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초등학교
지난 12월 15일 금요일, 여덟살 학교에서 스피릿 랠리 Spirit Rally를 하였다.
스피릿 랠리는 학교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모임을 가지는 날이다. 단어 느낌 그대로 학생들 단체로 교가도 함께 부르고, 상도 주고, 결기를 다지는 날이다.
한국으로 치면 전교생 조회 시간.
그런데 분위기는 한국과 무척 다르다.
마흔즈는 학부모 6년 차지만, 이번에 처음 스피릿 랠리를 참관하였다. 첫째도 첫째지만, 올해는 여덟살이 제작한 필름 (5분 분량의 동영상)이 학교, 학군에서 수상하였으므로, 축하하러 갔었다. 주로 상 받는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행사한다며 이멜이 오는데, 나는 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국은 조회 시간에 부모 참관을 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이메일을 받아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팬더믹 때는 물론 어느 부모도 학교 출입을 할 수 없었다.)
그날 오전 8시경에 학교 강당에서 첫째딸의 스펠링비 (미국에서 유명한 단어 철자 맞추기 대회) 대회에 참석 후 바로 연이어지는 스피릿 랠리에 참관하였다.
우선 조회대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학년별로 ‘디귿자’로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엉덩이 밑에 쿠션도 있었다.
그날은 아이들이 학교 마크가 찍힌 셔츠를 입고 오는 날인데, 그 또한 컬러, 셔츠 앞 로고 디자인이 다양하다. 어떤 아이들은 올해 신상을 입었고, 어떤 아이들은 몇 년 전 언니오빠 셔츠를 물려받아 입었으며, 한 해에 한두개 디자인이 나오기에 분명 학교 티셔츠는 맞지만 단일화는 볼 수가 없었다.
가끔은 함께 유니폼을 깔끔하게 차려입는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
식은 간단했다.
우선 학생회 그룹이 노란 스카프를 머리, 목에 두르고 앞에서 댄스를 하며 바람잡이를 하였고, 모임 지도를 하였다. 학교 심벌인 사자( 한 선생님께서 더운 날 인형 코스튬을 뒤집어쓰신 봉사를 하셨다.)가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인사도 하고 재롱도 부렸다.
학생들이 모두 자리 잡고 앉으면, 5, 6학년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교가와 학교 관련 곡을 두어 곡 불렀다. 연이어 시상식이 이어졌는데, 이전에 ’way to be’ 글에 작성했듯이 시상식에 대한 위엄은 전혀 없다. 교단에 올라가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전체 학생들 앞에서 이름을 주르륵 부르면 아이들은 달려 나가고, 교장이 아닌 담당자가 주변에 몰려든 시상자들에게 전단지 나눠주듯 아이들에게 상장을 나눠주었다. 허 참 허허.. 대신에 상부문에 따라 열쇠고리나 스티커등의 소소한 선물들이 따라오기에 아이들이 행복해했다.
청청패션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교단 중심을 지키던 키 큰 교장 선생님 연설은 아주 짧고 간단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면 신난 팝송이 스피커를 통해 우렁차게 나오고, 큰 비치볼을 여러 개 던지며, 전체 아이들이 함께 주고받으며 신나게 논다. 학교에는 버디 buddy 제도가 있어서, 이미 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조금씩 아는 관계로 서로 친근하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한 작은 아이가 교장 옆에 서 있었고, 교장의 직무를 이행했다. 그 아이는 아까 스펠링비 대회에서 대회 개막 발표를 했고, 마지막에 학생들에게 한 손으로 상장을 건네주던 1, 2학년 정도의 저학년 남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그날 고학년들의 중요한 대회에서 교장의 공식 업무를 행하였고, 스피릿랠리 내내 교단 위에서 교장 곁을 지키고 있었으며 가끔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도 하였다.
과연 저 아이는 누구일까.
그 아이는 바로 데이 오브 프레지던트 Day of President에 당첨된 아이였다.
미국은 정부가 주는 교육 자금 외에도 학군이나 학교 단위로 여러가지 활동을 하며 교육 자금을 기부받는다. 이런 기금 조성을 위한 활동 중 여덟살의 학교에서는 핼러윈 때 경매 행사를 한다. 많은 부모들이 여행상품, 경기 VIP 티켓, 장난감, 학년별로 테마 파티등을 올리고, 학교 측에서는 반별로 선물 바구니를 만들어 올리거나, 졸업식날 복잡한 주차를 피해 교장 선생님 주차장 사용권, 하루동안 도서관 사서가 되기 등의 이벤트들이 경매에 올라온다. 그중 경매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종목 중 하나가 데이 오브 프레지던트였다. 그것은 말 그대로 일일 교장이 되어 보는 거다. 경매에서 이긴 부모의 학생이 하루동안 교장 선생님과 함께 지내며, 공식 업무까지도 함께 하는 거다. 마흔즈도 그 경매에 입찰했으나 안타깝게도 여덟살을 일일교장 만들기에 실패했었다. (올해 경매가가 한국돈으로 거의 100만원으로 낙찰되었다.)
한참 커다란 비치볼을 치며 놀던 전교생은 각자 교실로 향하고 그날의 식은 끝이었다.
아까 울리던 팝송이 운동장이 비어질 때까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릴 때 교실로 퇴장하며 들었던 행진곡이 내 귀에 들려왔다.
마흔즈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조회 시간.
시간 맞춰 운동장으로 나가면 담임 선생님의 지도하에 일렬종대, 횡대 선을 따라 나란히 팔을 들어 맞추며 줄을 섰다. 조금만 비껴서도 담임의 교사봉이 직선으로 서라고 지시를 내렸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식이 진행되었고, 시작부터 ’ 주목‘이란 단어가 자주 들렸다.
전교 회장의 지휘아래 전교생이 애국가와 교가 합창을 하였다.
상장 수여식은 마치 국가 훈장을 받는 듯한 엄숙함이 감돌았다. 주로 ’ 위 학생은..‘으로 시작하였는데, 상장 내용을 교장 선생님 대신 다른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고 립싱크를 하듯 읽어 내려가셨다. 내용 읽기가 끝나면 교장 선생님은 그때서야 학생에게 상장을 내어주셨다.
상장 수여식이 끝나면 조회 시간의 가장 중요한 시간? 인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항상 상당히 길었다. 문어체를 주로 사용하시던 훈화 말씀은 초등학생들에게 와닿지 않았고, 오히려 지루하기만 하였다. 물론 좋은 말씀이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 긴 시간 딴짓을 하다가 담임 지적을 받는 아이도 있었고, 여름에는 아주 가끔 줄 서 있다가 쓰러지는 학생도 있었다. 담임은 급히 뛰어가 아이를 들쳐 업고 양호실로 향하였고, 그래도 훈화 말씀은 계속되었다. 지루함에 조회 시간 나가기 싫어서 꾀병 부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담임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조회가 끝나면 반별로 줄 맞춰 운동장에서 퇴장을 하였는데, 주로 씩씩하고 활기 있는 왈츠나 행진곡 메들리가 울려 퍼졌다. 미국에서 스피릿 랠리가 일년에 4번정도 (학군마다 다른 걸로 안다) 하는데 반해 라떼는 매주 했었던 기억이 있다. 비가 오면 교실에서 티브이로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었어야 했다.
그렇게 공식적인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12년 듣고 살아서 어쩌면 한국 학생들이 단체 모임에 익숙하고 바르게 자랐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 지금 내 아이들이 다니는 미국 학교처럼 프리 free 하게 단체 모임을 하기에 아이들이 학교를 더 행복하게 다니는 건 아닌가 싶고.
한국,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낀점은 어떤 교육이나 시스템에 정답이란 것은 없다는 거다. 모든 시스템이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같은 시스템이라도 아이들의 성격에 따라 모두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부모 성장 배경 또한 아이 교육에 크게 좌지우지한다.
어떤식이 나은지는 결국 부모의 결정이다.
본인이 몰라서 아이의 진로나 성적이 행여 누락될까 봐 부모들이 우왕좌왕, 불안감에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많이 시키기도 한다. 반면 부모 바램에 공부만 해서 서울대 졸업한 엄마는 본인이 힘들게 공부했고 그거에 질려버려 자녀들에게 공부 압박을 전혀 주지 않고, 가족 여행을 열심히 다니는 지인도 있다.
한국의 몇 년 앞선 선행 학습들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고, 우리 눈에는 ’ 공부라도 시키나,,‘라고 염려할 만큼 아카데믹해 보이지 않는 미국 교육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중요한 점은 아이들의 미래를 멀리 보는 것이라 생각된다.
나의 여덟살의 지금 꿈은 패션디자이너와 패션스쿨 경영이라고 한다. 어디서 그런 꿈을 가지게 된 지 나는 모르지만, 왠지 나빠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분명 앞으로 여러 번 바뀔테다. 마흔즈도 어릴 때는 로봇 태권브이 조종사가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 태권브이, 건담등이 실제로 존재하는 줄 알았다. 새삼 미디어의 중요성이 일깨워진다 ^^;) 그 조종사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란 것을 알고 어린 나이에 충격받았다. 그 후 항공우주 관련,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선생님, 인테리어 디자이너, 고고학자, 간호사등을 거처 어쩌다 보니 영화 속 그 로봇들을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다.
최근에 한국에서 과학자로 자라야 할 천재들이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며 한국 미래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세상은 그런 몇 명의 천재들이 이끌어 간다. 막말로 그런 천재 한두 명이 개발한 아이템들이 마이크로 소프트나 애플처럼 크게 되어 개인적인 부를 넘어 국가 위상과 수익을 올리는데, 지금 한국 똑똑한 아이들 대부분이 의사, 그것도 성형의가 되고 싶어 한다고 했다. 더구나 힘든 정형의는 피한다고 들었다. 물론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길 바라보지만, 혹여 그게 사실이라면 그 아이들이 진실로 원하는 일이길 기원한다.
반면 미국은 숙제도 많이 없고 전체적으로 압박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보니, 아이가 스스로 사고할 시간이 주어진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혼자서 만지작 거리고 공부도 찾아서 한다. 그래서인지 19살의 CEO들이 탄생하는데 그들은 주로 16살 때부터 이미 그 분야에서 놀고 있었고, 거기에 조금 더 정리를 해 사업으로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다. 미래의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될 아이들이 지금 더벅머리로 혼자 방에서 놀고 있을지도 모른다. 숙제에 떠밀리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사족이지만, 실제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하던 한 미국인 대학동기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오래된 중고 포르셰를 샀다. 그는 차를 거라지에 두고, 뜯고 붙이고 만지며 놀았다.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인터넷 서치를 하고, 재조립해서 시동도 걸어보며 마치 장난감처럼, 마치 임상실험 놀이처럼 그는 신중하지만 즐겁게 값비싼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틈틈이 우리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항상 뭐든지 조심스레 다루고, 컴퓨터 마더보드조차 학구적인 마음가짐으로 혹여 깨질까 조심스레 꺼내던 내 모습과 비교하면 그의 자유로운 탐구생활에 대한 자세가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이미 따가운 햇살을 가리며 줄을 반듯하게 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으로 자랐고, 그는 대충 열을 맞춰 바닥에 쿠션을 깔고 앉아 따가운 햇살을 즐기는 사람으로 자랐기에 우리들의 작품 결과는 달랐다.
물론 누가 더 나은 디자인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단 접근법이 다르다. 이쪽 분야도 수학계나 다른 분야처럼 천재적인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을 어느 레벨이상 따라갈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 평균적으로 점수가 높고 다 잘하는 건 우리나라 친구들이다.
( 미국내 중국인들의 타이거맘 교육열이나 아이들 실력이 상당히 좋다.하지만 인구분포에 따른 평균으로 따지면 한국 아이들이 창의력, 아카데믹 학습면에서 더 높다는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우기는걸지도 모르지만. )
아이 교육은 정답이 없다.
대충 이런 다름 정도만 파악하여도 내 아이들의 성향에 맞게 어떤 식으로 길러가야 할지 전체적인 윤곽은 보이는 듯하다.
문득 요즘 한국 초등학교 조회 시간이 궁금하다.
이제는 아이들이 앉아서 경청할 수 있을까, 조금은 줄밖에 나가도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일까, 신세대 교장 선생님들은 훈화 말씀을 짧고 강하게 해 주실까. *
마흔즈의 8090년대 한국 전교 조회 시간과 180도 다른 분위기의 2023년 여덟살의 미국 학교 전교 조회시간. 덕분에 마흔즈도 오래도록 잊고 있던 추억에 새삼 빠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팔소리 울리던 행진곡을 귓가에 전해 들으며. (실제는 최신 팝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 찾아보니 이제 초등학교 전교생 모임 조회시간은 없다고 한다. 대부분 TV로 한다는 글을 보았다.
원래 한국시간으로 화요일에 연재였으나 이번주에 동부에 오면서 시차와 일정에 업로드가 늦어졌습니다.
새해에는 더 연마해서 좋은 글 혹은 재미있는 글을 지어보고 싶은 마음을 가져봅니다.
글 읽어 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