시 쉬자, 엄마가 너무 힘들어...'라며 아이를 다독였다.
'엄마가 스핀도 연습하고, 공연 연습도 더하라 했는데 매번 스노볼 만들고 놀았잖아,, 연습을 그만큼 안 했으니 당연히 실수하지 '라며 팩트도 제대로 알려주었다. 불과 6살에게.
엄마도 힘드니 아이에게 입바른 소리란 답시고 연습을 소홀히 하는 아이에게 짜증도 냈다.
삶에서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기 위해 가족 전체의 행복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았는데, 포기시켜야 함에 아이도 엄마도 속상했다.
엄마들은 항상 이런 비슷한 고민들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선배맘들은 내게 '단호함'을 강조하였나 보다.
재능이 있는 아들의 아이스하키나 야구를 중지시키는 선배맘을 보며 애가 좋아하고 잘하면 계속 시켜야지,,라고 했는데 그 마음 이제 충분히 알 거 같았다.
그렇게 아이는 7년 삶 중 총 2년여 넘는 시간동안 즐거운 일을 하면서 도전도 배우고, 그 즐거움을 그만둬야 하는 포기도 배웠다.
진심으로 원하면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오겠지.
스케이팅을 할 때 좋아해 하던 아이 생각에 엄마도 미련도 없지 않다.
그동안 이쁘게 잘했어...
피겨스케이팅을 그만둔 지 일 년 반. 아이는 통통하게 살도 올랐다.
여덟살은 스핀을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스핀이 피겨스케이팅을 그만둔 이유 중 하나였기에 어쩌면 싫어할지도 모른다.
라스베가스에서 언니와 사촌의 속도에 맞춰주다가 또 재빠르게 한 바퀴 돌고 오며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는 여덟살을 보니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득 들었다.
"다시 아이스스케이팅 하고 싶어? 아직도 스핀이 싫어? 아이스스케이팅 좋아?"
"...... 아니 괜찬아. 좋은것도 같고."
아이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였다. 마흔즈의 눈치를 보는건지, 혹은 엄마의 우유부단함을 유전 받았는지.
차라리 다행인건 올림픽 나갈래! 라며 빈말이라도 선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말을 들으면 그 열정에 엄마 마음이 또 흔들릴거 같다.
6-7살에 도전과 포기를 동시에 배운 막내딸.
이 경험으로 아이는 커가면서 앞으로 인생에 닥칠 도전과 포기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두게 될지. 나의 결정과 그 결정을 전하는 과정에서 여덟살 자존감에 얼마큼 영향을 줬을지 염려스럽다.
인생을 살다가, 필요할 때 아닌 건 일찌감치 잘라내야 하는 현명함도 필요하다며 나 스스로 위로를 하지만,
사실 아직도 속상하다.
여행가서 즐겁게 스케이팅을 하던 아이를 본 후 나도 모르게 이번에는 스피드 스케이트장을 계속 뒤져 보았다.
그 곳은 집에서 한 시간 거리. 교통체증을 계산하면 왕복 2-3시간.
아.. 참자.
마흔즈는 또다시 운전지옥에 빠지려 하지만, (엘에이에 사는 특성상 이미 운전을 많이 하고 있다.) 내심 여덟살이 다시 신나게 빙판을 쌩쌩 달리며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지킬과 하이드처럼 내 속은 여전히 싸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