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명품 가방하나 쯤은 있어야지라는 말을 한다. 중요한 자리에서 들고 갈 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하나쯤은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최근 결혼 준비를 하며 프로포즈 가방을 받게 됐다. 꽤 고가인 가방이었다.
기쁨도 잠시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저런 비싼 가방이 내가 필요한가부터 내가 들기엔 너무 비싼 거 아닌가, 비가 오면 머리에 가리개로 쓰지 못하고 품에 감춰야 하는 건가, 잠깐 들어보기만 했는데 환불이 되는 건가까지 수십 가지 생각을 했다. 평생 기억에 남을 프로포즈의 밤을 어찌 보면 찌질한 생각들로 채웠다. 환불을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그러기엔 그의 마음과 노력이 미안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포장 그대로 방에 모셔 두었다. 내가 약속이 있을 때마다 그는 내게 그 가방을 들고 가라고 말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기스 나도 마음 편한 가방을 들고 나갔다. 좋고 값비싼 것들을 장롱 속에 숨겨 놓는 엄마에겐 그냥 쓰라며, 죽어서는 가져가지도 못한다고 그냥 쓰라고 잔소리를 해댔거만, 나의 모습은 엄마와 똑같았다.
웃지만 웃는게 아닌 망토리
나는 사실 명품을 적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명품을 드는 것보다 남에게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 태도, 생활 습관 등에 더 관심을 가졌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이 내게는 통하지 않길 바랐다. 단단한 내면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그 사람 자체를 명품으로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들었다.
하지만 내면을 중요시하는 것과 프로포즈 가방 받은 것과 어떤 관련성이 있었던 걸까? 무엇이 밤새 환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었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그 명품의 가치와 나의 가치를 저울질하고 있음 알게 됐다. 나의 가치를 가방에 비교해서 생각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머리로는 생각은 했지만 마음은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고 있었다. 소득에 맞지 않게 허세 부리는 모습으로 비춰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밤 못 잘 정도로 고민했던 이 고민에 친구가 한마디 던졌다.
“이 중생아, 그냥 좀 누려라! 좋은 걸 있는 그대로 누릴 줄 아는 것도 능력이야.”
명품이고 나발이고,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평가를 내릴 필요 없다는 말이었다. 할 말을 잃었다. 나의 모습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적인 잣대와 예상되는 남의 시선을 고려해 무엇을 누릴지 말지를 결정하는 꼴이었다. 따지고 보면 누릴 수 있을 ‘때’라는 것은 없다. 나는 단지 비싸다는 사실에만 시선을 두고 가방의 디자인, 품질 그리고 나를 위해 이리저리 고민했을 사람의 마음에는 시선을 두지 않았다. 말 그대로 보이는 것에만 따졌던 것이다.
참, 프로포즈 가방 하나에 여러 생각들이 더해졌다. 명품 가방과 나의 가치를 비교하는 나와 좋은 걸 그대로 누리지 못하는 나를 보며, 참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며 살고 있다고 느꼈다. 그저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무거웠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런 생각들은 곧 이래야 되나? 저래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스스로를 참 피곤하게 하는 생각의 패턴이었다.
이래도 이덕에 프로포즈 가방 하나가 쏟아올린 생각들이 평소 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주려고 해도 좋은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것을 받아도 좋은지를 모르거나, 내가 누려도 되는지에 대한 쓸데없는 자격을 논하게 될 수 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어본다고, 좋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정 연습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친구가 말한 ‘그냥 좀 누려라’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 연습을 하다 보면 무겁게 쌓인 생각들은 가벼워지고, 좋은 것을 온전히 즐기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한다. 그게 물질이든 마음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