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왼쪽귀에 피가 날 거 같아

보고 있어도 봐주길 바라는 여덟살

by Beverlymom


"아가, 엄마 귀에 피가 날 거 같아. 살살 말하면 안 되겠니.

엄마 왼쪽귀만 안 들리면 너 목소리때문인 줄 알아~"


먹먹하고 고막 안쪽은 찌릿찌릿해진 왼쪽귀를 문지르며 반농담을 하였다.

처음에는 한국말 이해를 못하고 정말 내 귀에 피가 나는지 알고 여덟살이 깜짝 놀랐다. 어디어디? 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귀를 잡고 들여다보았다. "아야 더 아파. 살살잡아!" 왼쪽귀의 수난일이었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투덜거리면, 아이는 찡긋 웃고는 목소리를 낮춘다.


식탁에서 딸은 직각으로 내 왼편 자리에 있다.

그 이유는 아기 때부터 편히 밥을 챙겨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앉는게 이미 오랫동안 버릇이 되었고, 아기는 여덟살이 되어 앉은키도 커졌다. 그러다보니 내 왼쪽귀는 항상 아이 얼굴과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덟살은 조곤조곤 이야기해도 될 일을, 사자후 마냥 목청껏 이야기할 때가 부지기수다.

그래서인지 내 두 귀는 매일 노동에 시달렸고, 특히 식탁에서 음공을 펼치면 내 왼쪽 귀는 더 먹먹하였다.

이 아이를 무림으로 보내 무공을 익히게 해야하나.


왜일까..


첫째와 내가 이야기를 할 때면 어디선가 나타나 언니 목소리와 겹치든 말든 힘껏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막내딸. 예의가 아님을 알지만, 나는 여덟살에게 핀잔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가 목소리 살살.' 혹은 '오디오 겹치지 말자.'

정도로 이야기하며, 위급상황이 아니라면 일단 대화 순서를 기다리라고 한다.

첫째였다면 엄히 가르쳤을 나인데, 둘째에게는 나긋나긋하기에 곁에 열한살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귀가 먹먹할 만큼 여덟살은 왜 그리 목청껏 이야기할까?


좀 더 어릴 때는 혹여 귀가 잘 안 들리나 싶어 소아과에서 청각검사도 하였다. 다행히 정상이었다.


솔직히 제대로 소리를 내지른다면 첫째딸이 훨씬 크다.

첫째가 태어나던 순간, 감동받아야 할 시점에 쩌렁쩌렁 울리는 아기 소리에 놀라 '아기 울음소리가 이렇게 큰가..'라는 생각을 먼저 하였다. 아기 울음소리에 귀를 막고 병실을 출입 하던 간호사들도 있었다. 뮤지컬을 할 때 노래를 부르면 멀리 크게 울리는 타고난 목소리지만, 일상생활에서 목소리는 작게 조곤조곤 말한다.

그런 첫째는 귀도 예민하다.


둘째, 여덟살은 원래 목소리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사자후를 내는 이유는 언니에게 가는 엄마의 관심을 본인에게 돌리려 하기 위해서다.

'날 봐요, 나부터 보세요'라고 내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래서 매너가 아님에도 핀잔을 주지 않으려 한다.


여덟살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나눠야 할 두살 반 많은 경쟁자가 이미 있었다.

첫째들처럼 온전히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해 본 적 없는 동생들의 인생.

물론 첫째들도 불만은 많다. 원하던 동생이 태어났는데,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동생으로 다 가네? 그래서 동생을 미워하다가도 챙기고, 챙기고 이뻐하다가도 싸우고 그런다.


차라리 형제자매가 세네명 이상이라면 경쟁자가 여럿이다. 그 중 누군가가 기선 제압하고, 나머지들은 혹 패배감을 느꼈더라도 동지가 있어서 서럽지는 않다.

그런데 두 형제/자매 간은 다르다. 경쟁자는 단 한명.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언니를 이길 수 있을거 같은데, 막상 해보면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누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둘째 스스로 본인은 패자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언니가 피아노를 치는 걸 보며 따라 배우고 싶고, 부모를 포함 친지들의 관심을 받는 언니를 보며 그녀보다 더 잘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관심을 받고 박수를 받는 언니가 유아시절부터 부러웠던 게다. 그런데 막상 피아노를 시작해 보니 어렵고, 2년 먼저 일찍 시작했고 열심히 연습하는 언니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때 불과 6살이었는데, 아이는 스스로 본인이 Loser (패배자)라고 하며 울었다. 나는 당시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나름 자존감을 키워주려 노력하며 살고 있었는데, 아이는 스스로 언니와 비교하며 본인 자존감을 깎고 있었던 거였다. 아이와 긴 대화를 하며 생각의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였다. 어차피 두 자매 간에 경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평생 갈 거다.

그 해 피아노 대회도 혼자 출전하여 상을 받게 하는 등 자신감을 쌓게 해주려 노력하였다. 여덟살이 되어, 피아노 선생님의 사정으로 떠나가실 때 자연스럽게 첼로로 옮겨갔다.


다시 목소리 이야기로 돌아가서,

언니와 엄마의 다정한 대화를 큰 목소리로 끼어들거나,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는 일은 나이가 올라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나 또한 충분히 아이를 이해시키려 여러번 타일러야 했다.


"여덟살아, 엄마는 네가 옹알이 할 때부터 항상 우선순위로 네 말에 귀를 기울였어. 왜냐하면 너무 어렸고, 엄마가 언제라도 귀담아 들어줘야 네가 말을 더 즐겁게 할테니깐. 그때는 언니나 아빠에게 이미 양해를 구했던 거야.

그런데 너도 이제 여덟살이 되고, 기다릴 줄도 알잖아. 엄마가 대화를 할 때 급한 일로 끊어야 한다면, 항상 '익스큐즈미'하며 상대에게 양해를 구한 후 네 이야기를 하는 거야.

당장 급한 일이 아니라면, 우선 하던 대화를 기다렸다가 끝난 후에 니 이야기를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네가 대화하는 걸 끊으면 너도 기분이 안 좋겠지?"


선을 훅훅 넘는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경우, 그 교통정리는 어느정도의 아웅다웅 티격태격 징징 훌쩍,,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더 어려워지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씩 올라간다.




보수적인 우리집에서 그렇게 언니나 오빠말을 끊고 내 이야기를 박박 우기듯 했었다면 굉장히 혼 났을거다.

각각 세살 차이지만, 언니에게 대들거나 오빠한테 따지지 못했다. 우리집은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 그들에게 설득을 하려는 거 조차도 마치 반론이나 따지는 일로 간주되어 반대 의견조차 내는 일이 쉽지 않았고, 막내인 내 의견은 거의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내 목소리와 의견은 갈수록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그냥 따라가는게 편했다. 그렇게 착한 막내딸로 자랐다.

그러다 보니 나는 사람들에게 No라는 말을 편히 할 줄 모르고,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도와주는 일이 더 마음 편했다. 내가 잘났다기보다 언니 오빠를 더 치켜세워주고, 그런 것이 겸손이라 여겼다. 물론 반대로 언니는 장녀로서 모든것을 이해하고 동생들을 보살피라고 배우며 자랐다. 첫째라서 참고, 아들이라서 참고, 막내라서 참아라. 한발 뒤로 물러서서 양보하라고 배웠다. 손해 좀 보면 어떠냐, 우애가 더 중요하지. 나의 성격은 한국에서는 싸울 일 없이 둥글게, 원만한 대인관계를 하며 살 수 있다.


문제는 미국 회사 생활에서였다.

현명하게 No를 하는 법을 몰랐고, 나 또한 작은 업무인데 좀 해주면 어때,,라는 식으로 직장 동료 일도 도왔다. 평생 싸워본 적도 없고, 따지고 든 적도 없었으며, 하고 싶은 말도 (나중에 후회하느니) 함부로 내뱉지 않고 꾹꾹 참고 살았다. 혹여 속에 무언가가 쌓였다면, 노래방에서 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nice함과 겸손은 미국 내 디자인실 커리어에 좋은 덕목이 되지는 못했다.

뉴욕에서 신입시절, 가끔 직장 동료들이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으로 내게 도움을 청할 때가 있었다. 보통 내가 할 수 있는 간단한 일들이었기에, 업무를 처리하고 잠시 짬을 내어 힘들어하는 다른 동료의 일을 도와주었다. 그럴때면 나보다 오랜 경력을 가진 파트너 디자이너는 그런일을 도와주지 말라고 조언했었는데, 그 모습이 박정해 보였다. 그들이 우리와 동일 부서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책상도 가까이 있고 함께 칵테일도 마시는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잠시라도 남을 도울 때, 내 디렉터는 그런지도 모르고 내가 계속 바빠 보여 다음 업무를 주지 못하고 있기도 했었다. 급한 일일 경우 나 대신 다른 사람이 떠맡아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즉, 직속 상사가 내 업무를 파악할 수 없게 혼동을 주고 있었던 거다.


한 번은 엘에이에 있던 모브랜드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하청업체에서 불리할 때 영어도 조금 모자라고 나이스한 나를 구멍으로 보아 잘못을 떠 넘기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경우 가끔 F 단어도 적당히 섞어가며 쏘아붙이는 동료도 있고, 상당히 설득력 있게 말을 하며 본인의 잘못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길 정도로 훌륭한(?) 언변술을 가진 동료도 보았다. 그런데 난 결국 나에게 뒤집어 씌운 사람에게 쏘아 부치지는 않고, 자료를 모아 상사에게 보고를 하고 회사를 통해 해결을 하였다. 중간계급의 디자이너가 배려하는 겸손은 가끔 (능력 모자란) 하청업자에게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쉬운 사람으로 보였던 일이었다. 물론 그녀는 영어가 모자란 한국인이 어떻게 백인 디자이너들만 있는 디자인실에서 일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을 못 했나 보다. 언어를 넘어선 실력인데 말이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실력이 모자란 사람들이 남을 해코지 하며 일을 한다. 그녀야 말로 모자란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내가 배우고 자라왔던 가치관과 항상 겸손하여라고 배워 온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처음 부딪혔던 문화충돌이 나의 겸손과 관련된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행하는 겸손은 비굴해 보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다들 내가 최고야 라는 분위기인 걸까.

당시 내가 갑의 위치였음에도 그녀는 나를 쉽게 보고 해치려 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아시안이 갑질하지 않고 겸손하게 대해주니 남미출신 그녀에게는 우습게 보였던 거다. 당시 겉모습만 번지르르하던 그녀에게 제대로 쏘아붙이지 못했던 내가 조금은 안타까웠다.

쯧쯧...왜 제대로 할 말을 못 할까...

그렇게 커온 걸 어쩌겠냐.


나와 다르게 컸으면 좋겠다.

막내딸이 할 말이 있어 목소리를 높이면, 특별히 중요한 대화가 아니라면, 딸 말에 귀 기울여 준다. 무조건 중단시키는 것은 아이 목소리를 꺾는 거 같다.

가끔은 정말 상관없는 이야기로 대화를 방해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그 행위가 예의 아니라고 단단히 알려준다. 대신 위급 상황이라면 어떤 대화라도 자르고 알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면 또 이해를 하고 입을 다물고 기다린다. (물론 이 상황에 내가 첫째와 하던 대화는 이미 끊겼다)


주로 방해하고픈 대화는 언니와 엄마의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이다. 언니와 엄마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그냥 보고 지나가는 경우는 없다. 어디선가 뭘 준비하고 튀어나와 본인의 이야기를 들으라며 난리다.

언니와 눈을 맞추며 심각하게 집중하는 엄마의 관심과 눈빛을, 사자후 내공을 사용해 본인에게 돌리고 싶은 거다. 말이 아니면 노래라도 부르며 방해를 한다. 가끔은 우스운 춤도 춘다.

이해는 한다.

'날 봐요. 그쪽말고 나 좀 봐주세요.'

그 모습이 가끔은 웃기다. 처량하기도 하다.


여덟살은 열한살 언니가 뭐든 항상 더 잘하는 거처럼 보인다.

'엄마는 그런 언니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엄마인 내가 둘을 비교하지 않아도, 여덟살은 스스로 언니와 비교를 하며 기가 죽는 거 같다.

그리고 그 여리한 속을 큰 목소리로 두꺼운 갑옷처럼 감싼다.

여덟살의 사자후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본인의 의견을 당당히 피력하는 행위일때도 있고,

연약함을 숨기려는 방패일때도 있으며,

질투로부터 벗어나려는 행위이자

관심을 끌려는 징징대는 떼쟁이의 모습도 담겨있다.


그 중 아이 의견 Voice을 잃지 않게 해주려고 귀 기울이는 편이다. 나머지 마음과 감정은 커가면서 다듬어 가는거.


내 귀가 좀 멀면 어때.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고 재미있게 발언하고,

스스로 보호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현명하게 공격할 수 있는 그런 언변을 구사하는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정중히 거절하는 법도 잘 배웠으면 좋겠다.

전하고자 하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잘 구사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는 왼쪽귀에서 피가 나도, 너의 목소리를 들어주려 노력한단다.

여덟살의 사자후 sketch by Beverly tory





엄마엄마엄마

그 소리는 그라데이션된 색처럼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다가와 진하게 내 귀를 다그친다.


엄마엄마엄마

그러고선 곁에 와서 조잘조잘


엄마엄마엄마

부르고 싶을 만큼 부르렴

닳는 것도 아닌데..


몇 년 후 대학을 가면 저렇게 불러대는 아이는 온데간데없겠지…

영상 속 나를 향해 손짓하는 두 살배기 아기가 온데간데 없어진 거처럼

대신 조금 더 커진 내 아이가 굵어진 목소리로 나를 부르겠지


엄마엄마엄마

귀가 아파 먹먹해지면 어때.

부르고 싶을 만큼 마음껏 부르렴

닳지도 않는 이름인데.


제목: 엄마 마켓 좀 다녀올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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