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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Aug 02. 2024

조용하고 조용했던 시간






* [타로카드 읽는 가게'는 소설입니다. 모티브나 컨셉외의 모든 인물과 나오는 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

*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빌리버튼)'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요!













아픔은 달콤했다.

나는 아팠지만, 그 전까지는 아픔이 쉴 수 있는 핑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때는 최대한 아프지 않아야했고 아픔은 나의 손해였다. 아픔이 멈추거나 쉴 수 있는 핑계가 되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 등에 지워진 또 하나의 짐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하루의 아픔은 나에게 지금까지의 그 어떤 호사 보다도 달콤하고 꿈 같았다. 몽롱한 약기운이 더욱 꿈결같기도 했다. 모두가 나의 아픔을 공감하고, 내가 잠시 멈추는 것에 대해 이해했다.


'아, 그래. 아플만해. 그동안 하루도 안 쉬었잖아.'

'그렇게 춥게 입고 다니니까 감기에 걸리지.'

'나도 겨울이면 늘 한번씩 그렇게 독감을 앓고 지나가.'

'밤 늦게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내 잘못이에요.'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입장에서 한마디씩을 건냈다. 그 어디에도 나를 탓하거나 내가 당장 이겨내고 일어나야 한다는 압력이나 무언의 압박이 없었다. 그래서 뒤이어진 그들의 잔소리도 마치 예쁜 노래 가락처럼 들렸다. 계속 아프고 싶다는 어린애같은 생각도 잠깐 했다. 어린애였을 때도 내가 마음 놓고 아팠던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픔을 핑계로 모든 것을 뒤로, 뒤로 미루었다. 모두가 나에게 더 자세한 설명이나 이해를 바라지 않고 '그래, 그래'라고 하고 넘어가 주었다. 정말 맹세컨대, 지금까지 사는 동안 내가 저지른 가장 무책임한 행동이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눈물이 날 뻔했다. 내가 달라진 것은 무엇이었기에 같은 상황에 대한 반응이 이토록 달랐을까. 

생각하고, 생각해내고싶지 않았지만 그건 결국 엄마였다. 엄마를 떠나자 내 등의 짐들이 조금씩 지워져갔다. 덜 마른 소금 가마니를 땡볕에 이고 지고 다니다가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에 그 소금들이 다 녹아버리고 내 등위에는 빈 가마니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를 짓누르던 무게는 사르르 녹아 더이상 느껴지지 않지만 껍데기는 남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감정.

윤주를 집으로 불렀던 그날, 나는 결국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일어났고 윤주는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미련이 가득 남은 얼굴을 하고 돌아섰다. 낮에 약속한 따뜻한 커피는 마실 수 없었다. 그가 '자고 갈까?'라고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혼자 편히 쉬고 싶다고 했다. 윤주는 더 남아 있을 명분이 없었기에 돌아갔다.








"그 사람과 결혼을 해야할지 말지, 그게 고민이에요."


일상으로 돌아온 나에게 찾아 온 첫 손님은 말갛고 깨끗한 인상을 지닌, 어른들이 좋아할 것 같이 참한 얼굴을 한 여자였다. 인상에 남는 개성있는 얼굴은 아니지만 어딜가든 환영받을 듯한 얌전한 느낌이었다.


"왜 그게 고민이신데요?"


아직 감기기운이 남아 조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도 내가 물었다. 귀에 거슬리게 갈라지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야했다.


"음......"


여자는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나는 카드 덱을 천천히 섞으며 그녀에게 질문을 던져 구체적인 고민을 정돈해 보기로 했다.


"결혼하려는 분의 문제 때문인가요? 아니면 질문자분의 문제? 그것도 아니면 주변의 문제......?"


타로 카드의 해석을 위해서는 질문자의 질문을 명확하고 날카롭게 다듬고 해석에 필요한 주변 정보를 좀 더 확인해야 했다.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카드의 상징을 제멋대로 해석할 수는 없으니까. 상징이란 그런 것이다. 비유와는 조금 다르다. 비유는 무엇에 빗대었는지 알 수 있다. 비유하려는 대상과 비슷한 것을 예로 드니까.

하지만 상징은 아무리 들여다 봐도 그 뜻이 뭔지 알 수 없다. 일단은 그 뜻을 외워야 하고, 그것이 지금 상황에 맞는 것인지 타로를 읽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뜻을 풀어주어야 상대방이 이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장의 타로가 한 개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 없이 해석을 하면 전혀 다른 방향의 풀이가 나올 수 있다.

타로를 '점'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타로를 점사의 종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년월일만으로도 일생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점'과는 다르게 타로는 질문자로부터 최대한 많은 정보를 받아야 한다. 이 카드에 담긴 수많은 상징과 풀이 중에 질문자의 답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답을 찾아 카드와 카드 사이의 이야기를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같은 카드를 가지고도 타로 카드 리더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질문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할 뿐 반대로 자신이 질문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는 경우가 많다. 나는 물었고, 당신은 대답을 해야하는데 왜 자꾸 물어보느냐, 다 물어보고 답변하는 건 점괘가 아니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타로카드는 내가 미래를 얼마나 잘 알아맞히는지에 대한 퀴즈가 아니다. 나는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상징을 풀이하고 읽어주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답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마지막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 '용하지 못하다'고 타박하기도 했다. 


"모르겠어요. 누구의 문제인지. 그냥 저의 감이......촉이......확신을 주지 않아요."


"감이요?"


질문자의 얼굴은 첫 질문을 던졌을 때보다 훨씬 헝클어져있었다. 깨끗하고 맑은 얼굴이 우유를 풀어놓은 듯 불투명해 보였다. 혼란을 겪는 사람들의 얼굴은 늘 그렇다. 뿌연 물 속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다.


"오래 사귀셨나요?"


나는 뿌얘진 그녀의 얼굴이 차츰 가라앉기를 바라며 물었다.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적극적으로, 타로카드라는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문제를 알고싶어 하는 사람이니 분명 내 질문에 성실히 답변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담자의 상담은 시간이 걸릴 뿐 어렵지는 않다.


"어...한 2년쯤 만났어요. 짧은 건 아니죠.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 만큼, 평균은 될 거에요."


"그럼 잘 안다고 생각하세요?"


"......"


여자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이제는 눈빛마저 우유 빛처럼 탁해 보일 지경이었다. 어려운 질문이긴 하다. 어떤 인간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살면서 몇 명이나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다는 아니지만 제가 아는 다른 사람들 보다는 비교적 많이 안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요. 그냥 비교적, 비교하자면 그런 편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확실하게 얘기하진 못하겠어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신중하게 말했다. 확실히 신중한 타입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곁을 쉽게 내어주지도 않지만 누군가 내어준 곁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신중해진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 신중하면 외로워질 수도 있다. 그 누구도 모르게. 


"그럼 반대로 질문자 분이 생각하는 확신을 주는 촉은 뭘까요? 이 사람과 결혼해도 돼, 라고 명확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나는 카드 섞기를 멈추지 않으며 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카드를 이리저리 뒤섞는 내 손에 꽂혔다. 그녀는 눈을 떼지 않고 내 손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글쎄요......뭐......그 사람을 보는 순간 종소리가 들린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그래도 '이 사람이라면 평생 내 곁에 있을 거야'라던가, '영원히 내 편이 되어 줄 거야'같은 그런 느낌은 안들어요."


"좋아요. 그럼 한번 카드를 뽑아 볼까요? 지금 결혼을 생각하는 분이 평생 내 곁에서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인지에 대해 질문을 해 보면 어떨까요? 그 정도면 알고 싶은 질문이 될까요?"


나는 섞고 있던 카드를 그녀에게 돌려 쥐어 주며 섞고 싶은 만큼 섞고 돌려달라고 했다. 갑작스레 정신을 차린 듯 번뜩하니 깨어난 사람처럼 카드를 받아들고 천천히 정성을 들여 섞었다. 카드덱을 만져본 경험이 별로 없는지 카드 한두 장이 손에서 떨어져 나와 테이블 위에 투둑 떨어졌다. 


"어, 죄송해요."


여자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떨어진 카드를 다시 주워 나머지 카드 속에 끼워넣었다.


"괜찮아요. 많이들 그러세요. 자주 만져본 물건이 아니라 손에 안 익어서 그렇죠. 충분하다 생각이 들 때까지 천천히 섞고 주세요." 


나는 씩 웃어 보였다.

결혼. 결혼이라.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고민. 사람에 대한 신뢰. 

몇 년 깊이 사귄 한 사람에게 내 인생을 맡기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누군가에게 내 인생을 맡긴다는 전제 자체가 틀린 말인가? 누군가를 일이년 만에 알게 되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녀는 다시 천천히 카드를 섞고 나에게 넘겨주었다. 수많은 카드가, 하지만 하나의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하기에는 너무 적고, 또 어찌보면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카드가 똑같은 뒷면을 보이며 얇게 저미듯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여자는 내 안내에 따라 카드를 숙고하며 한 장씩 뽑았다.

일곱장의 카드가 선택되고 카드를 펼치는 순서대로 제 자리에 카드를 올려 놓은 뒤 하나씩 뒤집었다. 여자는 카드를 유심히 내려다 볼 뿐 표정의 변화는 딱히 없었다.

보통 타로카드의 상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카드를 뒤집을 때마다 그 심상잖은 그림에 놀라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한다. 사신의 모양을 한 해골, 거꾸로 매달린 남자, 쏟아지는 듯 수많은 칼, 무너지는 탑 같은 것이 특히 그렇다. '저 죽는 거에요?' 라던가 '이거 망한단 거죠?'라고 지레짐작으로 묻곤한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고 명확하다면 오히려 어려울 것이 없을텐데.


"당연하겠지만, 지금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계시네요. 결혼을 앞두고여서인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혹은 정말 질문처럼 결혼하려는 분을 얼마나 신뢰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 그렇지만 어떤 상황이나 흐름에 의해 막지 못하고 진행되어 왔던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뭔가 후다닥 진행 되다보니 이제서야 '이게 맞나?'하는 생각이 드시는 거죠."


여자는 고개를 휙 들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2년정도 만났고, 그 정도 만나면 제 나이에는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게 제 경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대부분 그렇게 하는데 막상 제가 그 당사자가 되니까 뭔가 확신이 없는 거에요. 그는 좋은 남자친구였고, 딱히 속을 썩이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평온하고 평탄하게 만났어요.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그를 싫어하거나 헤어질 이유가 없었죠."


그녀는 마치 방언이 터지듯 우두두 나에게 뱉어냈다. 흔한 상황이다. 상담자들은 처음에는 나를 낯설어하고 의심스러워하고, 신뢰하지 않는다. 무언가 답답해서 여기까지, 내 앞까지 와서 내게 카드를 뽑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나 내가 하는 행위를 100% 믿지는 못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내가 그들의 상황을 비슷하게나마 맞추면 그때부터는 내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려고 한다. 결국, 필요했던 건 답이 아니라 엉켜있던 무언가를 털어놓을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헤어질 이유는 없지만 계속 만나야 할 이유도 없었다는 뜻으로 들려요."


내가 말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듯 허공을 응시했다.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 것 같아요. 만나면 좋았지만 돌아서서 생각나지는 않았어요. 만남이 억지스럽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당연히 만나고 싶었다기 보다는 우리는 사귀는 사이니까, 하면서 일하듯 만날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상대는 어땠는데요?"


"아!"


그녀는 뭔가를 깨달은 듯 했다. 그녀의 눈에 서려있던 탁한 기운이 맑은 눈빛 뒤로 쑥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대한 확신이 왜 없었는지 알 것 같아요. 저는 그 사람이 어땠는지를 몰랐어요. 나와 같은 마음인지, 나와 다르게 우리 관계에 확신이 있는지 같은 거요. 그 사람에게 관심이 그만큼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역시 나에게 자기 마음을 다 보여주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우리는 자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서로의 마음 이나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부터 나는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문제를 깨달은 질문자는 해결 방법도 스스로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제 나는 입을 닫고 중간 중간 그녀의 이야기에 적절히 고개만 끄덕이면 된다.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스스로 깨달은 자. 나는 언제쯤 내 문제를 직시하고 스스로 해결방법을 깨닫게 될까.

뿌연 연기가 스르르 빨려들어가듯 맑아지는 그녀의 눈빛과 안색을 보며 그녀의 눈에 내 안색은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다. 그녀에게서 나온 탁함이 나에게 풀어져 점점 퍼지는 것 같았다. 등에 진 빈 가마니 껍질이 까칠하게 느껴졌다.








아직 몸이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라서 조금 뜨듯한 뭔가를, 든든하게 먹고싶었다. 점심시간의 카페는 너무 바쁘지만 1시가 지나면 몰려드는 듯한 인파는 줄어들기 때문에 2시쯤 혼자 점심을 먹고 오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섰다.

요즘은 3시쯤부터 브레이크 타임이라며 두어 시간 쯤 문을 닫는 식당이 많아 서둘러야했다. 봐둔 곳은 없었지만 버스 정류장 옆에 있던 순댓국 집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카페에서 사장 언니와 카페의 메뉴를 함께 만들어 먹거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는다. 내가 혼자 끼니를 때우러 나가겠다고 했을 때 언니는 흔쾌히 보내주면서 '아팠으니까' 든든히 먹어야 한다고 했다.

몸이 온전해 진 후에 내가 이 달콤한 챙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었다.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있던 집에서는 아픔 자체가 죄 같았다. 알바를 더 해야 하는데, 빨래를 개야 하는데, 마트에 마감세일로 나온 야채를 사러 가야 하는데, 내일은 과외를 하나 더 구해봐야 하는데 같은 생각들로 아플 겨를도 없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걱정이 너무 많다고 했다.

엄마, 내가 엄마의 걱정까지 안고 있는 거야.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그때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엄마가 얘기를 하고, 그 대답을 머리속에 떠올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입밖으로 꺼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사이에 '대화'라고 불릴만한 것이 사라진 것은.


식당 안으로 들어가 구석진 1인석 자리에 앉아 매콤한 순대국 한 그릇을 주문한 나는 엄마와의 대화를 떠올려봤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의 식당은 나처럼 홀로 때지난 한 끼를 얼른 때우려는 사람들로 띄엄 띄엄 채워져있었다.

원래부터 나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조용했고, 궁금한 것이 많지 않았고, 스스로 알아서 잘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런 아이면 셋도 키우겠다'고 할만큼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게 '원래의' 나인지는 모르겠다. 원래 내가 그런 아이였는지, 그런 아이였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아이가 된 것인지.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더 어린 나는 엄마에게 이것 저것 조잘거리기도 하고 엄마가 그만 물어보라고 할 때까지 '왜?'를 달고 사는 아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았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모두 답해줄 수는 없구나. 그리고 나도 엄마에게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얘기할 수는 없겠구나.

우리 둘 다 그것을 원하지 않거나, 그것이 우리의 관계를 좋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우리는 너무 다른 타입의 인간들이었고 서로를 이해하기에, 그리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에 충분한 한 애착이나 관심이 없었다. 적어도 엄마는 그렇게 보였다.

엄마를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했던 때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겐 점차 피로와 무기력이 애착이나 관심보다 더 커져버렸다. 몇년에 걸쳐 태어나는 동생들이 연이어 태어났고, 원래부터 좁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의 집과, 나의 공간은 점차 더 줄어 들었다. 다만 엄마와 나 사이에 하나 둘 눕는 동생들 때문에 엄마와 나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내가 볼 때 너는, 걱정이 너무 많아"


수북히 쌓인 어린애들의 빨래감을 개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을 때 엄마가 나를 보며 툭 내뱉었다.

엄마가 나를 봤다고? 나를 봐왔다고? 언제? 얼마나?

나는 엄마의 뜬금없는 소리에 짜증보다도 황당한 마음이 들어 좁은 창문가에 서서 담배 연기를 훅 밖으로 뿜어내고 있는 엄마를 휙 올려다 봤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동네 아줌마들에게 나를 맡기고 일을 하러 다닐 때의 엄마에게서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지만 내가 특정할 수 없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그렇지 않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엄마는 창밖으로 재를 톡 떨어뜨리며 말했다. 제발 그러지마. 집안에서 담배 피우지마. 애들 보는대서 담배 피우지마. 창밖에 아무렇지 않게 재를 떨지마. 창틀에 재가 다 떨어지잖아. 그러다가 불씨라도 방안에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내 머리속에서는 온갖 말들이 앞다퉈 튀어나왔지만 정작 입밖으로 나온 말은 하나도 없었다. 


"뭘 그렇게 걱정을 다 짊어지고 사냐. 그러나 안그러나 똑같은데."


엄마는 풋하고 웃었다. 나를 비웃는 거였다. 웃을 때의 엄마는 예쁘장했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물론 그건 과거의 말이었다. 엄마의 얼굴에, 남을-주로 나를- 비웃을 때나 얼핏 비치는 미소는 그녀가 언젠가 과거에는 예뻤단 얘길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어디까지나 '과거에는' 말이다.

나에게 무어라 말을 붙이는 지금의 엄마는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것치고는 너무 늙어보였다. 늙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늙어보였다. 분명 보이는 것보다는 어릴 것 같지만 껍데기는 너무 닳고 낡고 쭈그러들어 오히려 실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워 보였다.

남동생 둘은 저희 부친들을 닮았는지 엄마와도, 나와도 다른 얼굴들이었지만 나나 내 바로 밑 여동생은 엄마를 많이 닮은 편이었다. 내 얼굴은 이미 열일곱에 나를 낳은 엄마의 고운 시절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지만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여동생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내가 어릴적, 엄마의 젊을적 얼굴이 떠오르는 듯 했다. 나는 그 애를 보면서 엄마가 제대로 나이들어 갔다면 했을 얼굴들을 보고 싶었다. 옆에서, 찬찬히. 


"무슨 재미야 진짜."


엄마는 대꾸도 없는 내가 답답했는지, 말 그대로 재미가 없었는지 창문 밖으로 꽁초를 휙 집어던지더니 지갑만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나 오늘 안들어 와. 애들 잘 챙겨."


엄마는 엄마 자신에게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해야 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휙 던졌다. 바닥에 앉아 동생들의 옷가지며 양말을 개고 있는 내 등이 더 무겁게 느껴지면서 앞으로 굽는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겉늙어 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확 몰려왔다. 사실 이것은 다 엄마의 짐인데, 왜 내가 나눠져야 하는 것일까 억울함도 함께 몰려왔다.


"엄마가 챙겨야지! 누가 챙겨!"


결국 입 밖으로 말이 터져나왔다. 속으로만 생각했던 울분이었다. 


"국밥 나왔습니다."


까마득한 회상 속에서 나를 건져 올린 건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이었다. 김이 모락 모락 올라왔고 뚝배기 속 국물은 부르르르 끓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힘이 쭉 빠져서 부글거리는 뚝배기를 멍하니 바라만 봤다. 


"너무 뜨거워서 그래요? 여기 앞 접시에 덜어 놓고 먹어요."


국밥을 내려 놓고 돌아서려던 아주머니가 물통 옆에 놓인 앞접시 하나를 뚝배기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통통한 얼굴에 작고 둥근 몸, 싱긋 웃는 미소가 푸근했다. 


"감사합니다."


나도 그녀에게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근데 뜨거워도 후후 불면서 먹어야 맛있어. 국밥이 원래 그래. 사는 것도 그렇잖아. 맹맹하면 재미가 없지. 너무 식히지 말고 후후 불면서 팍팍 먹어요."


그녀가 내 등을 한번 토닥이고 돌아섰다. 

맹맹하면 재미가 없지.

맹맹하면.

나는 수저로 뚝배기를 휘휘 저으며 그 말을 곱씹었다. 그 어느때 내 삶이 맹맹했던 적이 있었나. 요즘, 지금에서야 겨우 맹맹해져 가려던 것 아니었나. 최선을 다해 맹맹해지려고 하고 있지 않았나. 

나는 매운 양념장을 가득 퍼서 국밥에 풀었다. 금새 말간 국물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Queen of Batons(지팡이/막대기의 여왕): 지고지순함, 온순함, 일탈을 모르는 자기의 주관이 뚜렷한 여자. 강한 책임감과 생활력의 현모양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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