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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28. 2024

역제안 - 1





 운동화 안까지 파고든 냉기에 발가락이 얼어붙었다. 운전석에 앉은 영종은 자세를 고치며 굳은 몸을 깨웠다. 곁눈질로 사이드미러를 확인했지만 누런 가로등 불빛을 받은 텅 빈 골목만 보였다. 빨리 좀 나타났으면. 늘 이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 온 영종이었지만 누추한 냉기가 감도는 좁은 차 안에서 엉덩이가 빠근할 정도로 오래 잠복하는 것만큼은 여전히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얼마나 됐지?”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성 실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물었다. 눈을 붙인 줄 알았는데.

 “지금이, 아홉 시간 정도 됐습니다.”

 “아니. 너 이 일한 지 얼마나 됐냐고.”

 “아, 일 년 정도 됐습니다.”

 “어때? 적성에 맞아?”

 “네. 뭐, 그럭저럭.”

 “내가 볼 때는 아닌 거 같은데.”

 그제야 좌석에 깊게 파묻었던 몸을 일으킨 성 실장이 컵 홀더에서 차게 식은 아메리카노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성 실장을 향해 고개를 돌린 영종은 다소 과한 그녀의 아이섀도에 다시 한번 눈을 빼앗겼다.

 “쫑이 빠릿빠릿하고 겁도 없긴 한데, 일을 너무 거저먹으려고 해.”

 쫑은 영종의 애칭이다. 센터 사람들 모두 영종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글자인 ‘종’만 따서 제멋대로들 막내를 불렀다. 영종은 그 애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별수 없었다.

 “제가 아직 일한 지 일 년 밖에 안 돼서요. 조금 더 하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런 건 오래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고 타고나는 거라.”

 평소라면 속으로 ‘잘난 체하네’ 라며 무시했겠지만 영종은 이번만큼은 절로 귀를 기울였다. 요 며칠 그녀의 남다른 능력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성 실장이 영종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연예계 쪽 일을 해 보는 건 어때? 쫑은 아직 나이도 젊잖아. 모델이나 영화배우나.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지?”

 그건 그랬다. 영종은 세련되고 귀티 나는 외모 때문에 전부터 배우를 해 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유명 연예 기획사 대표에게 명함을 받은 적도 있다. 영종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사람들 앞에 나서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가 금방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두컴컴한 골목에 숨어 대상자의 그림자를 밟는 일이 훨씬 더 설레는 일이었다.

 “저는 이 일이 재밌어서요.”

 “재미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니까.”

 “저 나름 일 잘한다고 실장님들이 서로 데리고 가려고 해요.”

 “기본이 안 되어 있는데 무슨.”

 성 실장이 거듭 자신을 무시하자 영종이 그제야 따져 물었다.

 “성 실장님. 제가 무슨 기본이 그렇게 부족합니까?”

 “나랑 잠깐 이야기한다고 지금 대상자가 밖으로 나왔는지도 모르잖아.”

 영종이 아차 싶어 사이드미러를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대상자인 젊은 여성이 막 자신의 하얀 경차에 올라타는 중이었다. 서둘러 시동을 건 영종이 대상자가 탄 차의 뒤를 급히 쫓았다. 성 실장이 그런 영종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구경했다. 그녀의 새빨간 입꼬리가 위로 슬쩍 올라갔다.

 좁고 어두운 골목을 벗어난 대상자의 차가 환한 대로로 나섰다. 영종이 그 뒤를 놓칠세라 액셀을 조급하게 밟았다. 이번에야말로 증거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한 삼십 대 여성이 영종이 일 하는 심부름센터에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증거를 잡아달라고 의뢰했다. 남편이 근래 활력이 넘치고 생기가 도는 게 수상하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 받는 뻔한 의뢰였지만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의뢰인이 그 유명한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 회사인 서광 그룹의 후계자 이지연이었다.

 호텔, 외식 사업으로 세를 넓힌 서광 그룹은 일가 구성원들의 기행으로 유명했다. 창업자인 이 회장은 조직 폭력배 출신으로 유명했고, 그의 아들인 이 사장도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남다른 인성 교육이라도 받는 걸까? 그 3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부터 마약, 음주 운전 등의 기행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매스컴에 이름을 올렸다. 마치 가족 구성원들끼리 누가 더 욕을 많이 먹나 서로 경쟁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서광가에서 유일하게 아무런 루머 없이 조용히 살던 인물이 바로 장손 이지연이었다. 알고 보니 그런 이지연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영종은 처음엔 주로 함께 움직이던 최 실장과 이 일을 맡았다. 둘은 먼저 대상자인 남편 박경민의 스마트폰에 몰래 스파이웨어부터 설치했다. 하나 박경민은 숨겨둔 세컨드 폰으로만 내연녀와 연락하는지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증거를 잡을 수 없었다. 이후 둘은 작은 실마리라도 잡기 위해 밤낮으로 박경민의 뒤를 밟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무척이나 수상했다. 서광 그룹의 계열사 상무직을 맡고 있는 그는 회사에 있다가도 어디론가 불쑥 외출했는데 그럴 때마다 늘 용의주도하게 움직였다. 자신의 차 뒤에 어떤 차도 따라붙지 못하도록 예측불허로 운전했다. 신호 체계를 절묘하게 이용해 미행을 따돌렸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차에 GPS를 달았더니, 이번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택시나 지하철로 이동했다. 늘 예상치 못한 곳에 내리거나 절묘하게 환승했다. 갑자기 재빠른 걸음으로 걷거나 인파 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늘 누군가 자신을 미행할 거라 가정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종 쪽도 대상자에게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되었기 때문에 적당한 선을 지켜가며 박경민의 불륜 현장을 잡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지연은 이전에도 다른 업체에 일을 의뢰한 적이 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그 업체에서는 어쩌다 박경민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어 내연녀의 이름이 ‘은하’라는 것 정도만 겨우 알아냈다고 했다. 영종이 처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웬 초짜들한테 일을 맡겨서 그렇게 됐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정작 자신들은 이름은커녕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쯤엔 이른바 허탕 듀오로 불리던 영종과 최 실장이 보름 가까이 증거를 잡지 못하자 센터에서는 담당자를 일부 교체했다. 그렇게 해서 바뀐 영종의 파트너가 그 유명한 성 실장이었다.

 센터의 최고 에이스라 불리던 성 실장은 확실한 일 처리로도 유명했지만 무엇보다 많은 일을 하는 걸로 더 유명했다. 맡은 사건마다 빠르게 처리하는 이 오십 대 여성은 쉬는 날도 없이 대상자의 뒤를 밟아 의뢰인이 원하는 사진을 찍어댔다. 그녀가 맡은 사건에서 증거를 못 잡는 경우는 단 한 가지, 대상자가 결백할 때뿐이었다. 그녀에 대해 질 나쁜 소문도 함께 돌긴 했지만 그 일로 센터에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여태 없었다.

 그간 어쩌다 얼굴이나 몇 번 마주쳤을 뿐, 영종 역시 그녀와 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명성을 익히 들어온 터라 영종은 잔뜩 기대하며 성 실장을 유심히 지켜보았지만, 그녀도 별다를 게 없었다. 매번 허탕만 쳤다. 다만, 대상자를 놓치면 욕설이나 내뱉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던 최 실장과 달리 성 실장은 대상자를 놓쳐도 그 뒤를 어떻게든 다시 잡겠다고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한 박경민이 회사 앞 베이커리 카페에 들렀다. 보는 눈이 많은 카페였기 때문에 특히나 용의주도한 대상자가 그 안에서 상대 여성을 만날 리는 없었지만, 성 실장은 예외 없이 그를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그 안에 상대 여성은 없었고 박경민은 그저 작은 케이크를 하나 사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둘을 또 능숙하게 따돌렸다. 영종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성 실장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그녀가 다음 지시를 내릴 줄 알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곧 어디론가 전화를 건 성 실장이 여유롭게 말했다.

 “주민번호 앞자리가 941109, 성은 모르겠고 이름은 은하. 응. 부탁해.”

 나중에 알고 보니 성 실장은 베이커리 카페에서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박경민은 케이크를 사면서 점원에게 긴 초 세 개와 짧은 초 한 개를 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건 생일 케이크였다. 당일 날짜가 11월 9일이니 여자의 생일도 그날일 확률이 높았고, 초의 개수로 미루어 내연녀의 생년까지 추정하면 그걸로 주민번호 앞자리가 완성된다. 그에 더해 이전 업체에서 알아낸 내연녀의 이름까지 합하면 딱 그녀의 신상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가 된다. 성 실장은 알고 지내던 택배사 브로커에게 그 정보들을 말해주며 그녀의 개인정보를 물었던 것이다.

 얼핏 운이 따른 것 같지만, 아무나 잡을 수 있는 운이 아니다. 영종은 그녀가 남달리 집요했기 때문에 잡을 수 있었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곧 브로커에게서 온 회신을 보며 성 실장이 말했다.

 “이 중에 이 지역에 사는 은하는 하나밖에 없네. 쫑. 이제부터 이 여자가 대상자다.”

 다음날부터 둘은 알아낸 내연녀의 현주소 앞에서 잠복했고, 이틀째 되던 날 밤 마침내 그녀가 움직인 것이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던 박경민과 달리 은하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내연녀는 똑바로 운전했다. 꼼꼼하게 오른쪽 방향 지시등을 깜빡이며 그녀의 차가 들어간 곳은 다행스럽게도 모텔 주차장이었다. 차에서 내린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그 남자 역시 고맙게도 그 용의주도했던 대상자, 박경민이었다.

 “오케이.”

 성 실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종은 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키스하는 장면부터, 모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입을 맞춘 두 남녀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도록 당겨서. 팔짱을 끼고 모텔로 들어가는 둘의 뒷모습과 휘황찬란한 모텔 간판이 함께 보이도록 밀어서.

 외도 현장을 여러 차례 잡아 이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영종도 이번만큼은 짜릿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대상자가 용의주도하게 둘을 따돌리자 그의 내연녀로 대상자를 바꿔 현장을 잡아냈다. 실제로 채증까지 성공하자 영종은 성 실장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볼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게 했던 그녀의 다소 과한 화장도 오늘따라 카리스마 넘쳐 보였다.

 “우리도 들어가야지.”

 성 실장이 말 한마디로 영종의 감탄한 표정을 깨트렸다.

 “…네? 어딜요? … 모텔이요?”

 한동안 영종의 당황한 표정을 지켜보던 성 실장이 곧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왜? 내가 너 잡아먹을까 봐?”

 “농담이죠?”

 “아니.”

 “네?”

 “귀엽네 쫑.”

 영종은 웃으며 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보며 당황했지만, 동시에 언젠가 들었던 그녀에 대한 질 나쁜 소문이 떠올라 곧 자신도 뒤따라 차에서 내렸다. 실은 영종도 그 소문의 진위가 궁금하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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