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지아 할아버지댁

겨울방학

by Beverlymom


드디어 여덟살의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그 겨울방학은 두달반을 쉬는 여름방학과 달리 2주정도로 짧은 편이다. 연말과 연초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정도의 길이.

우선 12월 시작 직후부터 방학 전까지 마흔즈는 정신없이 달렸다. 여덟살도 11살 언니의 각종 행사에 따라다니며 함께 바쁘기만 했다. 와중에 학기말 시험도 치고, 연말 파티등 교내 행사가 많았다. 12월에는 아빠와 여덟살의 생일도 있었고, 올해는 몇 친구들과 슬립오버 생일 파티를 간단히 하였다. 그 외 첼로 리사이틀과 걸스카웃 미팅, 선생님들께 크리스마스 카드 적기등 숨 돌릴 겨를 없이 학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타운에서 하는 겨울 연례행사.

타운 내 공원에서 매년 12월에 열리는 행사로, 각 초등학교 합창단들이 와서 공연을 하고, 타운 내 퀸이나 산타가 방문한다. 아이들이 특히 즐거워하는 이유는 루돌프를 연상시키는 산타의 상징인 순록 두 마리가 방문을 하고, 눈이 내리지 않는 이 지역에 눈밭을 만들어 놓았기에, 뛰어놀 수 있기 때문이다. 크지도 않은 인공눈밭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열심히 놀고, 즐거워서 깔깔거린다. 어두워진 저녁이 되면 산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방문해 어린아이들은 산타 무릎에 앉아 인사하고, 선물 리스트를 공유하며 사진 촬영도 한다.


타운내 공원에서 연례 행사. 각 초등학교 합창단 공연, 순록과 눈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photy by 베버리 토리 (베리)


할아버지댁


방학이 시작되어도 친구들과의 연말 파티, 성당행사, 조부모님의 선물 쇼핑으로 시간을 보낸 후 짐을 싸서 새벽에 공항을 향했다. 크리스마스 시기라 공항들은 항상 바쁜데, 새벽 시간이라 조금 나았다. 공항에 TSA 줄은 거의 비어있어서 걱정했던 바와 달리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댁을 오랜만에 방문하는 여덟살은 무척 들떠 있었다.

아이는 선생님들께 자랑도 하였다. 그중 몇 선생님들은 월드 오브 코카콜라를 방문했던 경험을 공유하면서 아이를 더 즐겁게 만들어 주셨다.


할아버지가 사시는 곳은 죠지아, 애틀란타다.

여덟살의 아빠가 낳고 자란 곳은 애틀란타가 아니다. 뉴욕이다. 그래서 그곳이 고향은 아니다. 은퇴하신 친구분들이 많이 이주한 곳이 애틀란타 지역인데, 뉴욕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새집을 살 수 있고, 물가도 싸며 세금도 훨 저렴하다. 그래서 은퇴하신 분들께 그 지역이 인기였고, 여덟살의 할아버지도 은퇴 후 친구분들이 많은 그리로 이사를 하셨다. (요즘엔 젊은 인구도 많이 모여서 이전보다는 물가가 오르긴 하였다.)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할머니가 직접 만드신 김치와 양념갈비, 각종 부침개들을 먹을 수 있고, 함께 방문하기로 했던 다른 지역에 사는 사촌을 만나 신나게 놀 수도 있다. 비행 내내 그리고 할아버지 댁에서 사촌과 함께 아이패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허락이 주어지고, 더불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생각에 여덟살은 더 신이 났다. 코로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였다.


시댁을 가면 여덟살이 있기에 마흔즈는 아직 조금 든든? 하다. 모범생 스타일의 첫째딸과 고모네 외동딸, 두 녀석은 응석을 부리거나 애교를 부릴 줄 모른다. 나이도 프리틴 pre teen 이 되어가기에 더 이상 까불거나 장난도 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으면 그 마음을 모르는 두 녀석은 괜찮다고 하기만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에워싸고 다니는 담배내음이 불편하여 거리를 둔다.

반면 여덟살은 아직 베이비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순수한 웃음을 지으며 할아버지에게 먼저 다가가 안기도 하고, 응석도 부리며 좋아하는 것을 표현한다. 여덟살이 되니 '담배 냄새 싫다'라고 할아버지 면전에서 대놓고 말은 안 하고, 할아버지 마음에 상처받을까 혼자 조심스레 숨을 고르기도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막내의 배려와 애교를 이뻐하시고, 마흔즈 또한 셋 중 한 녀석이라도 아직은 어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 주어 다행이기도 하다. (여덟살도 틴에이져가 되면 애교가 한층 줄어들지도 모른다.ㅜㅜ)


할아버지 사랑, 게(스노우크랩)


다리들이 늘씬하게 쭉 뻗은 스노우크랩을 커다란 사이즈로 한박스 사 놓으셨다. 온 가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고모부가 해수산물 sea food을 잘 먹지 않는데 어쩐일인가. 나중에 들어보니, 이전 어느날, 할아버지와 여덟살이 통화를 하였단다.


"할아버지, 오늘(할머니 생일날) 뭐 먹었어요?"


"우린 크랩(게) 먹었지~ 배불리 가득 먹었다~"


" 아! I really love crab too!! 맛있겠어요! 나도 진짜 좋아하는데! "


여덟살의 반응을 보며, 할아버지는 다음에 오면 오늘 먹었던 게를 사서 삶아주겠노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그는 이번에 막내 손녀딸이 좋아한다는 게를 한 박스 가득 사놓으셨던 거다. 물론 여덟살은 그 통화 기억을 잘 못했고, 할아버지에게 꼭 사달라고 약속을 한 적도 없었다. 그냥 할아버지는 손녀가 좋아하는 음식 중 특별한 것을 먹이고 싶었던 마음이셨다. 큰 솥에 세 번을 쪘다. 긴 다리에서는 살이 쭉쭉 빠져나왔고 여덟살은 배불리 게살을 먹었다.


할아버지댁을 가면 함께 식사를 하고, 공원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할머니와 쇼핑을 한다. 가끔 할머니와 꽁냥꽁냥 바느질을 하며 귀여운 천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할아버지 안마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시원한 마사지를 받기도 하며 빈둥되었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심심하면 숨바꼭질을 한다.


지금은 추워서 할아버지댁 뒷마당 텃밭에 있는 과일나무는 옷을 입고 있지만, 여름에는 그 곳에서 야채도 구경했고 과일도 따서 먹었다. 지금은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집 옆쪽, 비닐로 바람막이가 쳐져있는 작은 텃밭에 상추는 잘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여덟살과 아이들은 진분홍색 한국산 작은 플라스틱 소쿠리를 들고나가 상추를 한장한장 따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그 샐러드는 고모부가 구워준 고기와 환상의 궁합이었다.


어두워지면, 뒤마당에 불을 피워 꼬챙이에 꽂은 마시멜로를 구웠다. 잘 익어진 마시멜로는 비스킷에 초콜릿과 넣어 스모어 S'more를 만들어 먹었다. 여덟살은 가끔 꼬챙이 그대로 입에 가져다가 마시멜로를 날름 먹어대기도 했다. 다 먹고 난 아이들의 입술 주변은 온통 하얀 마시멜로 흔적들 투성이었고, 손가락은 끈적거렸다.

그래도 마냥 행복했다.


이런 일상같은 여행시간을 할아버지댁에 가면 가질 수 있다.

엄마의 잔소리도 없고, 어른들 간섭도 거의 없이 온전히 빈둥될 수 있는 시간.

아이들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한 건 마흔즈도 안다. 하지만, 학기 중에 아이들이 빈둥 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다. 학교를 다니니 숙제가 있고, 먹고, 읽고, 배우며 커가야 하는 시기라 하루에 가질 수 있는 자유 시간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할아버지댁에 와서 아이들이 빈둥되듯 노는 모습을 보면 나도 마음이 편하다.

그들은 빈둥거리는 듯 하지만, 게으르진 않다. 계속 바쁜데, 보는 재미가 있다.

일어나서부터 잠이 들 때까지 종일 스스로 할 일들을 만들어가며 아이들 셋이서 일주일을 느슨한 듯 즐겁게 살아간다.


할아버지댁 뒤마당에서 빈둥, 동네 공원 놀이터에서 놀기 Photo by 베버리 토리 (베리)




아쿠아리움(수족관)과 코카콜라


아쿠아리움 Georgia Aquarium

할아버지댁에 오면 아이들도 특별히 어디론가 놀러 가자고 보채지 않는다. 집에 있으려고만 한다. 물론 놀이터에 데려다 놓으면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놀다가 바위 위에 드러눕기도 하며 두 시간은 기본으로 보낸다.


그래도 4-5년 전에 다녔던 곳을 잊는 여덟살이니 만큼 이번엔 아쿠아리움을 다시 데려가기로 했다.


애틀란타에는 세계에서 4번째 큰 수족관이 있다. 한때는 1위였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과 두바이에 밀린 듯하다. 한줄기 빛을 받으며 헤엄쳐 다니던 큰 가오리와 거대한 고래가 인상적이었던 곳.

여름에 왔었던 전에 비해 사람이 무척 붐볐다. 아마도 크리스마스 주간에 인파가 몰렸던 데다 비까지 와서 모두 실내활동을 할 수 있는 수족관으로 온 듯해 보였다. (사실 우리도 비가 오는 바람에 골프가 캔슬되어 일정을 바꾼 터였다.)

죠지아 아쿠아리움 Photo by Beverly Tory


이곳에는 흰색 악어, 다양한 상어종류와 고래도 있고, 수족관 구성도 잘 되어 있다. 다양한 체험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동물원이나 수족관, 박물관을 잘 데려가는 편인데, 이번은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해 꼼꼼히 챙겨보지 못했음이 조금 아쉬웠지만 여덟살은 그래도 즐거워했다.


월드 오브 코카콜라 World of Coca-cola

수족관 옆 건물은 월드 오브 코카콜라 World of Coca-cola 가 있다. 코카콜라 본사가 애틀란타에서 시작했는데, 그 역사와 변천사, 그리고 오래된 코카콜라 관련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레시피가 금고에 있다며 그 앞에서 촬영도 할 수 있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간다면 알람도 울린다. 시즌이니 만큼 실내외 데코레이션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다양하게 디자인된 콜라병을 만져보기도 하고, 회사 역사와 레시피관련 글을 읽기도 하였다.

크리스마스 테마로 장식된 코카콜라 실내외, 레서피 금고 Photo by Beverly Tory


월드 오브 코카콜라의 또 다른 재미는 샘플 맛보기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나라마다 다른 맛을 가진 음료들이 한 곳에 있었는데, 예를 들면 같은 환타라도 나라마다 맛이 달랐다. 어떤 나라의 환타는 그 나라 국민이 좋아하는 향과 쓴맛등 아주 독특하기도 해서 한 모금을 마시고 깜짝 놀랐다. 아직 소다를 잘 마시지 않는 여덟살도 컵을 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한입씩 맛을 보았다. 학교 선생님 말씀대로 바닥이 찍찍거린다며 아이는 웃었다.

지나치지 않고는 나올 수 없게 만들어둔 기프트샵. 구경하고픈게 많았지만, 시간상 충분히 보지 못하고 아이는 선생님에게 드릴 작은 선물들을 골랐다. 콜라맛이 나는 민트, 작은 오너먼트등. 마흔즈도 그 날 기념을 위해 북극곰이 썰매를 타고 콜라를 마시는 오너먼트를 하나 골랐다. 그 귀여운 오너먼트 바닥에 올해 년도를 적어 집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어두었다.


한국어가 적힌 코카콜라 간판과 샘플맛보기 Photo by 베버리 토리



여덟살은 커서 할아버지댁에 대한 기억으로 수족관이나 코카콜라를 더 빨리 떠오를지 모른다.

마흔즈 또한 유치원 때 견학 갔었던 코카콜라 회사 투어나 병아리 공장을 아직도 장면장면 기억한다.

모든게 신기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마흔즈의 어릴 적 외가댁 기억은 집 뒤마당 감이 가득했던 감나무와 연못, 공작새, 찔레꽃밭등이 있다.

누구나 나만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지댁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조부모님은 조건없이 내어주시는 분들이다.

아이가 그런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맑고 넓은 하늘처럼 순수하게 손녀딸들을 위해 노력하시는 조부모님의 사랑을. 손주 교육에 대한 책임과 잔소리등은 그들 부모가 할일이기에 조부모님은 온전히 좋은 이야기만 해주시고 이뻐만 해주신다.

좋아하는 그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도 몰라서 못 해 주신다. 요구 사항이 없는 아이들인데, 어쩌다 한 아이가 좋아한다는 음식이라며 흘려보낸 한마디에 할아버지는 그 음식을 박스채 사서 손녀를 기다렸고, 가족들을 해 먹이셨다.


할아버지댁에서 보았던 푸른 자연과 그에 걸맞은 여유로운 시간과 편안함. 그런 점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살다가 답답하면 그 할아버지댁을 가끔 상상하며 숨 쉴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덟살의 할아버지댁 추억은 이렇게 또 한 페이지 새겨 넣어진 듯 하다.

스노우크랩, 파란하늘과 초록 나무, 놀이터, 상추, 안마의자, 톡쏘는 맛없는 외국 소다 그리고 거대한 고래.



*여행 에세이가 아닌 관계로 관광지의 설명은 조금만 언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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