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 to B.

참 잘했어요!

by Beverlymom


미국은 각 주, 각 학군, 학교마다 시스템이 조금씩 다르다.

전체 공립들의 큰 골격들은 비슷하나 각 주와, 학군마다 교과서와 세세한 교육 과정등의 방침이 각각 다르다.

예를들면, 공립학교 학년마다 배우는 과정이 비슷한데, 4학년때는 본인이 사는 주 state를 배우고, 5학년때는 미국 America 전체를 배운다. 그래서 미국 국립공원들은 4-5학년 학생들이 있다면 입장료나 주차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프리패스를 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직접 그랜드캐년, 자이언 캐년등에 가서 경험하며 배우기를 권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주 State에 있는 공립학교라도 각 학군마다 교과서가 다르고, 수업 진도도 다르다. 중학교 수학 과정도 전체 맥락은 잡혀있지만 그 안에서 레벨테스트등의 시험도 다르고, 고등학교의 AP 교과목 수도 학교마다 다르다.


미국은 덩치가 크고 다양한 민족이 사는 민주 국가이기에, 주정부 조차 중앙집권이 쉽지 않은 나라다. 그만큼 너어~무 다양하다. 또한 한국이나 아시아에 비하면 초중등 학생을 아카데믹하게 공부를 많이 시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한국만큼 학교에서 주는 공부관련 상장이 많지 않다.

상장이 있어도 주로 얇은 일반 종이에 certificate of award라 적혀있다. 어떤 상장은 마치 전단지처럼 컬러풀하게 프린트된 상장도 있다. 그 종이 상장은 무게감도 없고 크게 가치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상장은 흰색 A4 사이즈 두꺼운 종이에 가장자리는 테두리로 장식되어 있다. 가끔 금박 테두리도 있다. 그 테두리 안에 주로 궁서체로 상장 내용이 적혀있다. 오른쪽 밑은 교장선생님의 직인도장이 떡하니 사인 위에 찍혀있고, 가끔 씰이 붙어있기도 하다. 그 직인과 씰은 두꺼운 종이에 위엄과 존재의 의미를 얹어준다. 상을 받은 아이는 마치 공인된 모범생이 된듯하고, 최우수 학생이 된 듯 하단 말이지.


미국 초등 교내에서 받는 상장에는 한국 만큼의 위엄이나 무게가 없다.

그 종이를 받음으로써 우월감을 내비치지도 않고, 그런 상장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전교생이 부러워할 만큼의 그 어떤 위력도 상장이라는 종이에 없다. (한국 어머니들중 가끔 의미를 크게 두는 분을 보긴했다.)

대부분의 미국 부모들은 상장들을 자랑스럽게 액자에 걸어놓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앞다투어 갖고 싶어 하는 종이 상장은 없다. 큰 대회에 나가서 받는, 위엄을 가진 상은 트로피나 메달로 준다.

(종이 상장을 하찮게 여긴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종이로 받는 상장은 주로 작은 선물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상장을 받고 수여받은 아이들만이 모여 도서관이나 카페테리아에 피자 파티를 하기도 한다. 이를 리셉션이라 부른다. 대회나 경기후 참여자들끼리 하는 쫑파티라 해야하나.


상장과 함께 받는 선물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대회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인형, 장난감, 대회 주체측 관련 포스터들이나 음식점 기프트카드 혹은 할인쿠폰 등이다.

내 아이들은 종이상장은 보는 둥 마는 둥 던져두고, 그때 함께 받은 선물을 귀하게 여긴다. 대부분 학교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올라프 인형처럼 생긴 핸드백을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 (엄마눈에는 싸구려 인형 핸드백이었다.), 일 년 동안 사용하지 않아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상 받은 거라며 나를 말렸다.




Way to B


상장 모습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여덟살이 다니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신나게 챙기는 파란색 작은 종이가 있다. 일종의 상이다.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선생님이나 스텝을 도와 학급에 도움이 되었거나, 힘든 친구를 돕는 등 착한 행위를 했거나 혹은 학교나 학급을 위해 기여를 할 때 그것을 본 선생님이나 스텝이 Way to B 상을 준다.

한국으로 치면 모범상이라 해야 하나.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하는 상이다.

그 파란 종이를 선생님들이 마구 남발 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일명, 학교 문제아들의 아주 작은 선행에도 칭찬을 하면서 가끔 파란종이를 준다. 선생님들은 그렇게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선행과 자존감을 이끌어내려 노력한다. 성적과 개근, 부모 정치와 무관하게.

Way to B를 받으면 학교 사무실에 이름이 들어가고, 때가 되면 시기마다 로터리(뽑기)로 몇 명을 뽑는다. 뽑힌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지역신문이나 학교 웹사이트에 게재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파란 종이에는 항상 상품권이 스테이플즈로 박혀 함께 따라왔다.


매해 지역 레스토랑, 피자집 혹은 빵집등이 기부를 하여, Way to b에는 음식 상품권이 달려온다.

그래서 딸들 덕분에 여러번 밥을 얻어먹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사용 못하고 일 년 유효기간을 훌쩍 넘긴 적이 여러 번이었다.)


학부모가 되고 처음에 음식 상품권을 보았을 때 슬쩍 웃음이 나왔었다. 그 웃음은 쓴웃음도 있었고, 웃겨서 나온 웃음이기도 했다.


처음 받아왔을때 쓴웃음이었던 이유는 미국은 역시 자본주의 사회. 상장과 함께 장난감과 음식 상품권이 달려 나와서 물질만능주의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영업을 하는 거냐.

아이들이 본인의 능력으로 받은 뿌듯한 상장이라는 본질적인 의미보다 장난감이라는 물질에 더 관심이 집중될 수 있다. 필요하지 않은 장난감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갖고 싶어서 참여를 하게 만드는 일은 아닌지 의심했다. 본인의 성취감보다 물질에 집중이 되고, 상을 받지 않은 다른 아이들에게 그 물질이 동기부여가 될까봐 못마땅하였다. 상품권 또한 장사치들의 마케팅이라고 여겼다.


한편으로는 어린 초등학생들인데 달랑 종이 한 장보다 귀여운 장난감, 맛난 음식을 주는 상품이 있다는게 좀 웃겼고, 좋은 생각 같았다. 달달한 사탕 하나 달려주는 느낌? 여덟살 덕에 가족이 레스토랑을 가서 함께 밥을 먹으며 아이를 칭찬하고 대견스러워하고, 아이는 더불어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받은 상장덕에 가족이 화목하게 외식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상으로 받은 상품권으로 밥을 먹지만, 몇 가지 더 주문을 함으로써 그 가게 매상도 올려주고, 결국 서로 win-win 하는 구조였다. 어차피 미국 기업들은 기부를 많이 할수록 세금도 공제되기에, 분명 그 레스토랑들도 지역 학교에 기부하는 일이 업소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또한 그게 광고 효과도 있기에 좋은 마케팅이기도 하다. (위에서는 장사치들의 마케팅이라고 했지만...)

상장을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더불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좋은 추억이 되었다.

그런 시간과 눈앞에 상품으로 받은 장난감을 보면서 칭찬을 받고, 아이 자존감은 올라가고, 다음에 또 받고 싶은 성취동기도 된다. 그래서 지역 레스토랑 상품권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만약 한국 초등학교 옆 단골 분식점이나 햄버거 가게에서 저런 상품권이 주어지는걸 상상해보면 어떨까.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기여를 하고 친구들을 도우려 하지 않을까. 처음 의도는 떡볶기, 튀김만두를 먹기 위해서겠지만, 그래도 어린 아이들이 어려운 친구를 돕고, 내 커뮤니티를 위해 기여를 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베이지 않을까 싶다. 도덕책을 읽으며 '어려운 친구를 도와라'는 추상적인 교육보다, 어쩌면 조금 더 자발적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이자 재미일지도 모른다.


한끝 차이로 내 눈에는 그 상품권이 장점으로도 보이고 단점으로도 보인다.

한국에서 자란 나는 아이 상장과 상품만 가지고도 두 나라 간의 문화차이에 대해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국과 다른 모습으로 미국학교는 아이들을 칭찬한다.



칭찬에 대한 이야기

전형적인 한국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는 칭찬을 많이 받지 못했다.

두 발 자전거를 혼자 타게 된 날도, 과학 그리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날도 박수 가득 혹은 칭찬 가득 받아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자란 2세인 남편도 보수적인 한국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에 백인들처럼 달콤한 칭찬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잘하는게 당연한 거고, 못한다면 꾸중을 듣는거 처럼 여겨졌다.


물론 이제 나는 안다. 말로는 칭찬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부모님들은 무척 대견했을 것을.

하지만 당시는 몰랐다.

나의 경우는 위로 언니, 오빠가 있기에 잘해 봤자 그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 장남인 남편도 부모의 의젓하고 자랑스러운 장남이라는 무게가 더 컸고, 진심 어린 응원의 함박웃음을 칭찬으로 자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자라온 부부가 지금 아이들에게 노력은 하지만, 우리 또한 아이가 원하는 만큼 칭찬을 못해주고 있는 거 같다. 과거 나에 비하면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엄청 칭찬하며 자존감을 올려주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거 같다.


얼마 전 여덟살이 수학 시험지를 슬그머니 감추려 했다.

첫째가 엄마에게 알려주면서 알게 된 거였다. 시험 점수가 좋지 않았다. 시험지를 보니 말도 안 되는 아주 쉬운 문제를 틀렸다. 에휴.. 또 딴생각을 했구먼.. 여덟살은 성격이 급해서 대충 하다가 아는 것도 틀릴 때가 있고, 집중을 잘하다가 한순간 가끔 딴 세상을 다녀온다.


그런데 왜 엄마에게 시험지를 숨기려 했지?

실수도 할 수 있는 초3인데 왜 숨겼을까.

왜 틀렸는지 엄마와 원인 분석을 해야 다음에 발전하고, 그런 습관을 들일 학년인데.

나는 여덟살은 마냥 귀여워만 하고 혼낸 적이 거의 없다. 혼이 날 만큼 엄마를 화나게 만든 적도 없다.

막내라 눈치가 있어서 그런지 엄마의 버튼을 눌린 적이 없어서, 혼날일도 없었던 거다.

당연히 시험을 못 쳐서 혼났던 적도 없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었다.


" 시험지 왜 그냥 파일통에 넣었어? "


아이는 말이 없었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무서웠어?"


고개를 끄덕였다. 엥? 혼을 낸 적 없는데 왜 내가 무섭지..?

기분이 이상해서 다시 물었다.


"엄마가 칭찬을 많이 해, 아님 혼을 많이 내? "


내가 꾸중을 더 많이 한단다. 왓?!! 말 그대로 whaaaaaaat?!!!

이건 또 무슨 소리!


성적 때문에 꾸중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첫째는 첫아이라 내가 몰랐다. 첫째 어릴 때 아이 고집 때문에, 혹은 내 호르몬 불안정으로 아이에게 화가 간 적은 있었다. 사실 그리 혼낼 일도 아니었는데. 첫째 아이를 꾸중인지 내 화인지,, 복합적인 감정 분출을 어린 아이에게 한 후 나 스스로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고, 그래서 막내에게는 화를 낸 적은 없었다.

그런데 혼나는 첫째를 보며 동생들은 마치 본인이 혼났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암만 생각해도 시험지 때문에 언니가 혼난적은 없었다.


엄마에게 꾸중을 많이 듣지 않고 자랐던 여덟살은 오히려 엄마가 조금이라도 심각해지면 금세 기가 죽었다.

별일 아닌 일에도 고집을 부리다가 엄마 버튼을 눌러서 가끔 혼났던 첫째는 오히려 자존감이 높은데 말이다. 왜 그럴까.


우선 첫째 아이는 엄마인 나와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진거 같다.

불리불안이 생기던 시절에 아이와의 관계 조절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항상 아이곁에서 함께 뛰어놀다가 커가면서 나는 조금씩 뒤로 물러나 아이를 지켜봐주며 보듬어 주었다. 아이는 엄마가 항상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래서 첫째는 그렇게 혼나도 엄마를 믿고, 엄마 진심을 아는듯 하다. 또한 나와 선생님들이 조금씩 쌓아 올려줬던 아이의 자존감도 잘 형성되고 있는 듯 하다.

반면 둘째, 여덟살은...

둘째는 보모와 함께 지낸 시간도 많았고, 처음부터 엄마를 온전히 가져본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 잘 보여야 엄마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듯 하다. 그게 잘 되지 않았을때 첫째에 비해 훨씬 더 기가 죽는거다. 그래서 의미없는 내 표정에서 아이는 시무룩해 지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또 언니를 보며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져간듯 하다.

이래서 두 아이가 힘든거 같다. 세명 이상이면 내 경험상, 이런 긴장감도는 두 형제, 자매간의 사이보다는 나았던거 같다. 더구나 두 아이가 같은 성별이라 특히 더 서로 비교 한다. 그래서 엄마의 공부가 필요하다.


칭찬에 조금 더 포커스를 하며 아이와 대화를 계속 해 보았고, 그때 나름대로 충분히 한다고 생각했던 내 칭찬이 아이에게 전달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야~ 너 칭찬 얼마나 많이 듣고 있었는데. 우리 딸 칭찬받을 일 얼마나 많았는데.'

그건 정말이었다.

그래서 엄마만의 칭찬 방법들을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예를 들면, 엄마가 '대박!"이라고 크게 웃으며 말 할 때, 그 뜻은 장한딸, 참 잘했어란 뜻이 깔려있었다고 일러주었다. 엄마가 말하는 대박이란 단어가 칭찬 compliment을 의미하는 단어 중 하나라고.

또한 여덟살이 공을 넣거나, 퀴즈를 맞혔을 때 등등 엄마가 행하던 하이파이브는 행동으로 하는 칭찬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고보니, 첫째 아이 어릴때는 이 모든걸 설명해 주었지만 둘째는 여태 몰랐었던거다.

우리 사이에 주고받는 칭찬 사인을 설명하고, 여덟살에게 '이제 엄마가 문장으로도 칭찬 많이 해줄게'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렇게 서로가 대화를 하면서 알아가고 풀어가는 나이가 되고 있음에 다행이기도 하고, 나의 부족함에 반성도 하였다.

나름 내 부모세대와 달리 아이들에게 칭찬과 대화로 다가가려 했지만 내게 쉽지 않았나 보다.

대게 칭찬을 3개 하고 지적을 1개 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그래서 꾸중할 일이 있을 때도 너는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데 요거 하나만 이렇게 고치면 더 좋을 거 같다고 이야기해 주란다. 솔직히 나에겐 익숙치 않은 어법으로, 조금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여덟살이 되니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알고, 사랑하는 엄마에게 미워 보이고 싶지 않아 숨길 줄도 알며, 언니가 혼났던 것을 본 후 그 간접경험을 마치 본인의 것으로 생각하는 단순함에 걱정도 되고 웃기기도 했다.

숨길 필요 없어. 숨기면 엄마가 널 못 도와줘. 그럼 너 손해일텐데?

마~~ 아니 컸다 여덟살.

여덟살은 엄마를 힐끗 *째려보며 배시시 웃는다.



* 째려본 이유는 여덟살이 "많이 컷다"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평생 엄마한테 귀여움, 이쁨 받고 싶어서 안크고 싶다는 여덟살 막내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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