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포기않고 연민하며 나아질 수 있도록하는 최소한의 실마리
<인사이드 아웃2>에는 불안이, 따분이, 부럽이, 당황이라는 새로운 4가지 감정들이 등장한다.
기존 감정들을 몰아 내고 메인 빌런(?)이 된 불안이는 라일리의 친구 관계, 공정해야 할 하키 시합을 과한 걱정으로 전부 망쳐 놓는다. 결국 난장판이 된 감정통제센터 때문에 라일리에게 공황이 오고 계속 폭주하는 불안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가온 기쁨이에게 불안이가 외친다.
예전보다는 감정이 널뛰는 폭이 줄어들었고 가끔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들도 잘 통제할 수 있다는 경험을 통한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가끔에 부닥칠 때면 매번 가슴에 무거운 돌이 자리 잡은듯 먹먹하니 무겁다. 내가 마음을 준 사람이 나와 같지 않을 때, 주변의 친구들이 결혼이며 자가마련이며 여러 챕터로 넘어가는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을 때, 나의 일이 남들에 비해 돈도 적고 의미도 없이 초라해 보일 때, 앞으로의 인생이 아무런 변화 없이 서서히 저물어 갈 것 같은 때, 이런 불안과 우울이 덮친 순간 하필 집에 혼자일 때. 그럴 때마다 습관적으로 나를 탓한다. 나는 너무 게을러, 나약해, 철이 없어, 미래를 못 내다봐, 목표도 의지도 없어 하는 자기 비하들이 겹겹이 쌓여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하는 커다란 불안 덩어리로 나를 누른다.
그러다가 불안이의 외침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 내가 불안해 하는 건 단지 나를 탓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극한에서라도 나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스스로를 정말로 한심하게 여기며 싫어 한다면 불안도 없을 것이다. 무슨 상관이람. 부족한 내가 잘못되는 게 당연하지. 그런 인과관계가 당연한 일에는 불안함이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부족한 나라도 잘 되었으면 좋겠어서, 위험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아무런 근거 없이도 그런 걱정들을 난사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 자신을 위해 뭐라도 하는데 하필 그것이 걱정일 뿐. 스스로를 탓하지만 그래도 그 탓의 원인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스스로를 완전히 포기할 만큼 별로는 아니구나, 나를 연민할 정도의 여유는 남아있구나 하고 흡사 부모님의 마음으로 오들오들 떠는 나를 마주한다.
물론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나를 불안하게 하는 세상이 바뀌는 건 없다. 그래도 내가 다르다. 불안해 하는 나를 위해서 억지로 산책 한 번 더 나가줄 수 있고, 근거 없이도 괜찮다고 되새기며 위로해줄 수 있고,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파헤쳐보고 당장 뭘 할 수 있는지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하루들을 버텨내면서 감정의 궤도는 안정선에 들어서고 불안도 조금씩 사그라든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시도해 본 것이 있다면, 그것을 끈기로 반복해 작은 변화라도 일굴 수 있다면 나를 조금 더 괜찮게 보며 사랑할 수 있겠지. 반면에 이 과정을 반복하고도 변한 게 없다면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겠지. 결론적으로 나를 덜 불안하게 해주고 싶다면 뭐라도 해야 된다는 거다. 사회에서 남들과 지지고 볶으며 돈 벌어 먹고 살기도 힘든데 나 때문에 이런 가외적인 노력까지 해야 된다니, 사는 게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나를 돌보는 건 자식을 보는 부모님 마음 같을까. 낳았으니 미우나 고우나 잘 키워봐야지. 죽을 때까지 떨어질 수 없으니 미우나 고우나 잘 돌봐야지.
최근에 질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나보다 어린데 스스로 자가를 마련하고 매일을 열심히 사는 네이버 블로거를 구독하고 있다. 그 블로거는 독서 관련, 갓생 관련, 소개팅 관련 모임을 정기적으로 열면서 개인 사업자를 하고 있고 일본어, 경제 공부와 더불어 크로스핏, 러닝 같은 운동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의 마인드도 굉장히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다. 그 과정들을 전부 기록으로 남기는데 아침에 출근해 그 기록들을 읽으면서 부럽다를 넘어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살지, 하는 질투심이 자주 든다. 저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하는 자기 비하로도 이어진다. 그러면 남은 하루가 지겹고 초라해 진다.
불안을 뒤집어 생각하면서 마찬가지로 질투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해 봤다.
이때까지는 저 사람이 부러워에서 생각이 끝났다면 내가 타인을 질투하는 것은 그 사람이 내가 가지지 못한, 그러나 내가 가지고 싶은 무언가를 갖고 있는데 그게 무엇일까에 생각이 미쳤다. 그 블로거의 글을 보며 내가 부러워했던 포인트들을 떠올려 본다. 발가벗겨진듯 부끄럽지만 그 감정마저 솔직히 인정하고 파고 들어야만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
이사 걱정 없는 자가가 마련 되어 있다.
독서 모임, 소개팅 모임 같이 본인이 좋아하는 부업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
매일을 빈틈 없이 공부와 운동으로 열심히 채워 보낸다.
내가 그녀와 똑같은 삶을 살고 싶은 것은 아니고 분명 맞지 않는 취향도 있기 때문에(예를 들어 나는 운동을 저만큼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부러웠던 점들을 조금 더 근본적으로 파헤쳐 본다. 내가 질투라는 감정을 무릅쓰게 만들 만큼 어떤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지 저 사람을 통해 비추어 보는 것이다.
경제적인 안정성
좋아하는 것을 실행하는 추진력과 꾸준함
이 모든 것들을 잘 기록하는 능력
하나씩 적어가 보면서 조금은 부끄러워 진다. 사실 내가 노력했다면 아주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핑계가 많았을 뿐이다. 나는 재테크랑 안맞으니까, 체력이 너무 떨어져 피곤하니까, 약속이 너무 많아 바쁘니까. 또 다시 내 탓으로 돌아가기는 한데, 그래도 내 탓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뭐라도 해야겠지.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도 버거운데 남의 삶까지 부러워 하기에는 하루가 아깝다. 오로지 지금의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생각의 꼬리를 자른다. 다음에는 불안과 질투보다는 나의 작은 성취들에 대한 애정으로 글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